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텐트 메이커라는 이름, 힐레베르그①
세계 3대 텐트 메이커라는 이름, 힐레베르그①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5.05.1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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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오로지 텐트(상)

“텐트 치는 일은 간단해야 한다”
텐트메이커 힐레베르그. 그 이야기의 서막은 1970년대 초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며, 자연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기던 한 산꾼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의 이름은 보 힐레베르그Bo Hilleberg. 숲을 가꾸는 산림감독관이자 전국의 명산을 오르내리기를 즐기곤 했던 보 아저씨는 1971년 산림작업용 도구를 전문적으로 제작해서 판매하는 자그마한 회사를 차렸습니다.

▲ 보 힐레베르그가 1970년대 초반 르네 힐레베르그와 함께 선보였던 켑 텐트입니다.

다소 평범해 보이는 삶을 살던 보 아저씨와 텐트메이커 사이의 인연은 그의 취미생활인 등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대에 가장 보편적으로 등반가들 사이에서 쓰이는 더블월 텐트를 사용하던 보 아저씨는 이너텐트와 플라이를 따로 설치하고 철수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으로 인해 신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이렇게 텐트 치는 일이 번거로워서야 되겠는가!”

▲ 1970년, 힐레베르그 AB 사를 설립하기 이전에 알프스 산맥을 등반하던 보 힐레베르그의 모습입니다.
그 한마디를 계기로 마음 속에 오기를 품은 보 아저씨는 마침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느질 기술이 뛰어난 지금의 아내인 르네Rene 힐레베르그를 만나 결혼한 뒤, 이너텐트와 플라이를 동시에 설치할 수 있는 텐트를 페트라와 함께 개발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텐트는 유럽의 아웃도어 시장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아이템으로 급성장하게 됩니다. 당시 켑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였던 텐트는 오늘날까지도 레이드Rajd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개선을 거듭하여 판매되고 있습니다.

켑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1년 만에 자신이 차린 산림용품 제조 전문업체인 ‘힐레베르그 AB’ 사를 전문 텐트메이커로 변모시켰습니다. 이후 보 아저씨는 당시의 텐트들에 사용되는 원단의 내구성이 충분히 강한가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었고, 이를 연구하기 위해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때, 원단 제작 업체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도중 획기적인 생각 하나가 그의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장강도가 높은 실리콘을 일반 원단에 얇게 입혀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텐트 원단은 텐트를 수 차례 설치하고 철수하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원단이 늘어나는 것을 이겨내지 못해서 찢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수축과 이완에 강한 실리콘이 그러한 원단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심산이었지요. 그가 행한 2년간의 연구는 세계 최초의 3중 실리콘 코팅 원단인 컬론 시리즈를 탄생시켰습니다.

‘실리콘을 입혀보면 어떨까?’
이후 보 아저씨는 힐레베르그 사에서 생산하는 모든 텐트에 컬론 시리즈의 원단을 적용시켰고, 새로운 원단을 적용하여 출시한 텐트는 아웃도어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후 수많은 경쟁사들이 앞다퉈 자체적으로 실리콘 코팅 원단을 개발하여 자사의 텐트에 적용시켰지만, 선발 주자인 힐레베르그의 원단 성능에 비견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시 공개된 컬론 시리즈 원단의 인장강도는 1평방미터당 15kg 내외로 타사의 것에 비해 압도적이었습니다.

▲ 오늘날 아웃도어 박람회의 힐레베르그 부스에 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원단 샘플의 모습입니다. 인장강도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직접 원단을 찢어볼 수 있게 할 정도로 원단의 내구성에 대해서 그들은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 손 힘으로는 어림도 없지요.)

이번에는 어떤 구조가 더 강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회사 내 직원들과 하기 시작했습니다. 텐트의 미적 아름다움의 측면보다는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그 영향을 받지 않고 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2년 만에 그가 시장에 선보인 대안은 생각보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켑 텐트 구조에서 이너텐트와 플라이를 탈부착할 수 있는 형태로 개선한 것이 전부였는데, 우리가 주목할 만한 변화는 그로부터 한참 뒤인 1980년에 일어났습니다. 바로 오늘날 한국의 캠퍼들이 사용하고 있는 케론Keron 모델이 최초로 출시된 것이지요.

