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홍콩, 인기 와인은?
19세기 말 홍콩, 인기 와인은?
  • 글 진정훈 소믈리에 | 사진제공 권홍식
  • 승인 2015.07.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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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E|영국과 보르도 와인의 관계

지난호에서 보르도 와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보르도의 최대 소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단지 백년전쟁의 인연만 있을까? 특히 세계적인 와인 소비국인 영국은 홍콩을 오랜 기간 통치했다. 홍콩은 현재 아시아 최대 와인 허브다. 홍콩이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던 19세기 말 가장 인기 있는 와인은 무엇이었을까?

영국은 오래 전부터 보르도의 와인을 클라렛Claret이라고 부르며 많은 양을 수입했다. 클라렛은 당시의 좋은 와인이라는 의미로 보르도 와인의 명성을 말해주는 단어다. 현재는 보르도의 로제와인을 뜻한다. 보르도 지역의 경제적 부를 축적시켜준 원동력은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등 당시의 강대국들이었고 그들은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었다. 거대한 소비는 보르도 와인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영향력과 연결된다. 현재 로버트 파커의 영향력도 미국이라는 큰 와인 소비시장을 발판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와인에 있어서 프랑스와 영국의 인연은 멀리 거슬러가지 않아도 된다. 1337년부터 시작된 백년전쟁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보르도 지역의 알리에노르Alienor공주가 보르도 와인의 상권을 가지고 영국 왕인 헨리 2세와 결혼했던 일화는 백년전쟁의 원인으로 유명하다. 그 뒤로도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 아시아, 북아메리카 등을 두고 식민지 쟁탈전으로 크고 작은 전쟁들을 끊임없이 치렀다. 이 와중에 와인 산업 역시 경제적 무기가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1804~1848) 중에는 영국이 프랑스 와인 수입을 금지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와인을 수입했던 일도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열강들의 갈등을 조정한 1885년 베를린 회담까지도 두 나라는 관계가 좋지 못했다. 당시에도 영국은 최대의 와인 수입국이자 시장이었다. 특히 1800년대 빅토리아여왕 때의 영국은 식민지 무역, 산업혁명, 농업 혁명 등을 거치면서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세계의 와인 수입 시장이 곧 영국 시장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영국은 다시 프랑스 와인을 수입하였고 때맞춰 1855년, 나폴레옹 3세가 만국 박람회에서 자국의 특산물을 홍보하고자 보르도의 메독 와인에 등급을 매길 것을 명령하면서 국가 차원의 마케팅이 시작되었다. 이때 보르도 메독 지역의 등급은 정치적인 부분이 많이 작용되었다. 1853년 프랑스의 그라브 지역은 오이듬균으로 포도밭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또 오브리옹’이 메독 그랑 크뤼 끌라세 1등급에 들어간 이유와 당시 샤또 오브리옹의 오너가 프랑스 외무장관인 타이테랑이었던 점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1842년 1차 아편전쟁이 끝나고 영국이 보상금으로 얻은 보르도 와인은 홍콩에 거주하고 있는 영국인들에게 물밀 듯이 흘러들어갔다. 특히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오너의 와인들이 곧 인기 순위였다. 1등급 와인은 물론 2, 3등급의 와인들이 줄을 이었다.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외무장관의 권한으로 여러 외교석상에 올라갔던 ‘샤또 오브리옹’ 또한 큰 홍보력을 갖게 되었다. 영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발령받은 사람들은 그동안의 따끈따끈한 본토 소식을 전하면서 크게 이슈화 된 와인 ‘샤또 오브리옹’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당시 ‘샤또 오브리옹’의 좋은 빈티지였던 1811, 1874, 1899, 1900, 1906, 1918, 1926에 대한 인기는 아주 높았다.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든 빈티지이지만 운이 좋다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발견한다면 당신은 1세기 전의 역사를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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