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성소, 델로스를 찾아서
신들의 성소, 델로스를 찾아서
  • 글 임지용 | 사진 임지용 송세진 기자
  • 승인 2015.04.2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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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역사 문화 여행 | 신의 탄생

그리스 세계의 중심지로
크리스마스이브, 시간여행자들은 마지막 일정으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태어난 고대 그리스 세계의 성소인 델로스로 향했다. 델로스 섬은 장 폴 고티에,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휴양소로 이름난 미코노스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굉장히 작은 섬이다. 겨우 3㎢의 델로스 섬에는 여름철에만 사람이 거주하는데 그 인구가 14명에 불과한 아주 귀여운 섬이다.

▲ 델로스 전경

겨울철이라서 델로스로 들어가는 배는 1주일에 1회만 있으며 우리의 일정에 맞출 수가 없어 과감한 결정이 필요한 때다. 만약 델로스를 선택하게 되면 미코노스 1박, 델로스 왕복해서 거의 이틀이 소요된다. 델로스를 포기하고 들르지 못한 아테네의 전쟁 박물관과 수니온 포세이돈 신전을 택할 수도 있다. 회의와 고심을 거쳐 마지막 목적지가 결정되었다. 실패하더라도 선택은 델로스였다. 델로스를 못 가보곤 그리스의 근처도 못 가본 것이나 다름없다. 끼끌라데스의 중심이자 델로스 동맹의 본거지 그리고 거대 남근 상이 여전히 힘차게 솟아있는 그곳. 바로 델로스다.

▲ 미코노스 항의 예배당
실패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 항구의 뱃사람들을 수소문한 끝에 유적 관리팀이 내일 아침 8시에 델로스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게 우린 피레우스 항에서 무작정 티켓을 끊고 미코노스로 향하는 페리에 올랐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미코노스에 도착했다.

근데 문제가 발생했다. 미코노스에는 항구가 구항old port, 신항new port 이렇게 두 개가 있으며 서로 간의 거리가 도보로 40분 정도 걸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겨울철이라 택시가 다닐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도대체 어느 항구에서 델로스행 배가 뜨는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델로스행에 성공하더라도 아테네로 떠나는 마지막 배의 시간까지는 30분 남짓 남아있다. 그 배를 놓치면 내일 아침 한국행 비행기마저 놓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고민 속에서 우린 미코노스 구 항구의 하얀 석회암 호텔에 방을 잡았다. 짐을 풀고 미적지근한 물로 샤워를 한 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배를 찾기 위해 일찍 일어난 우리는 항구로 향했다. 다행히도 어렵지 않게 델로스행 배를 찾을 수 있었다. 느지막이 등장한 붉은 옷의 뚱보 선장과 가격 협상을 하고(25유로) 배에 올랐다. 큰 선박인 페리만 타다가 승선객이 5명도 안 되는 이런 작은 보트를 타니 해수면과의 거리가 한결 좁혀져 지중해를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눈부신 태양빛을 뚫고 델로스 섬이 보인다. 섬 전체에 과거가 머물러 있다. 2500년 전부터 우리를 기다려온 석회암 덩이들이 사방에 피어있다.

▲ 미코노스의 새벽

▲ 미코노스 항의 배

▲ 아테네로 돌아가는 길

신의 탄생

우리는 먼저 델로스의 중심이자 키클라데스의 정중앙인 킨토스 산의 정상으로 향했다. 산 정상에 올라 주위를 빙 둘러보면 왜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곳을 끼클라데스Circle라 했으며 왜 델로스가 그 중심에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사방을 원형으로 둘러싼 섬들의 중심에 이곳 델로스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대 그리스 세계에선 이곳을 인기 최절정의 미남신인 아폴론의 탄생지로 여겼으며 가장 중요한 성소였다. 또한 페르시아의 침공을 이겨낸 후 탄생한 아테네 중심의 델로스 동맹의 금고를 놓아둔 곳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들 대다수가 온통 폐허뿐인 장소에서 실망을 하곤 한다. 하지만 보존 상태가 좋은 곳도 분명 존재하는데 델로스가 그중 하나이다. 물론, 12m의 아르테미스 거상은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돌덩이로만 남아있지만….

