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를 매료시킨 깎아지른 절벽과 대평원
헤밍웨이를 매료시킨 깎아지른 절벽과 대평원
  • 글 사진 앤드류 김 기자
  • 승인 2015.05.1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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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S TRAVEL NOTE | 스페인 협곡 마을 론다

아찔한 협곡이 가져다주는 현기증에 처음에는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망설여진다. 하지만 이내 일자로 깎아지른 이런 협곡 사이에 놓인 탄탄한 누에보 다리를 보고 다소 안정을 찾는다. 방심하려던 찰나, 하늘을 향해 100m도 훨씬 넘는 높이로 반듯이 치솟은 절벽 위의 새하얀 집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론다 협곡의 절벽 면에 그대로 올려 지은 건물을 보면 강심장을 가진 투우사의 나라, 400년 전부터 목숨 걸고 바다에 뛰어들어 무적함대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 선조의 후예답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부신 지중해성 강한 햇살과 시리도록 파란 하늘, 여기에 하얀 구름과 어우러진 절벽 위의 하얀 집은 너무도 환상적인 대비를 이룬다.

▲ 론다의 투우 박물관에 보관된 실제 칼과 투우사 의상.
론다 협곡 아래로 펼쳐진 대지의 광활한 초록 세상은 또 다른 장관이다. 구불구불 정겨운 시골길, 무성한 올리브 농장의 초록색 향연, 저 멀리 펼쳐진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끝없는 줄기를 보고 있자면 싱그러운 비타민 공기가 불어오는 것 같다.

아름다운 자연과 하얀 집이 조화를 이룬 이곳은 역사적인 대문호 헤밍웨이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쿠바 앞바다에서 참치를 잡아 올리는 낚시꾼에서, 전쟁터를 누비던 군인, 종군기자를 거쳐 아프리카 정글 속에서 사자를 잡던 사냥꾼까지 지냈던 헤밍웨이. 세계 방방곡곡 안 다닌 데가 없던 여행가로서 한마디로 마초 같은 상남자였다. 그는 단 1분의 시간도 헛되게 보내지 않고 일생을 와일드한 스케줄로 꽉 채우다 갔다. 그런 그가 생의 마지막 생일을 지낸 곳도 바로 이곳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자치지역에 있는 협곡 마을 론다다.

그는 말년에 이곳에서 투우 경기에 빠져 동물과 인간의 사생결단을 보면서 피의 마력 속으로 빠져들었다. 당대의 최고 예술가 피카소와 함께 투우 경기를 즐기면서,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했다. 헤밍웨이가 이 마을에서 투우 경기를 즐겨보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론다는 투우 경기로도 유명하다. 오레~오레~오 오레~오레~오. 투우장은 모두 흥분해 한 손에는 맥주를 든 채 응원가를 부르는 관중들의 합창 소리로 이내 흥분의 도가니가 된다.

▲ 론다의 구시가지 가로수는 모두 오렌지 나무다.
이미 투우사로부터 몇 개의 작은 칼날을 받아 등에 붉은 피를 뿜어내는 검은 소의 눈에는 광기가 조금씩 줄어들고 지친 기색이 역력해진다. 이때쯤 되면 투우사는 마지막으로 소 정수리를 향해 가늘고 긴 칼을 뽑아든다. 씩씩거리며 마지막까지 노려보는 소의 충혈된 눈망울에 슬픈 애수와 함께 마지막 분노가 이글거린다.

스페인에서 투우를 처음 만든 도시가 바로 이곳 론다의 투우장 론다 불링(Ronda Bullring) 이다. 230년 전 투우장을 만들고 용맹스런 남자라면 투우사가 되라고 길을 열어준 도시다. 론다의 이 투우장에 당시 제일 빈번하게 나타난 사람이 헤밍웨이와 피카소다. 그래서인지 이들 작품에는 유난히 소가 많이 등장한다. 피카소의 ‘소의 머리’가 대표적이다.

헤밍웨이 작품 중에는 투우장 소설인 불파이팅(Bullfighting)도 찾아볼 수 있다. 문을 박차고 운동장으로 튀어 나갔을 광기 어린 소들. 그러나 비겁하게도 무장한 인간들의 계획된 순서에 따라 이 소들은 죽음이란 운명을 저 운동장 한가운데서 맞이했다. 이제 소들에게도 평화가 왔다. 거의 200년 이상 잔인하게 소들을 죽여 왔던 투우 경기는 동물보호단체의 운동으로 더는 못하게 됐다.

싱그러운 공기로 가득한 대평원을 바라 보면 스페인이 낳은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매혹적인 노랫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론다의 하이라이트가 절벽 위에 하얀 집이라면 협곡 아래 대평원은 자연이 만든 거대한 세트장이다. 론다의 절경은 지구 얼굴 중에서 인간과 자연이 만든 최고의 가치를 품은 곳이다.

▲ 골목길 사이에 테이블을 놓고 손님을 받는다.
▲ 투우 경기를 즐겼던 피카소와 헤밍웨이.

누에보 다리
지금부터 220년 전, 협곡 아래 바닥에서부터 단단한 돌 벽돌을 하나하나 위로 쌓아 올려 만든 누에보 다리. 자연의 경이로움도 경이로움이지만 인간의 위대함이 더 돋보이는 다리다. 스페인 말로 새것이라는 말뜻처럼 누에보는 언제나 늘 새것처럼 탄탄하게 이 자리를 지키며, 역사와 역사 이어주고, 자연과 인간 이어주며, 가치와 철학을 이어가지 않을까.

앤드류 김(Andrew Kim)
(주) 코코비아 대표로 커피 브랜드 앤드류커피팩토리 (Andrew Coffee Factory) 와 에빠니 (Epanie) 차 브랜드를 직접 생산해 전 세계에 유통하고 있다. 커피 전문 쇼핑몰(www.acoffee.co.kr)과 종합몰(www.coffeetea.co.kr)을 운영하며 세계를 다니면서 사진작가와 커피차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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