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블랙다이아몬드(하)
‘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블랙다이아몬드(하)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5.04.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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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아웃도어 브랜드

‘수업시간에 수학 공식 외우는 시간이 가장 아까웠다’고 당당하게 자서전에서 밝히신 못 말리는 암벽 타기 신동의 이야기, 재밌게 읽으셨나요? 이제 지난 호의 이야기를 이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수많은 개량형 피톤을 자연보호를 위해 단종시켜야 하는가, 기업의 수익 보전을 위해 그대로 판매해야 하는가를 두고 경영진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고갔습니다. 눈치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돈보다도 자연이 우선이었던 이본 취나드는 결국 회사 창립 이래 출시한 수많은 개량형 피톤들을 모두 단종시켰습니다. 이후 한동안 단기적인 재정난에 시달리긴 했지만, 이본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 1990년대 이후 블랙다이아몬드 사의 재기를 성공시켰던 주역인 피터 멧칼프의 모습입니다. 그와 직원들의 열정은 블랙다이아몬드 사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 90년대를 전후로 블랙다이아몬드를 떠나서 파타고니아 사의 창업주가 된 이본 취나드의 모습입니다. 현재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개량형 피톤들을 단종 시킨 대신, 이본은 피톤과 거의 유사한 용도로 암벽등반가들 사이에서 쓰이고 있던 헥센트릭Hexentric이라는 장비의 개량에 나섰습니다. 헥센트릭의 경우 암벽 사이의 틈을 쿡 찍어야 하는 피톤과는 달리 암벽의 틈 사이에 육각기둥 모양의 큐브 같은 것을 끼워 넣어 쓰는 것이었기에 피톤에 비해 환경 훼손 정도가 아주 적습니다.

이와 함께 이본은 암벽 등반 시 자연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직접 ‘클린 클라이밍clean climbing’ 캠페인을 진행하였고, 이는 개량형 헥센트릭의 출시와 더불어 한동안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명실상부한 친환경 아웃도어 의류 메이커로 자리매김한 파타고니아가 이 때 이본 취나드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그 설립의 효시가 참 흥미로운데요, 1970년대 중반에 영국으로 떠난 원정에서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에서 럭비 셔츠 몇 벌을 사들고 영국에서 되팔아 적지 않은 돈을 번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 파타고니아 사가 미국 시장 내에서 결정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는 포스터의 모습입니다.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짧고 강력한 슬로건은 이후 아웃도어 의류 메이커들 사이에서 환경윤리 실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효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시 취나드 이큅먼트와 파타고니아의 차이점입니다. 두 회사를 세운 사람은 이본 취나드로 똑같지만, 취나드 이큅먼트 사는 헥센트릭의 개발과 자체 캠페인 활동을 진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60년대 후반의 전성기만큼 호황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고, 파타고니아 사는 비록 시작한 지 얼마 되진 않았어도 성장에 관한 전망만큼은 밝았다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는 이본 취나드의 관심이 취나드 이큅먼트 사에서 파타고니아 사로 서서히 옮겨갔다는 점의 가장 큰 근거이기도 하지요.

이본 취나드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한 채 점점 규모가 줄어들던 취나드 이큅먼트 사의 매출은 연 100만 달러 선이 깨지기에 이르렀고, 정직원의 수도 6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이어나가던 중 1989년에 취나드 이큅먼트 사의 역사를 뒤흔드는 사건 하나가 벌어졌습니다.

자사의 하네스를 차고 일을 하던 고층 건물 청소부가 장비상의 결함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한 것이 발단이었는데, 이를 두고 벌어진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취나드 이큅먼트 사가 총 자산 규모를 초과하는 배상금 지급 판결을 받고 챕터11 파산 절차를 밟았던 것입니다.

이후 취나드 이큅먼트 사를 누가 인수할 것인가가 가장 큰 화두였는데, 놀랍게도 인수 과정의 중심이 되었던 대주주는 한국계 재미교포 산악인이었습니다. 취나드 이큅먼트의 역사를 함께 해왔던 회사 직원들도 동참했지요. 그들의 노력을 기반으로 2년간의 회생 끝에 1991년에 들어서서 취나드 이큅먼트 사는 블랙다이아몬드 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새 출발을 맞이한 블랙다이아몬드의 경영진들과 직원들은 이후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은 묘수를 두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마케팅의 귀재 피터 멧칼프Peter Metcalf를 마케팅 매니저로 영입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웃도어 활동에 다방면으로 사용되는 다양한 장비들을 생산하여 판매하는 브랜드가 일원화되고 거대화되어 가고 있다는 시장의 흐름에 맞추어 암벽등반용 장비 외 다른 장비들을 개발하고 생산, 판매하는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실 텐트 출시도 이로부터 말미암아 생긴 것이지요.

