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흐리드 호수에서 천국을 만나다”
“오흐리드 호수에서 천국을 만나다”
  • 글 사진 길바울 기자
  • 승인 2015.02.27 16: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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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타는 유럽 횡단 ‘오늘을 산다’

터키에서 불가리아를 걸어서 넘다
터키에서 불가리아로 넘어가는 날, 약 40km를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오토바이나 자전거 없소?”
“걸어서 여행 중입니다.”

▲ 한 걸음 한 걸음 길 위에서 그리는 섬세한 여행.

국경을 통과할 때 심사관과 나눈 대화다.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조용히 두 번째 나라 불가리아로 걸어 들어갔다. 텅 비어 있는 국도, 아름답고 조용히 자연 속에 안겨있는 시골풍경을 벗 삼아 물 한 모금에 만족해가며 걸었다. 이렇게 걸으니 마냥 즐겁지만은 않지만, 아주 작은 것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 작은 꽃들과 고요함, 느린 속도로만 볼 수 있는 것들과 함께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밟아 나갔다.

불가리아 시골에서 만난 도라와 보르닥
조용한 공원에 누워 가방을 부여잡았던 손도 축 늘어진 채로 한 시간 꿀 맛 같은 잠을 청하고 일어났다. 아직 하늘은 화창하기만 하고 에너지 충전도 되었으니, 다시 걸어야지. 불가리아 시골 사람들은 동양인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는지 너도 나도 인사를 건네기 바쁘다.

오늘은 어디서 자야 할까? 갑자기 빗방울이 얼굴 위로 떨어진다. 다음 마을까지는 16km를 더 가야 하기에 무리이고, 비까지 내리니 서둘러 텐트 칠 곳을 찾아야 했다. 꿈에 그리던 자유로움보다는 불안과 막막함이 더 많으니, 상상의 여행과는 완전 딴 판이었다. ‘류비메츠’라는 마을의 마지막 집 대문을 두드렸다.

▲ 도라와 보르닥의 집에서 하룻밤. 빨래도 하고 아름다운 밤이다.

그 집의 담장 너머로 비닐하우스들이 보인다. 가능하다면 저 안에 텐트를 칠 계획이다. 한 중년의 남성이 나온다. 그는 나를 보고 아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 “무슨 일 있소?” 나는 그 표정에 대고 신속하게 몸으로 대답했고, 텐트 사진을 보여주며 허락을 구했다. “비가 내려서 텐트를 쳐야겠습니다, 텐트!”

그는 바로 문을 열더니, 나를 텐트 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었다. 언어는 서로 통하지 않았어도 악수를 하며 내 이름과 그의 이름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의 이름은 ‘보르닥’이었다. 보르닥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었고, 텐트에 흙이 묻지 않도록 바닥에 큰 천막까지 마련해주었다. 그러고는 기다리라는 몸짓을 하고서 집에 들어가 이것저것 챙겨서 아내와 함께 나왔다. 아내의 이름은 ‘도라’였다.

▲ 도라와 보르닥이 마련해준 저녁밥.

보르닥과 도라는 긴 전선을 갖고 오더니 텐트에 전구를 연결해주고, 노트북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고,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바르는 약을 갖다 주었다. 도라는 텐트 앞에 테이블을 놓더니 풍족하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내주었고, 커피까지 주며 몇 번이고 안부를 묻기 위해 텐트로 와 살폈다.

다음 날 아침, 도라와 보르닥은 집에 없었다. 나는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그들에게 조용히 작별했다. 그 밤, 잔잔한 음악을 재생시켜두고 홀로 보냈던 밤은 혼자가 아니었다. 여행을 통해 잃어버렸던 것들을 찾아가는 것만 같아 설레고 감사했고 신났다. 하늘에 쏟아지던 별을 바라보며 내쉬었던 호흡은 처음 맛보는 호흡이었다. 그렇게 다시 국도 위로 올라섰다.

▲ 불가리아와 터키의 국경선 앞에서.

당나귀 히치하이킹

시골의 국도는 조용하다. 나 역시 큰 배낭을 메고 조용하게 걷고 있었다. 한적한 도로에 한 노부부의 당나귀마차가 나타났다. 신기했다. 잠시 후 저 나귀수레에 몸을 싣게 될 거라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호기심에 그들을 불렀다. “헤이! 헤이!”

그 노부부는 당나귀를 세웠다.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가방을 벗으라는 몸짓을 한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 분명 대화가 오갔고, 이런 식의 대화였다. “가방을 벗어 수레에 던져 올리고 올라타시오.” 나는 순간 예기치 않은 기쁨의 소리를 뿜었다. “우와!” 그리고 들뜬 몸을 잽싸게 수레에 실었다. “서서 타면 위험하니까 누우시오.”

▲ 국도위 당나귀 히치하이킹.

그렇게 당나귀 수레에 몸을 싣고 10km 정도를 이동했다. 시골은 신기하다. 시골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덜컥거리는 수레 위 당나귀하이킹은 이 여행에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순간을 새겨주었다.

세르비아로 향하던 발길을 마케도니아로
다시 국도 위다. 지난 2주의 가까운 시간을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와 시골 마을 부노보BUNOVO라는 곳의 산 속에서 행복하게 보냈다. 세르비아로 향하기로 했던 일정이 순식간에 뒤집혀서 마케도니아로 향하고, 알바니아로 가서 바다를 타고 쭉 올라갈 계획이다. 여행 중 변경되는 계획에 대해 겁먹는 것은 여행의 본연을 거스르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자유를 실현해본다.

