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의 야경, 그 잔잔함이 나를 움직였다
부다페스트의 야경, 그 잔잔함이 나를 움직였다
  • 글 사진 길바울 기자
  • 승인 2015.05.18 16: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걷고 타는 유럽 횡단 ‘오늘을 산다’

어느덧 크로아티아 최남단 두브로브니크에서 수도인 자그레브까지 오게 되었다. 자그레브에서는 귀한 인연을 만나게 되었는데 자그레브 한인교회 김경근 목사님과 가족 분들이다. 사모님과 세 명의 아이들 영은이, 영진이, 이삭이를 만나게 되었고,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간 매일 이동하고 고생한 덕에 꽤나 지쳤던 탓인지 맑은 하늘을 위로 두고도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몸과 마음은 더욱 강건해 지고 있었다. 교회에서는 우연찮게 한인 민박집 사장도 만날 수 있었다. 환상적인 크로아티아에서 조금 더 머물 수 있는 빌미가 생겼다. 크로아티아에서 무려 90일 가까운 시간을 민박집 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알렉스와 우루시를 만나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힘차게 D8번 국도로 다시 올라왔다. 이제 가장 기대하던 곳 중 하나인 플리트비체를 간다. 이곳은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플리트비체에 앞서 다른 국립공원을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보다 입장료가 두 배가 비쌌고, 더욱 아름다웠다. 국립공원의 이름은 크르카KRKA다.

국도를 걷고, 여러 히치하이킹 끝에 아주 조용한 시골마을의 도로에 홀로 남게 되었다. 이상하게 급급함은 없었다. 어쩌다 만나는 자전거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있었다. 그들은 스위스 사람들인데 나에게 주소까지 주며 초대해 주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작. 그리 많지 않은 차들이 나를 지나쳤고, 탈 수 있을 만한 차다 싶으면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그렇게 한 지프차가 지나가는데 여전히 내게 미안하다는 손짓을 하며 지나쳤다. 내가 봐도 그 차는 가득했다.

▲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인연. 알렉스와 우루시

▲ 크로아티아 크르카KRKA 국립공원(현지 일행 우루시의 사진)

그런데 한 200m 정도 앞에 그 지프가 섰다. 그들은 나의 소중한 친구가 될 알렉스와 우루시였다. 차에서 내려 나에게 다가오는 알렉스를 보자마자 달려가 포옹을 했다. “오 땡큐 썰!” “컴온!” 우루시와 알렉스는 슬로베니아 사람들이다. 사진작가인 그들은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내 큰 배낭을 보고 동질감을 느꼈다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폴! 가방을 보니까 우리와 같이 자유로운 여행인 거 같아. 너 오늘 스케줄 없지?” “없지. 지금 여기가 내 스케줄이야.” “그러면 오늘 우리 국립공원 가는데 같이 가자.” 그들은 유쾌했다. 나와 같은 종족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향했는데 입장료가 불안했다. “폴! 걱정하지 마. 우리는 사진작가들이라 여기 매니저가 그냥 들여보내 줄 거야.” “오 정말? 내도 되는데..” 나는 맘에도 없고, 돈도 없는데 아쉬워했다. 그렇게 무료로 크르카에 들어갔다.

▲ 신나는 여행, 버스킹을 하며 밥값을 벌어보자.

▲ 즐거운 히치하이킹! 노래를 부르며.

