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드바르드
‘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드바르드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5.02.2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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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국민 텐트’ 의 자존심

이번에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릴 텐트메이커는 스웨덴의 텐티피와 더불어 캔버스 텐트의 정수로 해외에서 잘 알려진 드바르드DE WAARD입니다. 저건 또 무슨 메이커지? 다들 처음 들어보시죠? 드바르드는 이전에 소개해 드렸던 텐트메이커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과 태생을 가진 텐트메이커입니다. 아시아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 60년대 초반에 출시된 대형 드바르드 텐트의 실내입니다. 공간 분할을 효율적으로 하여 독립된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대형 드바르드 텐트들의 장점이자 강점입니다.

다른 환경 다른 문화 다른 장비

먼저 유럽권에 있는 4대 캔버스 텐트메이커 이야기를 해드려야겠습니다. 미주 지역의 경우 빌 모스의 등장 이래로 원정대에 주로 사용하는 알파인 계통의 텐트가 텐트 시장의 주를 이루지만, 의외로 유럽권의 경우 알파인 계통의 텐트 이외에도 무거운 캔버스 재질의 원단을 이용하여 만든 텐트의 시장점유율이 결코 낮지 않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4대 캔버스 텐트메이커를 손에 꼽자면 저는 스웨덴의 텐티피, 영국의 벨, 덴마크의 노르디스크, 그리고 네덜란드의 드바르드를 언급하곤 합니다.

공교롭게도 4개의 브랜드가 태어난 지역은 대체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위도상 조금 더 북쪽에 있는 북유럽권에 밀집되어 있습니다. 북유럽 지역의 동절기 평균 기온은 최저 영하 5도에서 최고 영상 2도 선으로 유지되며, 하절기의 경우에도 최저 영상 10도에서 최고 영상 20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봄과 가을의 날씨가 1년 내내 반복되는 것이지요. 1년 내내 캠핑과 같은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겨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텐트메이커 드바르드가 출범한 이후 출시된 텐트들의 판매 비율입니다. 출시 년도가 빨랐던 모델 몇 종을 제외하고는 판매 비율의 측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 1957년 텐트메이커 드바르드를 설립한 창업주 P. DE WAARD의 모습입니다.
거기에 느긋한 지역적 정서가 결합이 되니 설산 등반과 같은 극한의 아웃도어 활동보다는 우리의 오토캠핑과 비슷한 캠핑문화가 발달한 것이지요. 한 곳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하여 캠핑 그 자체에 주안점을 둔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 오토캠핑과 비슷하지만, 한 번씩 베이스캠프를 마련하면 최소 일주일에서 최대 1개월까지도 한 곳에서 머무른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장박 위주의 캠핑 문화와 캔버스 텐트 시장의 발달 사이의 연관성이 있습니다. 캔버스 텐트의 경우 소재의 특성상 단위면적당 원단의 무게가 폴리 계열의 원단에 비해 배 이상 무겁고, 이를 지탱하기 위한 폴 역시 무게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설치도 번거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낮의 기온 차에 상관없이 결로가 생기지 않고 투습이 잘 된다는 점과 더불어 아늑한 실내 분위기의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 난방 시 실내 열순환에 의한 열손실이 적어 난방을 조금만 해도 금방 실내온도를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적지 않은 캠퍼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폴리 계열 원단으로 만든 일반적인 알파인 텐트와 캔버스 텐트를 비교해 보았을 때 장박 위주의 캠핑 문화에 더 적합한 것은 캔버스 텐트인 것이지요.

▲ 1958년도에 처음으로 출시된 드바르드 텐트에 부착된 로고와 그로부터 50년 뒤인 2008년도에 출시된 드바르드 텐트에 부착된 로고의 모습입니다. 로고는 바뀌었지만, 텐트의 외형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4대 캔버스 텐트 메이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볼 차례입니다. 사실, 이 4개 메이커 중 드바르드만을 제외한 3개 브랜드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초창기에는 자국 생산을 고집하다가도 여건상의 한계로 인해 부분적으로, 혹은 생산 공정 전체를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쪽으로 이관했다는 점입니다. 제품의 마감이나 완성도가 자국 생산에 비해 더 월등하기 때문에 이관한 것이라는 그럴싸한 궤변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원인은 높게 책정된 인건비 때문이지요.

그 중에서도 아이러니한 사례로 영국의 벨을 꼽을 수 있는데, 벨의 경우 영국 자국 생산을 초기에 이어나가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이 중국산 짝퉁 벨의 대량 유통의 구실이 되어 결과적으로는 회사가 적지 않은 피해를 본 적도 있습니다. 결국 그 짝퉁들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한 채 결국에는 자사의 생산 공정마저 중국으로 일부를 이관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지요.