킨토스 산을 내려와 고대 극장에서 일리아스의 첫 구절을 소리 내어 읊고, 아고라로 향했다. 아고라의 끝자락에 전령신 헤르메스Hermes의 헤름Herm이 보인다. 헤르메스의 탄생 과정에서 우리는 고대 종교와 신이라는 개념의 성립에 대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 킨토스 정상 중앙의 장발 위정태 대원

▲ 델로스의 남근상
먼 산길을 가로지르는 여행자가 여행길의 주요 지점에 돌을 쌓기 시작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반복하고 어느 때부터인가 그 돌무더기는 서낭당 돌탑처럼 독특한 형태로 쌓이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 그것은 헤르마Herma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낯선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특별한 상징성을 띄게 된 것이다.

그 헤르마는 델로스에서 만난 헤름Herm이라는 형식의 조각상으로 뭉툭한 기둥에 얼굴과 성기가 묘사된다. 이렇게 탄생한 돌 헤르메스는 여행의 신이자 저승으로 떠나는 망자의 신, 그리스 제우스의 전령신이 되었다.

모든 헤르메스의 헤름에는 남근이 매달려 있었다. 지금은 모두 뽑혀나가거나 소실되어 없으며, 그리스 정부에서 재건을 할 때 종교적 이유에서인지 남근을 제작에서 제외했다. 참으로 그리스 적이지 않게도.

우리가 고대 그리스를 이해할 때 고상함이라는 장벽에 가려 실제 그리스가 가지는 적나라한 관능을 지나쳐 버리곤 한다. 사실 그 관능성이라는 것마저도 기독교 혹은 유교 문화 내에서 살아온 우리가 정의 내린 것이고 실상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그것은 그저 일상이고 당연한 여러 가치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델로스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하늘을 향해 우렁차게 뻗친 단단한 석회 남근상. 이런 남근 형상들은 고대 그리스의 일상 속에 녹아있었으며 남근이 박힌 헤르메스의 헤르마는 집집마다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남성의 몸, 특히 어린 남성의 몸에 열광했다. 현대 문화에선 시각적 에로스의 대상은 죄다 여성이다. 하지만 그것은 르네상스 유럽 시기부터 구축된 것이며, 그 이전의 유럽 세계에선 그 대상이 실은 남성이었다.

▲ 거대 남근상

우리가 익히 잘 아는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신화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죄다 르네상스 때 재구축된 것들이다. 그곳엔 갑옷을 입은 페르세우스와 발가벗은 안드로메다가 있다. 하지만 부활되기 이전 원래의 그리스에선 안드로메다는 입고 페르세우스가 벗고 있었다. 그리스는 젊은 남성의 몸을 숭배했다. 그 극단에 올림피아 제전이 있다. 올림픽은 그리스 세계 전체가 참여하는 전투 훈련의 일환이자 관능적인 몸에 대한 찬가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욕망의 대상은 14살이 지난 털이 나기 전의 남자 아이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체육관Gymnasium은 나라에서 주도한 주요 공공시설이었다. 체육관의 Gymno는 ‘발가벗은’이란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 남성들은 전신 탈의 후 옷 대신 올리브기름을 온몸에 바르고 체력 단련에 임했다. 몸을 가꾸지 않는 것은 수치로 여겨졌다. 체육관은 미소년과 성인 남성이 만나는 사교장이기도 했다. 나이 든 남성들은 자신의 연애 대상을 얻기 위해 선물 공세를 펼쳤고, 그들의 성관계는 주로 ‘가랑이 성교’ 형식으로 이뤄졌으며, 그것은 자연스럽고 옳은 행위였다.

▲ 아고라 입구

▲ 아고라 광장

소크라테스가 타우레아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던 어느 날 한 미소년이 들어섰다. “카르미데스의 신장이나 아름다움은 놀라웠으며, 모두가 그를 마음에 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 소년이 체육관에 들어섰을 때 벼락을 맞은 듯 눈을 흡뜨면서 혼란스러워했다… 모든 이들이 그를 조각상처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 나는 소년의 망토 안을 얼핏 보고 흥분해서 더 이상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는 야수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호모 사피엔스의 대표, 현인 소크라테스는 옷 아래 은밀한 소년의 그것을 보고서 크게 흥분하였던 것이다.

작은 돌조각에도 사연이 존재한다. 책과 함께 한 여행에서 우리는 오랜 과거의 시간을 복원할 수 있었다. 지식이란 이렇듯 위대한 것이다. 지식을 통해 우리는 이상의 세계를 넘볼 수 있다. 그리고 알 수 있다. 사실 세상은 우리의 감각 너머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것을 좀 더 알고자 한다. 그렇게 우리는 내일 또 떠난다.

▲ 디오니소스 기둥

▲ 돌아오는 배 위의 송세진 대원

▲ 안녕 미코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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