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씨의 캠핑이야기
이른 아침부터 봄비가 내리고 있다. 입춘이 지나서 내리는 이 비는 바람이 불지 않아서인지 조용히 대지에 닿으며 길 위를 흘러내린다. 얼마 전에 다녀온 지리산에서 영하 20도가 넘는 강추위에 벌벌 떨었건만, 나의 마음은 어느새 그 시간의 기억들을 망각하고 제주로 돌아와 봄이 온 듯 유채가 넘실거리는 풍경 속에 취해 있다. 올 겨울 가장 추운 한파가 몰려왔던 날에 떠난 지리산 산행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것 또한 추억이 된다.
별이 가득하고 좋은 사람들이 머무를 때면 가끔씩 야영을 다녀온다. 동갑내기 친구 석이와 속 깊은 동생 대현이도 그들 중 하나다. 봄바람이 상쾌해서 돗자리를 가지고 지인들과 한참 동안 바람을 즐기고 온 적이 있다. 억새가 만발한 가을엔 억새를 베어버리고 나면 텐트 치기에 더 없이 좋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 베어버린 억새는 주변 승마장의 말들에게 크나큰 선물이다.
오랜만에 모인 우리는 자연스레 오름으로 향했다. 초입에 차를 세우고 라이트를 끄니 어둠이 내린 밤하늘에 별들이 가득했다. 잠시 별구경을 하고 난 뒤에 장비들을 서로 나누어들고 5분 남짓 걸리는 오름길을 걸어 정상에 섰다. 짐을 내려놓고 주변의 밤풍경을 보노라니 한라산의 실루엣과 점점이 켜진 가로등, 시내의 불빛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면 제주는 내게 참으로 좋은 인연들을 많이 선물해줬다. 어디로 흘러갈지, 어디서 만날지 알 수 없는 인연 속에서 그들이 내게 와 주었고 삶의 행복한 조각들을 서로의 삶에 채워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유난히 밤하늘이 맑던 그날 밤에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가끔 별똥별이 떨어지곤 했다.
대현이가 태어나 처음 보는 별똥별이라며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의 추억 속에 아름다운 기억을 새겼다는 그 생각과 기분 좋게 꺼낸 대현이의 그 말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우리는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며 별들과 함께 잠이 들었다. 아침 햇살이 텐트를 비추며 달콤했던 잠에서 우리를 깨웠고, 넓은 대지와 맑은 아침 하늘도 우리와 더불어 하루를 시작했다.
그 가을의 추억들을 함께 나누었던 두 사람은 지금 제주에 없다. 서른이 된 대현이는 육지로 돌아갔고 “나는 바람이 될 거야”라며 장난처럼 말하던 석이도 조만간 떠날 3개월 간의 남미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각자의 삶에서 행복하다가 서로의 길 위에서 다시 겹쳐지는 또 다른 날을 기다려본다.
ps. 나의 친구 석이에게!
3개월 간의 남미 여행을 무사히, 건강하게 마치고 행복한 기억만 가득 안고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너의 여정에 행운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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