▲ 좌측에 있는 큰 텐트가 드바르드 알바트로스 모델이고, 우측의 모델이 고드플레비어(황금물떼새) 모델입니다. 모델별로 유저가 원하는 색상의 캔버스를 고를 수 있는 옵션이 주어지는 점이 드바르드 텐트의 특징입니다. 고를 수 있는 원단의 색도 자그마치 30종이 넘지요.

독자노선의 길
드바르드는 언제나 셋과는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택하곤 했습니다. 2015년 1월인 지금까지도 네덜란드 국내에 생산 공정을 그대로 두고 있지요. 경영효율성 재고를 명목으로 텐트의 종류를 단순화시키고 단종시키는 일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의 모습을 기조라 생각하고 절대 바꾸지 않는 것이지요.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못 말리는 독불장군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드바르드가 오늘날 지니는 브랜드 가치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의미가 크지요.

드바르드라는 텐트 메이커가 설립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0여 년 전인 1957년입니다. 드바르드가 태어난 곳은 네덜란드 노스홀랜드 주의 스카저브루그였는데, 당시의 스카저브루그는 해안가에 있는 인구수 2,000명 남짓의 소도시였습니다.

▲ 드바르드 텐트 중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하는 드바르드 코닝스턴(노랑부리제비)입니다. 옵션으로 제공되는 차양을 이용하면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입구 쪽 그늘 공간을 쉘터 개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회사를 설립한 것은 드바르드 P. DE WAARD라는 이름의 네덜란드인이었는데, 의아하게도 이 사람이 회사에 세운 공적이나 사내에서 주로 한 업무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무합니다. 회사 내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샐러드 볼 안에 섞인 샐러드 요리처럼 융합되어 있었다는 뜻이지요.

이 텐트메이커의 가장 큰 특성은 원칙주의적 입장을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고수해 왔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드바르드 텐트 디자인의 기본 모티프는 바로 날아다니는 새입니다. 첫 텐트를 출시한 이래로 이 모티프는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는데, 결국 유행이나 시대의 흐름에 쉽게 변하지 않는 이 테마가 한 텐트메이커의 브랜드네임으로 자리매김했지요. 지금도 부분적으로나마 적지 않은 모델들이 출시되고 있지만, 텐트메이커를 대표하는 몇몇 모델은 60년이 지나도록 단종시키지 않고 부분적인 수정만을 거쳐 유지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 기조만큼은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 60년대에 등장한 드바르드 사의 카탈로그입니다. 실제 사진을 첨부한 카탈로그를 사용한 것은 유럽권에서 드바르드가 최초로 한 일이었습니다. 좌측 편에 있는 모델이 지금까지도 출시되고 있는 알바트로스 모델의 원형입니다.

또 다른 원칙도 정말 독보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 번 출시한 모델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생산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비록 모델의 수가 많아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다양한 소비자들의 니즈에 조금 더 세밀하게 접근해 나갈 수 있는 이른바 맞춤형 마케팅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이 직접 모든 텐트를 볼 수 있도록 판매 대리점 허가도 자사에서 출시되는 텐트 중 거의 대부분을 전시할 정도의 충분한 전시공간을 갖춰야만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크기만 해도 알파인 텐트와 비교해 보았을 때 최소 4인용 크기부터 최대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게 큰데, 최소 필요 면적이 얼마나 넓어야 하는 지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 덕에 텐트의 모델별 판매량의 편차가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고른 판매량을 꾸준히 보여 왔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그만큼 효율적이고 세밀하게 대응했다는 것이지요. 주거성이 중요한 요소였던 만큼 텐트의 라인업을 구분하는 기준도 단순히 사람이 누워있을 때 차지하는 면적만을 고려하지 않고 세부적인 주거 요소들을 고려하였다고 합니다.

▲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공식적으로 공개된 드바르드 텐트 전용 쇼룸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규모 있는 백화점의 한 층을 전부 다 쓰는 정도의 면적에 텐트를 디스플레이해놓은 셈이지요.

드바르드는 고객의 다양한 니즈에 부합하는 제품의 다양성과 높은 완성도로 당시 A형 텐트가 고작이었던 당대의 텐트 시장을 뒤흔들어 승기를 잡는 데에 성공합니다. 마치 빌 모스가 미국의 텐트 시장에 크나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과도 같은 이치였지요. 사실 텐트메이커 모스도 1980년대를 전후로 유럽 텐트 시장에 진출하기는 하였으나 그 성과는 미주에서 거둔 것에 비해 미미했지요. 그 부진한 실적에 기인한 가장 큰 요인으로 많은 유저들은 캔버스 텐트의 보편화와 정착을 언급했습니다.

네덜란드 캠퍼들의 자존심이 된 텐트메이커, 드바르드 이야기. 재밌게 읽으셨나요? 오늘날까지도 경영이며 제작 단가에 연연하지 않고 최고의 품질을 고집하는 회사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호에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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