규모가 웅장했다. 폭포는 수려하며 광대했다. 우루시와 알렉스는 정말 친절했고, 나를 진정으로 받아들인 듯 했다. 우린 그 넓은 곳을 하루 종일 누볐는데, 시계를 보니 이미 밤 12시가 넘었다. 그들은 다시 슬로베니아로 향해야 했고, 나를 좋은 캠핑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 캠핑장은 내 계획에도 없던 자다르Zadar 옆에 있었다. 자다르는 영화감독 알프레도 히치콕Alfred Hitchcock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이 있는 항구라고 감탄한 곳이다. 자다르를 거치지 않으려 했지만, 아마 여행이라는 놈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나보다. 자다르에서 바다 오르간과 석양을 보며 누워 신선놀음을 할 수 있었고, 기막힌 인연들과 함께 멋진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우루시, 알렉스와는 3개월 후 슬로베니아에서 다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이처럼 놀랍고 신기할까? 내게 여행은 단순한 유랑이 아니었다. 보물이 가득한 판도라 상자를 열어 선물들을 꺼내는데 선물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나오는 것 같은 기쁨을 주었다.

▲ 여유로운 자그레브에서의 일상.

유럽 3대 야경?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자그레브에 도착해 며칠을 골똘히 향유하며 좋은 잠자리와 잊을 수 없는 음식으로 쉼다운 쉼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일상을 닮은 이곳에서의 유유자적.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시작하려면 약 1주일의 시간이 더 흘러야 했다. 쉬는 동안 그토록 하고 싶던 여행을 하기 싫어질까 우려스럽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달콤한 쉼을 얻는 대가라 생각해야 했다.

그 때,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나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라는 도시에 대해 듣게 되었다. 유럽 3대 야경으로 그렇게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있는 도시다. ‘오! 그 아름다움을 앞에 두고 잠잠히 시 한 수 지어보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당장에 며칠 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가방을 다시 조여맸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계획에 없던 곳이었다. 하긴, 계획을 갖고 오지도 않았고, 계획 없이 여행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목사님, 저 부다페스트 다녀오렵니다. 고속도로 앞 주유소까지만 데려다 주세요.” 큰 배낭을 보신 목사님께선 무모함을 넘어선 근거 없는 자신감에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데려다 주셨다. “다녀와서 보자.” 바로 옆 나라, 교통비가 얼마 되지 않아 편안히 다녀와도 되지만, 그렇게 갈 수는 없었다. 가뜩이나 녹아버린 얼음처럼 퍼져버린 요 며칠 때문에 여행에서 얻고자 했던 마음을 잊어버릴 것 같아서 그랬다. 오늘도 난 걷고 타는 방식을 선택했다.

▲ 크로아티아 자다르의 석양.

편안함은 어쩔 땐 내게 주어질 신비한 일들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친다. “아 그냥 기차 탈 걸..” 한 시간 전 다시 큰 배낭을 둘러매던 비장함은 사라지고, 후회를 하고 있는 내 모습 때문이라도, 나는 걷고 타야 했던 것일까? 주유소에 내려 비가 잦아 들 때까지 기다렸다. 날이 개길 기다리는 동안 주유소 직원들에게 고마운 선물을 받았다. 박스를 직접 구해 ‘Budapest’를 진하게 적어 내게 주곤 직접 헝가리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의 휴게소까지 가는 차를 잡아주었다.

‘기차를 탔더라면 이런 고마운 분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야. 잘했어!’ 이런 낯선 과정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차를 잡았을 때 전하는 고마움의 목소리는 생생했고 진실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도착했다. 자동차들을 보니 온통 동유럽 번호판들이었다. 순간, 배부른 맹수의 여유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노다지네 노다지야.”

▲ 부다페스트로 향하던 중 만난 헝가리 소녀들.

1시간, 2시간, 4시간. 외로운 시간을 기다림으로 채웠다. 대부분의 차들도 나와 같이 여행 중이라 만석이었다. 차 문을 열어주는 대신 미안하다는 눈짓과 손짓을 보냈다. 몇 백 대는 보낸 것 같다. 게다가 이 기다림을 더욱 사무치게 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나와 같이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헝가리 소녀 3인방이었다. 그들도 히치하이킹으로 크로아티아를 여행하고서 부다페스트로 향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동지를 만났다는 생각에 혼자 신이 났다. 함께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는데 딱 3자리뿐인 자동차가 한 대 섰다. ‘이게 아닌데..?’ 나는 쓴 웃음을 애써 감추며 그들에게 양보했다. 배신당한 느낌에 나의 긴 기다림은 더 느리고 길게 느껴졌다.