얼마 되지 않은 여행길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낀다. 상상 밖의 일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이뤄지기 시작했다. 고약스럽게 두려운 마음과 막막함은 매시간 빠짐없이 나타나고, 그럼에도 걸음을 밟는 과정에서 태도를 배워간다. 걷는 내내 비가 내려 카메라 핸드폰 전부 가방에 넣고 꾸역꾸역 걷는다. 마케도니아로 향하는 길은 참 무모하면서도 모험적이다. 생각보다 어렵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보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은 것이다. 감당해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에서 용기를 얻는다.


▲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의 밤.

오늘이 그랬다. 빗속을 걷는 나를 향해 경적을 울리며 부랴부랴 차를 태워준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가 내려준 길목에 다른 차가 다시 나를 태운다. 그리고 마케도니아를 가기 전 마지막 마을, 조용히 걷다 ‘피델’이라는 친구를 만난다. 저 멀리서 울리는 경적이 나를 향한 소리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처음으로 만난 마케도니아 사람이다. 나를 태운 피델은 나에게 세 가지만 기억하라 한다. “마케도니아는 3가지야. 릴렉스, 프랜들리, 조이.”

그렇게 피델은 나를 데리고 국경 부근의 유명한 교회도 보여주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밥을 같이 먹고, 자신의 친구가 운영하는 호텔까지 대접해주었다. 피델은 자신이 다음 날부터 일을 한다며, 내가 다음 휴일까지 기다린다면 자신의 가족과 함께 휴일을 보내주길 원했지만, 우린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고 이별을 했다. 피델은 끝까지 세 가지를 강조하며 나에게 뜨거운 포옹을 주었다.

▲ 마케도니아에서의 첫 인연 피델.

무전여행 비슷한 여정에서 지난 3일 동안 모두 고기 반찬을 먹었고, 좋은 잠자리를 얻었다. 전부가 초대와 대접으로 이루어졌다. 비 오는 낯선 도로에서 온 몸이 몽땅 젖으며 나는 용기를 배우는 줄 알았지만, 실은 두려움과 기다림을 배우고 있었다. 그래도 내딛는 발걸음 안에 그 어떤 것으로 담을 수 없는 오직 내 눈으로 그 시간 속에서만이 간직될 아름다운 길을 걷고 탔다. 나는 여행의 증인, 모험의 증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5번의 히치하이킹, 천국을 만나다
마케도니아에 오면 꼭 가야 하는 곳이 오흐리드 호수다. 스코페에서 만난 터키 친구들과 일주일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마케도니아 남쪽에 있는 오흐리드로 향하고 있다. 3시간 즈음 걸었을까? 고속도로 직전까지 왔다. 스케치북에 ‘OHRID’를 진하게 적었다. 스케치북을 들고 신나게 흔들어대는 나에게 사람들은 응원과 염려를 보낸다. “여기서는 오흐리드에 가는 차를 잡을 수 없을 텐데.”

▲ 오흐리드 호수 바로 아래에서 야영 중이다.

괜찮다. 오늘 못 가면 다음 마을에서 자고 또 히치하이킹을 하면 되니까. 이상하게 내게 조금씩 담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 두려움과 막막함을 담아내며 걸었던 여정이 남겨두고 간 것이다. 내 생각보다 더 큰 힘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짐 가득한 지프차가 한 대 선다. 여행을 다녀오는 ‘데니스’와 친구들이 꾸역꾸역 내 큰 배낭을 구겨 넣고 나를 태워준다. 안될 것 같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내려준 곳에서 택시까지 태워 보내준다. 그 후로도 4번의 히치하이킹을 더해 도착한 오흐리드, 천국 같은 그곳. 들뜬 기분도 몇 시간 뿐 해가 넘어갈수록 두려워진다. 잘 곳을 찾아야 했다.

▲ 자신들의 비밀스런 장소에 텐트치는 것을 도와주는 아이들.
막연하게 앉아 있던 자리에 대충 10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영어를 정말이지 잘 했던 아이들은 낯선 내가 신기한지 이것저것 물어보기 바쁘고 나도 대답해주기 바빴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정신없이 흥미로운 대화가 오가며 느꼈다. 아이들이 참 성숙하다. 이방인에 대해 경계심 이전에 관심을 갖는다. 아스팔트보다 잔디와 돌길을 밟고 놀며, 컴퓨터보다 나무를 타며 논다. 아이들을 보며 잠시 걱정도 잊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묻는다. “폴, 오늘 어디서 자?”

“나는 오늘 텐트를 치고 잘 거야. 텐트 치기 좋은 곳 있어?” 아이들은 잠시 서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자신들의 아지트로 데려다준다고 한다. 조그마한 녀석들이 내 가방을 서로 들어보려 낑낑댄다.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배낭인데도 아이들은 흥미로운가 보다. 아이들이 아니라 친구들이다.

그렇게 골목골목을 헤치고 도착한 곳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날이 저물었고 아이들은 텐트 치는 것까지 도와주고는 내일 데리러 오겠다며 인사를 건네고 돌아갔다. 난 무엇을 보며 살아온 것일까? 그 날 내가 보낸 그 곳은 천국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의 아름다움과, 해만큼이나 밝은 달과 무수한 별이 있었다. 고요함 속에 불을 피워 밥을 해먹고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며 밤을 보냈다.

주변의 고요함을 감당하기가 버거웠지만, 그런 겁먹음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소중한 선물들이 매일 같이 넘쳐나고 있다. 격한 두려움을 극복해보니,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그 날, 천국을 닮은 곳에 있었다.

▲ 오흐리드 호수 변에 앉아있던 그 날 밤의 아름다운 석양.

▲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오흐리드 호수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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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ana 2017-03-18 15:57:36
멋진 여행이군요. 글속에서 여행하시는 분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오흐리드는 20년전부터 꿈꿨던 곳인데 이번 여름 드디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