▲ 개량형 피톤이 단종되고 난 뒤 대체품으로 개발되어 출시된 블랙다이아몬드 사의 헥센트릭입니다. 기존의 내구성 관련 기술을 적극 활용해 이전부터 존재하던 경쟁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였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블랙다이아몬드 사가 이전까지 생산해 본 경험조차 없었던 수많은 아웃도어 장비들을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기존의 경쟁사들과 경쟁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겠지요. 이를 자각하고 있었던 경영진들은 다른 대형 아웃도어 메이커들보다 한 발 앞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중소규모의 장비 메이커들을 인수하여 몸집을 불려나갔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70년대와 80년대 사이에 텐트 시장을 휩쓸었던 바이블러 사를 인수한 것이었지요.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블랙다이아몬드의 토드텍스 원단 계열의 싱글월 텐트들은 블랙다이아몬드 사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아닙니다. 오늘날까지 바이블러 계열의 텐트들을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건 그 우수한 기술력과 기반을 유지하고 보완하고 계승해 온 블랙다이아몬드의 공도 적지 않았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 블랙다이아몬드 사의 대표 텐트 모델인 밤 쉘터입니다. 바이블러 시절에 생산되던 기술력을 그대로 이관하여 생산되고 있는데, 모델 자체가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높은 완성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바이블러 인수를 필두로 종합적 아웃도어 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은 과거와는 달리 비약적인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고, 당시 마케팅 매니저였던 피터 멧칼프를 필두로 한 블랙다이아몬드 사는 250여 명의 정직원을 거느린, 연매출 960만 달러의 대규모 아웃도어 명가로 그 입지를 굳혔습니다.

그 사이, 블랙다이아몬드 사를 떠났던 초대 창업주 이본 취나드는 의류 메이커 파타고니아의 성공적인 경영을 이끌어 회사를 미국 내 고급 아웃도어 의류 시장 내에서 매출액 2위를 기록할 수준으로 만들었습니다. 비록 취나드 이큅먼트 사가 파산할 때 자신이 창업했던 회사를 외면한 것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자신의 환경 윤리에 대한 가치관을 꺾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서도 수십 개의 환경 보호 캠페인을 벌임으로써 그 의식을 심층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그의 노력에는 노스페이스의 초대 창업주이자 그의 소중한 등반 친구인 더글라스 톰킨스Douglas Tompkins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텐트메이커 블랙다이아몬드에 대해 논할 차례입니다. 백패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단연 최고로 손꼽는 것은 바이블러 라인업의 텐트들입니다. 주로 사용되는 원단인 토드텍스는 멤브레인 원단과 부직포 원단, 고어텍스 원단을 특수기술로 한데 압착해서 만든 원단을 말하는데, 이는 텐트 실내의 습도를 조절하는 능력이 우수하다는 점과 싱글월임에도 결로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저들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인기가 많습니다. 추운 날씨에 사용 후 원단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수납하면 부피가 비대하게 늘어나기에 수납이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말이지요.

▲ 바이블러 라인업 텐트의 무게 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출시된 슈퍼라이트 계열의 가이딩라이트 텐트입니다. 무거운 토드텍스 원단을 과감히 버리고 박막에 가까운 에픽 원단을 적용하여 부피와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인 것이 특징입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인업은 인지도가 높은 바이블러 라인업의 텐트가 아닌, 그보다 후대에 나온 슈퍼라이트 라인업의 텐트입니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경량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가장’ 충실하게 반영한 라인업으로, 4인용인 가이딩라이트 텐트의 무게는 통상적인 4인용 텐트의 평균 무게 대비 25% 정도의 무게인 2.4kg입니다. 문제는, 경량화에 혈안이 된 나머지 지나치게 얇아짐으로써 일종의 희생을 당한 원단은 기대 이하의 내구성과 결로를 유저들에게 선물했지요.

중요한 건 백패킹에서 텐트 무게를 줄여 경량화를 실현하는 것이 결코 늘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텐트는 변화무쌍한 자연 속에서 백패커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이니까요. 저라면 지나치게 가벼운 텐트를 사용하는 대신 적당한 무게의 텐트를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몸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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