그렇게 기다림이 6시간을 넘어 갈 즈음, 나는 거의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아 짜증나, 아까 그 애들만 아니면 내가 가는 건데, 그 자식들은 뭐야?!! 아 기차 탈 걸 이게 뭔 개고생이냐..’ 담대하고 용감하게 출발 했던 내 마음은 온갖 짜증과 원망으로 변해버렸고, 6시간 동안 내 기다림의 과정을 본 주유소 직원들도 정이 들어 안쓰러웠는지 함께 아파해준다.

▲ 알렉산데라는 이렇게 웃는 얼굴로 차 문을 열어주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기다림에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런데 뜨든!! 바로 앞으로 아주 고급스런 벤츠 리무진이 멈춰 섰고, 번호판에는 ‘H’가 적혔다. 헝가리로 향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 근사한 신사 한 분이 내려 화장실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아 헝가리인데? 엄청 고급차인데 해줄까? 있는 사람들이 더한다고 절대 안 해주겠지.. 아 그래도 해볼까?’ 그 고민의 순간에 근사한 신사는 차로 향하고 있었고, 차 문을 열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앞에 서 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얼굴과 긴장된 얼굴이 뒤 섞여 있었을 것이다.

말을 건넨다. “익스큐즈미 썰?” 그가 웃는 얼굴로 답한다. “예스?” “혹시 헝가리로 향하시나요?” “네.” 나는 다짜고짜 “저도 헝가리가요.!!” 절실함에 튀어나온 말이다. 부다페스트가 아니더라도 우선 헝가리로 국경을 넘어야 더 쉬울 것 같기도 하고, 부다페스트라고 했다가 그가 안 가면 그만이니 목적지를 ‘헝가리’로 정해버렸다. “헝가리 어디로 향하시죠?” “헝가리 어디도 상관없어요. 헝가리면 되요.” 그는 웃는다. “그러니까 헝가리 어디요?” “부..부..부다페스트.!! 혹시 태워 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이죠! 나도 부다페스트로 향해요. 타세요.” “우와!!!!!!!!!!!!!!!!!!!” 그 소리를 들은 종업원들 모두가 히치하이킹 성공을 축하해주며 박수를 쳐주는데 무대 위에서 받는 박수만큼 기뻤다. 그렇게 알렉산데라를 만났다.

▲ 헝가리 부다페스트

그는 최고급 호텔의 리무진 드라이버다. 오늘 오전 부다페스트에서 자그레브로 중요한 손님을 모셔다 드리고 다시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비용이 50만 원이라고 했다. 이보다 좋은 차가 또 있을까? 그렇게 6시간이 넘는 쓴 기다림은 내게 벤츠를 선물해주었다. 그는 날 위해 시속 230km까지 속도를 내며 달렸다. 나의 작은 도전이 이렇게 신기한 일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방금 전까지 짜증으로 가득한 내 모습이 부끄럽다.

아주 천천히 풀어야하고, 기다려야 할 문제를 단숨에 편안하게 풀어가려는 안이한 태도도 부끄럽고, 정말 중요한 것은 어차피 이루어 질 일을 기다리는 것이었다면 그 기다림을 어떤 마음으로 채우며 기다리고 견뎌가느냐가 내 자신을 만든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앞일을 살아가는 방법이 바로 그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 여행의 길 위에서 배운다.

▲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의 아름다움.

어둠을 해치지 않는 야경

여행은 커피와 비슷하다. 커피의 매력은 숨은 맛을 찾아내고 느끼는 것이다. 온도마다 다른 풍미를 음미하고 그렇게 세세하게 맛을 음미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유로움을 향유하게 된다. 여행도 어느 정도 같은 원리를 공유하는 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내 안에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거나 우리 마음에 존재했으나 알아채지 못했던 마음들을 발견하고 마주하는 것이다. 여행의 방법을 깨달아간다.

