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먹에 누워 숲을 느끼다
해먹에 누워 숲을 느끼다
  • 글 사진 최상식 기자
  • 승인 2015.06.2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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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씨의 캠핑 이야기

오월은 봄의 설렘이 지나간 뒤에 찾아오는 평온한 시간이다. 여름의 옷을 입기 시작한 오월의 첫날, 아는 동생들과 함께 숲길을 걷고 왔다. 숲으로 올라가는 길, 초록의 대지 위로 소떼가 평화로이 쉬고 있다. 우리는 카메라에 풍경을 담고 그 풍경 속에 또 우리를 담았다. 완만한 숲길을 걷는다고 하니 동생들은 가로수길 카페에 앉아 브런치를 먹을 것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고 나타났다.

숲에 오기 전, 밥은 다 같이 먹었으나 동생들과 함께 제주의 낭만을 조금 더 즐기고자 집에서 커피를 내려 병에 담아왔다. 서귀포를 지나는 길엔 ‘마마롱’에 들러서 빵과 당근 케이크를 몇 개 사서 가져왔다. 제주에 자주 오는 동생들인데도 커피와 빵, 해먹만으로 즐기는 숲 속 휴식에 다들 설레 했다.

상록수림 가득한 숲길을 지나,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 놓은 중산간과 한라산을 넘어가는 ‘하치마끼길’을 따라서 완만한 오르막을 걸었다. 이 숲에 오면 늘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숲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동생들은 온통 녹색에 물든 나무들을 보며 숲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난개발로 제주의 숲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안타까웠다.

삼사십 분 정도를 걷다가 숲길 한 쪽, 나무테이블이 길게 놓여 있는 공간에 잠시 앉았다. 준비한 드립커피와 빵, 케이크 몇 조각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았다. 동생들이 숲의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고 쉬는 동안 나는 챙겨온 해먹을 꺼내 설치하려고 살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큰 나무가 여럿 있어서 해먹을 설치하기로 했다. 큰 나무의 가지에 스트링을 던졌다가 실패하기를 몇 번 반복한 뒤에야 어렵사리 스트링을 고정시켰다. 양 옆으로 적당한 높이에 설치하고, 올라가서 누울 수 있게 고정했다.

우리는 숲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도시의 삶과 직장 이야기, 서로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제주를 오가며 만들었던 추억에 대한 담소를 나누었다. 같은 회사에 다녀서인지 여행을 같이 다녀서인지 공유한 추억이 많아 얘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제주는 도시보다 자연을 훨씬 쉽게 접할 수 있다. 많은 장비도 필요 없이 이렇게 해먹 하나만 들고도 제주에서 낭만 가득한 순간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노는 데에도 경험이 필요하다. 경험에 상상력만 더하면 의외로 놀 거리가 정말 많아진다.

태어나 처음으로 해먹 위에서 자본다는 그녀들은 평화로운 시간을 너무 행복해했고 즐거워했다. 귀를 간질이며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눈 위로 흩날리고, 스트링 고리에 걸어놓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에 금방 잠이 올 것만 같았다. 생각만 해도 좋을진대 우리는 그 숲에서 추억 한 페이지를 더 만들고 왔다.

긴 수다를 끝내고 아쉬움 속에 해먹을 걷었다. 남은 음식들을 챙겨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목장을 나오는 길 옆으론 먹구름이 밀려와 하늘은 점점 흐려졌다. 조금 더 따뜻한 계절, 햇볕이 더 반짝거리는 어느 여름날에 다시 이 숲에서, 해먹 위에 누워 잠드는 상상에 빠져본다. 그 여름은 아마도 조금 더 달콤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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