싱글월 텐트의 변곡점, 토드텍스 원단…바이블러
싱글월 텐트의 변곡점, 토드텍스 원단…바이블러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5.09.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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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토드텍스 원단의 효시, 얼리윈터스의 시작
토드텍스 계열 원단을 사용한 텐트의 효시는 블랙다이아몬드도, 바이블러도 아닙니다. 효시는 바로 얼리윈터스라는 소규모 아웃도어 용품 전문점이었습니다. 1970년대 초 출범한 얼리윈터스는 60년대 후반 등장했던 노스페이스처럼 작은 점포 하나로 시작되었습니다.

▲ 토드텍스 계열의 원단을 텐트에 처음으로 사용했던 얼리윈터스의 로고입니다.

두 회사의 시작은 비슷했지만 성장 과정은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아웃도어 분야에 사용되는 장비를 직접 개발했다는 점은 똑같았지만, 제품 개발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노스페이스는 경영 전문가인 케네스 합 클롭과 많은 직업을 가졌던 버크민스터 풀러를 끌어들여 아웃도어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일으켰지만, 얼리윈터스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장비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출시하는 것은 얼리윈터스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대규모 자본을 갖고 출범한 브랜드도 아니었고, 고품질의 장비 개발을 고수하다 보니 판매 과정에서 큰 이윤을 남기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판매량이 저조한 상황에서 떠안게 되는 재고 부담과 적자는 그들이 새로운 아웃도어 장비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데 큰 부담을 주게 됩니다. 이런 악순환에 성장 속도가 더뎌진 얼리윈터스는 노스페이스와 같은 브랜드들의 성장에 서서히 묻혀갔고, 오너는 결국 자사의 제품을 브랜드 태그를 떼고 여타 대규모 아웃도어 메이커에 아웃소싱하는 방향으로 브랜드의 향후 노선을 바꾸기에 이릅니다.

▲ 얼리윈터스 매장의 모습입니다. 얼리윈터스는 텐트 생산 라인을 자체적으로 구축한 것 이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장 규모를 키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 얼리윈터스와 토드 바이블러가 함께 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빌 고어입니다.

세계 최고의 텐트를 위해

얼리윈터스 오너는 자사의 제품을 타 브랜드에 납품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숱하게 거절을 당했습니다.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장비들의 수준과 비슷하거나 다소 떨어지는 품질 때문에 외주를 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얼리윈터스의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어텍스의 창업주인 빌 고어와 프리랜서 텐트디자이너였던 토드 바이블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빌 고어는 고어텍스 원단을 개발한 전력이 있는 원단 전문가였고, 토드 바이블러는 텐트 디자인과 기술 분야에서 적지 않은 경력을 가지고 있는 텐트 전문가였습니다. 당시 세 주체는 모두 비슷한 규모의 사업체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장비는 몰라도 텐트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만들어보자는 일념 하나로 세계 최고의 텐트 개발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착수합니다.

▲ 텐트 디자인과 제작에 소질이 있던 토드 바이블러의 모습입니다.

▲ 얼리윈터스의 마크를 달고 나온 토드텍스 원단 텐트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윈터라이트 모델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고어텍스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토드텍스 원단이었습니다. 토드텍스 원단은 립스탑 계열의 원단을 외피로, 건식 부직포 원단을 내피로 적용하여 외피와 내피 사이에 폴리우레탄 계열의 원단을 사용하여 세 원단을 라미네이팅한 3중 결합 구조의 원단입니다. 각개의 원단이 상호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줌과 동시에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립스탑 계열 원단의 발수력과 폴리우레탄 계열 원단의 투습력, 건식 부직포 원단의 흡습력을 토드텍스라는 이름의 원단으로 집약시킨 것입니다.

▲ 고어텍스 원단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강조하여 홍보하였던, 프로젝트 최초의 산물인 스타쉽 모델입니다.

