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씨의 캠핑이야기
녹색으로 물든 숲에 장마가 찾아왔다. 이삼 주 전부터 새로이 배우게 된 일은 비가 오면 작업을 못한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은 곧 놀러 다니는 날이다. 마침 비도 내리고 6월의 마지막 날이라 일을 하루 쉬었다. 숲은 빗물을 머금었을 때 한결 더 아름답다. 여름엔 맑은 날보다 오히려 비가 내리는 날을 골라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숲을 즐겨 찾는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계절마다 좋은 곳들을 찾아다니며 한적함과 여유로움을 즐기다 온다. 어제 간 곳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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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내가 찾아간 곳은 영함사 가는 숲길. 들어가는 길 왼쪽으로는 넓게 펼쳐진 마을목장과 서쪽 오름의 대장격인 노꼬메 오름, 그리고 한라산 백록담이 바라다 보인다. 좌측으로는 스님의 바랑을 닮은 모양이라 바리메 오름이라 이름 붙여진 경치 좋은 오름이 있다. 영함사로 향하는 숲길은 각종 상록수와 삼나무길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절로 향하는 길은 흙길로 되어 있어서 숲과 어우러져 편안하다. 음악을 틀었다.
피아노 연주의 서정적 선율이 차안에 울려 퍼졌다. 차를 두드리는 빗소리와 차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줄기 그리고 녹색의 숲이 주는 풍경이 어우러졌다. 마음의 감흥이 평소보다 더 진하고 크게 다가왔다. 에메랄드빛 바다도 좋고, 오름 위의 별들도 좋고, 숲에서 해먹에 누워 듣는 음악들도 물론 좋지만 이 분위기도 좋았다. 숲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렇게 한참 음악에 빠져 있다가 가장 보고 싶었던 산수국을 보러 차의 시동을 걸었다. 궷물 오름 주차장에 도착하니 잦아들었던 비는 또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카메라와 가방을 챙겨 노꼬메로 향하는 숲길을 걸어 올라갔다. 빗방울이 모여 중간 중간 패여 있는 흙길 사이로 흘러내렸고 슬리퍼를 적시는 빗물의 느낌이 좋았다.
6월 중순부터 약 한 달 정도 피어있는 산수국은 마치 숲 속에 떠 있는 별들처럼 숲을 비춘다. 햇살은 그 빛으로 나무 사이를 비추지만, 산수국의 꽃잎들은 비 내리는 숲에 은은한 빛을 더해준다. 마치 반짝거리는 보석처럼, 저 밤하늘의 별들이 어둠을 비추듯. 제주에도 이렇게 길게 수놓아진 산수국 길은 없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 비가 올 때면, 나는 항상 이 숲을 찾는다. 길가에 핀 수국처럼 화려하고 크지 않아도 산수국의 은은하고 소소한 아름다움이 좋다. 내가 여름날 이 숲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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