▲ 1980년 힐레베르그에서 케론 텐트가 출시되었을 때 카탈로그에 실린 화제의 사진입니다. 보 힐레베르그와 르네 힐레베르그 일가족이 함께 캠핑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 화제가 되었지요.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힐레베르그 사의 케론 텐트와 당시에 출시된 케론 텐트의 구조적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같은 길이의 폴 4개를 이용한, 특수한 환기 구조가 눈에 띄는 길다란 터널 구조의 텐트는 지금처럼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대에 출시되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케론 텐트는 시장에서 승승장구하였습니다. 성공의 요인은 텐트의 우수한 성능보다도 새로운 방향성의 마케팅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마케팅은 카탈로그에 실린 텐트 사진에 그 핵심이 집약되어 있는데, 그 사진 속에는 보 힐레베르그의 일가족이 케론 텐트와 함께 산 속에서 야영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가족적인 모습을 통해 보 아저씨는 캠핑이라는 취미생활이 비단 명산을 오르내리는 전문가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닌,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아이콘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 1984년 가을 한창 개발 단계를 거치고 있었던 스탈론 모델의 샘플입니다.

계속되는 혁신

케론 모델의 성공은 이후 힐레베르그 사에서 출시되는 텐트들의 디자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터널형 텐트 구조가 돔형 텐트 구조보다 사용되는 폴의 수량 대비 바람에 대한 강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보 아저씨는 폴 4개를 이용하는 케론 구조의 텐트를 다양화시켜 폴을 3개로 줄인 스탈론과 2개로 줄인 나마츠Nammatj를 출시했습니다. 이때는 초기의 케론 텐트에 적용된, 전방과 후방의 환기 구조를 더 크게 확장시킨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힐레베르그 텐트의 환기 구조가 완성되었습니다.

1987년에 보 아저씨는 터널형 텐트 구조를 차용한 날로Nallo 텐트를 출시하였습니다. 구조적으로는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는 보 힐레베르그가 한 텐트 안에는 같은 길이와 지름의 폴만을 사용할 것이라는 기존의 기조를 혁파하였다는 점에서 유저들 사이에 적지 않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기존 텐트에 비해 1500g 이상의 수납시 무게를 절감했으니까요. 1989년에는 전실 확장형 옵션인 GT 버전을 각 모델에 추가함으로써 전실의 공간적 활용도 증대를 꾀하였지요.

▲ 같은 길이의 폴만을 쓴다는 원칙을 최초로 혁신한 날로 텐트의 모습입니다. 기존의 스탈론 모델과 폴이 3개라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길이 차이 하나가 전혀 다른 텐트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보 아저씨는 또 다시 텐트메이커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됩니다. 바로 기존의 터널 구조 텐트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돔 구조 텐트를 개발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지요.마침내 보 아저씨는 과거까지 축적해 온 텐트 디자인에 대한 노하우를 살려 그 결과물로 사타리스Saitaris 모델과 스타이카Staika 모델을 시장에 내보였습니다.

이는 유저들에 의해 합리적인 경량화로 일반화된 보 힐레베르그의 기조를 또 다시 혁파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 이유는 바로 수납시 전체 무게가 기존의 케론에 비해 1200g 늘어났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사타리스 모델은 넓은 전실 공간의 뛰어난 활용도와 케론 모델에 비해 엄청나게 강화된 구조적 안정성을 무기로 하여 텐트메이커 힐레베르그의 기함급 텐트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 1990년대에 들어서서 보 힐레베르그가 새로이 개발한 사타리스 모델입니다. 무게가 6kg 내외로 결코 가볍지 않음에도 원정대원들 사이에서 뛰어난 방풍 성능으로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1인용 원폴 텐트인 악토Akto가 출시되었고, 악토가 1인용 텐트 업계에 광풍을 일으킴과 동시에 힐레베르그 사상 최초 유러피안 아웃도어 대상을 수상하면서 보 아저씨의 신화는 끝을 모르는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전부터 흥행 속에서도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던 비싼 판매가가 문제였습니다. 생산되는 텐트의 완성도를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보 아저씨와 페트라 씨는 자국인 스웨덴 생산을 고집했는데, 이제는 자국 내 인건비가 너무 높아져서 생산단가를 맞추기조차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 아저씨와 페트라 씨는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까요? 다음 호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 출시된 이래로 큰 변화를 겪지 않은 오늘날의 힐레베르그 타프입니다. 사진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주변 환경만 잘 이용하면 폴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지요. 이 외에도 힐레베르그 타프의 활용 방법에는 많게는 수 백 가지가 존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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