카메라를 내려 두고 책 한 번 더 펴는 것이 더욱 좋기도 하고, 일기장 한 장을 더 채워 넣는 것이 더 기쁜 것이다. 아름답고 유명한 장소에 있었음을 자랑하고, 그 증거를 남기기보다는, 내 자신을 증명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여행만큼 내 자신을 찾아가기 좋은 시간은 없을 것 같다. 부다페스트는 역시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곳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내 자신이었다. 같은 것을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명예 아니던가! 그렇게 아름답고 황홀한 부다페스트를 거닐다가 드디어 어둠이 내려앉았다. 부다페스트에는 야경을 즐길 수 있는 3가지 멋진 장소가 있다. 하루에 한 자리씩 아주 천천히 둘러 볼 생각이다.

▲ 헝가리 부다페스트. 어둠을 기다리는 이곳은 하늘을 볼 수 있다.

드디어! 어둠이 내렸다. “좋아! 얼마나 화려한지 한 번 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3대 야경이라.” 내가 생각하는 야경의 최대치를 기준 삼아 야경을 보러 언덕을 올랐다. 드디어 치타델리에 도착했다. “응?!!!”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조금 허무했다고 해야 할까? 실망 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 당황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듯하다. 내가 생각한 야경의 아름다움과 그들의 아름다움이 달랐다. 반짝반짝 찬란하게 빛나는 화려함을 야경의 기준으로 생각했던 나의 한계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도전한 여행이 아니라 여행이 내게 도전해 왔다. 한참을 앉아 있어야 했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움직이지도 않고서 터질 듯 말 듯한 풍선의 긴장감처럼 마음은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 일기장에 펜을 준비하고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마음을 터질 때까지 기다리며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있던 아름다움의 감각이 조금씩 다가오는 것 같았다.

▲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어둠을 기다리다 펜의 잉크가 다 닳았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에서 화려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야경은 어둠을 해치는 일이 결코 없었다. 어둠을 뚫고 정도와 절제 없이 반짝이는 야경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둡게 내린 그 어둠으로 빛이 더 밝아질 수 있었다. 어둠과 조화를 이루었다. 그것은 단번에 이뤄지는 즐거움이 아니라,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야 천천히 느낄 수 있는 ‘황홀함’이었다. 볼수록 매력 있는 지적인 사람과 대화하는 즐거움 같은 것이었다. 볼매다 볼매! 한참을 앉아 있게 만들어 주는 야경이었다.

그 야경은 문명의 쾌락을 전달하지 않았다. 철저히 절제했고, 어둠의 도움을 감사함으로 받아 들였다. 모터를 단 속도 빠른 보트의 즐거움 보다는 바람에 의해 흘러가는 돛단배 같은 느낌이었다. 낭만이 있었다. 필요한 만큼, 필요한 곳에만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건축물 자체가 빛을 발하듯 건물의 끝에서 빛도 끝났다.

그 순간, 부풀어 오르던 마음 속 풍선은 터져버렸다. 그 풍선의 이름은 ‘낭만’이었다. 이제 밝은 낮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어서 빨리 어둠이 오길 기다렸다. 나는 부다페스트에서 보내는 내내 어둠을 기다렸고, 어둠이 채 내리기도 전에 야경을 보는 곳으로 향했다. 서서히 내리는 어둠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리고 조명이 들어오는 순간을 바라보며 설레고 떨렸던 기억은 첫사랑과도 같은 것이었다. 잔잔함이 나를 움직였다. 자극적이고 역동적인 것들 보다는 잔잔함에 움직인 것이다. 그 곳의 야경은 어둠과 빛이 50:50이 아니었다. 100:100 이었다. 그날 나의 천국의 그림은 조금 더 아름다워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