결로, 습도 문제 해결한 토드텍스

세 원단을 라미네이팅한 토드텍스 원단은 당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여타 싱글월 텐트의 립스탑 원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실용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싱글월 텐트의 고질병으로 여겨지는 결로와 습도 유지 문제를 단박에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실내외간 온도 차이에 의해 립스탑 원단에 결로가 맺히면 친수성과 투습성을 지닌 폴리우레탄 원단층이 그 결로를 투습시키고, 표면적이 넓은 건식 부직포 원단 층에서 그 결로를 자연적으로 적정 실내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증발시키는 구조였지요. 건식 부직포의 보온성도 여기에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고어텍스의 기술 지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토드텍스 원단의 외피와 내피입니다. 전체적으로 푸석푸석한 느낌을 가진 원단은 내피가 부들부들한 반면 외피가 방수를 위해 거칠게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단점도 있었습니다. 내피에 사용된 건식 부직포 원단이 영하권의 극동계에서는 결로를 증발시키는 과정에서 얼어붙어버리는 바람에 접어서 넣을 때의 부피가 1.5배 가까이 불어나버린다는 점이었지요. 결로가 증발 과정에서 얼어버리니 텐트 실내의 습도조절능력도 자연스레 저하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단점에도 토드텍스 원단을 사용한 텐트를 사용하는 주된 시기가 극동계였다는 점입니다. 싱글월 텐트 치고는 다소 무겁더라도 결로 문제 하나만큼은 말끔히 해결한 것이 더 두드러졌습니다.

토드텍스 원단으로 만들어진 텐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70년대 후반입니다. 최초로 토드텍스 원단이 적용된 얼리윈터스 스타쉽은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산꾼들의 입소문을 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출시된 라이트디멘션, 옴니포, 윈터디멘션 등의 모델들도 이에 가세했습니다. 열풍의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윈터라이트 모델이었는데, 2인용으로 제작된 터널형 구조의 이 텐트는 최소 수납 무게를 2.04KG 선까지 낮추며 경량화도 이뤄냈습니다.

▲ 토드 바이블러가 얼리윈터스 텐트 제작 분야를 독립시키고 난 뒤 새롭게 등장한 바이블러의 로고입니다.

바이블러의 탄생과 블랙다이아몬드

얼리윈터스는 한동안 승승장구했지만, 경쟁 브랜드들의 가파른 성장속도를 이겨내지는 못했습니다. 한계를 느낀 얼리윈터스는 1984년 결국 사업 분야를 완전히 전환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에 이릅니다. 그들은 고심 끝에 텐트 제작 분야는 토드 바이블러에게 승계하고 나머지 분야는 사할리라는 캐주얼 패션 의류 브랜드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텐트를 제외한 다른 장비 개발 부문은 모습을 감췄지요.

이런 과정 속에서 토드텍스 계열의 싱글월 텐트 기술을 승계 받은 토드 바이블러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바이블러라는 텐트메이커를 세웠습니다. 토드는 좀 더 디테일하게 텐트의 기술적 성능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토드텍스 원단을 사용한 싱글월 텐트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결국 종래에는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되던 바이블러의 텐트가 공급량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 80년대 후반에 등장한 바이블러의 밤쉘터 모델입니다. 폭탄에도 견딜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기술적 우수성이 매우 뛰어나다보니 오늘날까지도 특별한 디자인의 변경 없이 블랙다이아몬드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토드텍스 계열 싱글월 텐트는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바로 블랙다이아몬드입니다. 불의의 챕터 11 파산 사건으로 인해 재건을 꿈꾸던 블랙다이아몬드는 텐트 분야를 보강하기 위해 바이블러를 합병합니다. 토드 바이블러는 기술 자문을 잠시 맡다가 일선에서 은퇴했고, 블랙다이아몬드는 이후 타사와의 효율적인 경쟁을 위해 생산 공정을 중국으로 이관했습니다. 바이블러의 마크도 블랙다이아몬드의 것으로 대체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일선에서 물러난 바이블러는 과거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텐트 매니아들은 여전히 80~90년대를 주름잡았던 바이블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 밤쉘터와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아와니 모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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