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교차로, 이스탄불
여행자의 교차로, 이스탄불
  • 글 사진 전영광 기자
  • 승인 2015.03.26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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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ROAD | 이니그마가 담는 세상

모든 것의 시작은 이스탄불이었다. 그곳에서 여행병(?)에 감염된 탓에 지금껏 세상의 이곳, 저곳을 떠돌게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이스탄불을 일컬어 ‘문명의 교차로’라 말하지만 사실 이스탄불은 ‘여행자의 교차로’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의 동쪽과 서쪽에서 달려온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뒤섞이며 여행의 열병을 앓는다. 그리고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 이스탄불의 전경

술탄아흐멧 지구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내리니 거짓말처럼 기억이 선명해진다. 트램에 올라 술탄아흐멧 지구로 향했다. 여행의 기억은 추억이 되고 꿈이 되지만 또 다시 현실이 되기도 한다. 오래 전 술탄아흐멧 지구의 거리엔 저렴한 호스텔들이 가득했다. 조그만 방에는 삐걱거리는 2층 침대가 가득했고 여행자들의 땀 냄새가 가득했다. 이제는 물가도 많이 올라 더 이상 저렴하지도 않은 이 거리는 여전히 여행자들로 넘쳐났다. 바로 술탄아흐멧 지구의 환상적인 위치 때문이리라.

이스탄불에서 맞는 첫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눈을 부비며 호스텔 옥상에 올랐다. 눈앞으로 아야소피아 대성당과 블루모스크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둥근 돔 지붕과 하늘 높이 솟은 미나렛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환상적이다. 굳이 비잔틴 건축과 이슬람 건축의 최고 걸작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더하지 않아도 말이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눈을 비벼 본다.

▲ 술탄아흐멧지구 저렴한 호스텔들이 모여있는 거리

▲ 호스텔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

그뿐이랴? 등 뒤로는 마르마라해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지중해로 흘러 드는 푸른 바다에는 낭만이 가득하다. 이런 곳에 서서 어찌 가슴 떨리지 않을 수 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리 앉았다. 단출한 터키식 아침식사가 그렇게 근사하게 느껴질 수 없다. 딱딱한 에크멕 빵은 솜사탕처럼 부드러웠고 차이는 설탕보다 달았다. 이곳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그저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만을 바랐다. 이스탄불에서 맞는 첫 아침이다.

바자르 산책
이스탄불은 모스크의 도시이자 바자르의 도시다. 하루에도 수시로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그 삶의 중심에는 모스크가 있고 모스크 주변에는 언제나 바자르가 있다.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지나 트램이 흐르는 길을 조금 걷다 보면 그랜드 바자르를 만난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 돔 형태의 지붕 아래에는 60여 개의 길이 얽혀있고 그 사이로 5000 여 개의 상점이 자리하고 있다. 보석류, 카펫, 향신료, 기념품 등 파는 물건도 그만큼 다양하다.

▲ 실내 그랜드 바자르 밖에서 계속해서 이어지는 바자르들

그 옛날 실크로드를 건너온 물건들도 이곳에서 다시 유럽각지로,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로부터 수세기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전 세계의 관광객이 직접 이곳을 찾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 발걸음은 마치 파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의 물결을 피해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면 또 다른 바자르, 이집션 바자르로 이어진다.

터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장사에 능하다. 지나치는 관광객 마다 그 나라의 언어로 말을 걸고 인사를 한다. ‘니하오’ , ‘곤니찌와’를 자주 듣는 한국인이지만 터키에서만큼은 ‘안녕하세요’ 란 말을 들을 때가 많다. 그리고 몇 마디의 한국어가 더 이어진다. 신기한 마음에 대화를 나누던 여행자들은 어느새 안으로 들어서 달달한 차이 한잔을 마시게 된다. 터키식 홍차인 차이야 말로 터키사람들의 장사 비결이다. 차이를 입에 달고 사는 터키 사람들에겐 차이를 권하는 것이 인사말일 정도. 차이 한잔을 마시며 수다 떠는 것이 터키의 일상이다. 자그마한 차이 잔에 각설탕 몇 개를 녹이며 그들은 말한다. ‘EAT SWEET, TALK SWEET’

보스포러스
이스탄불이란 도시를 탐험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보스포러스의 짙푸른 바다로 향한다. 보스포러스는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고 골든혼은 그 물길을 도시의 중심까지 연장한다. 한눈에 봐도 천혜의 땅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고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보고 있노라면, 이스탄불이 가진 영욕의 역사가 파노라마로 스쳐 지나간다. 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곳을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정했는지, 왜 메흐메드 2세는 이 도시를 그토록 탐했는지, 왜 수많은 역사와 문명이 이 땅을 배경으로 하는지 그 모든 답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 보스포러스 대교의 야경

보스포러스 해협은 오늘도 분주하다. 수많은 페리들이 골든혼으로 나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하고 또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한다. 2층으로 된 갈라타 다리 위아래로는 차와 트램 그리고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그리고 그 발걸음을 유혹하는 수많은 상인들, ‘쉴레마니예 자미’에서부터 ‘예니자미’까지 여러 사원의 기도소리가 한데 뒤엉키면서 이스탄불이란 도시의 풍경을 완성한다.

갈라타 다리에선 이스탄불을 찾을 때마다 치르는 의식 같은 것이 있다. 먼저 부둣가 노점에서 고등어와 빵의 조화를 깨닫게 해준 고등어 케밥을 맛본다. 그리고 복잡한 사람들의 흐름 속에 섞여 페리에 오른다. 저렴한 페리에 올라 신시가지로 향해도 좋고 아시아지구의 위스크다르를 향해도 좋다. 그리고 저녁이면 다시 돌아와 갈라타 다리 아래의 식당에서 에페스 맥주를 마시며 이스탄불의 야경을 감상한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이스탄불을 그리워하며 삶을 살아갈 것이다.

▲ 아야소피아 내부

갈라타 타워

에미노뉴에서 갈라타 다리를 건너면 갈라타 지구에 닿는다. 예로부터 지중해 무역에 종사하던 제노바인들이 살던 땅이다. 제노바인들은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올리고 탑을 쌓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갈라타 타워가 긴 세월을 견뎌 여전히 골든혼을 내려다보고 있다. 다만 타워의 용도는 전망대와 식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 아야소피아에서 바라본 블루모스크

이스탄불이란 도시를 한눈에 담고 싶다면 갈라타 타워보다 좋은 곳은 없다. 62.59m의 높이로 그리 높지 않은 갈라타 타워지만 천혜의 요지에 세워진 까닭에 이스탄불이 한눈에 들어온다. 골든혼 너머로 오스만 제국의 중심이던 톱카프 궁전에서부터 아야소피아 대성당, 블로모스크까지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파노라마로 이어진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이슬람 사원의 둥근 돔과 하늘 높이 솟은 뾰족한 첨탑들이 이스탄불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그려낸다.

이스탄불은 잘 맞춘 퍼즐과 같은 도시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고 옛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다양한 문명과 종교가 만나며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는 요즈음, 터키인들의 지혜가 그립다. 한데 어우러져 행복한 도시 이스탄불이 그립다.

▲ 갈라타 다리의 부둣가 노점에서 고등어 케밥을 파는 식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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