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기록도 경신하고 입도 호강하는 가거도
낚시 기록도 경신하고 입도 호강하는 가거도
  • 글 사진 김지민 기자
  • 승인 2015.02.2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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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싱 | 가거도 겨울 낚시

가거도의 겨울 낚시는 척박한 환경에서 짜릿한 전율을 느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때로는 생명체 구경을 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낚시 조건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가 하면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와중에 대물 감성돔이 연신 잡혀 흥분을 더하는 곳이다. 가거도는 이 상반된 상황이 하루걸러 펼쳐질 만큼 변덕이 심한 섬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자신의 감성돔 기록을 경신하기 위한 곳으로 가거도만 한 섬이 없다는 사실이다.

▲ 멀리 감성돔 특급 포인트인 국훌도와 개린여가 보인다.

먼 길 달려왔더니 첫날은 노래미와 멸치 세 마리

필자도 감성돔 기록을 갈아치우기 위해 가거도로 들어왔다. 그런데 첫날부터 허탕을 칠 줄이야. 이날 잡은 거라고는 손바닥만 한 노래미와 멸치 세 마리가 전부였다. 이 멀고 먼 섬까지 와서 멸치를 낚게 될 줄이야. 한 마디로 기가 찼다. 꽝을 치고 숙소 근처로 올라오니 풍경은 장관이다. 곶부리와 홈통이 번갈아가며 잇는 갯바위 지형이 꼭 감성돔 낚시를 위해 만들어진 바다 같다. 이 날은 감성돔으로 배를 채우는 걸로 만족하고, 다음 날을 노려보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시간은 오전 7시 30분이 다 돼 가는데도 날은 여전히 어두웠다. 대한민국에서 해가 가장 늦게 뜨는 섬임을 실감한다. 꾼들의 승선에 속도가 붙는다. 나 역시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됐다. 이날은 출조점 손님, 민박집 개인 손님 할 것 없이 총출동했다. 포인트 쟁탈전이 예상되기에 짐 배치에도 신경 쓰면서 배에 올라야 했다. 바짝 긴장하고 배에 올랐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배에서 내려 10분 동안 낚시 준비를 하자 이제야 날이 밝아져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허연 물거품이 갯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일했다.

▲ 가거도 낚시 2 일차, AM 7:15.

오전부터 기상이 나빠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파도는 매우 잔잔한 편이었다. 가거도는 하늘이 허락해야만 낚시할 수 있는 섬이니만큼, 이날은 내가 가진 기량, 운, 모두를 쏟아 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즐거운 마음 대신 씁쓸한 기분으로 철수하겠고 그 기분은 한 달 후 카드 명세서를 받아보았을 때 극에 달할지도 모른다.

먼저 채비 만들기에 앞서 현장 분위기를 살폈다. 조류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제법 속도감 있게 흘렀다. 입질 예상지점은 전방 6~7m로 정하고 이곳에 밑밥을 가라앉히기 위해 조류를 고려하며 우측 두 시 방향, 물거품이 이는 곳에 밑밥을 다량으로 뿌려두었다.

▲ 36cm급 감성돔.

채비를 만들고 예상 수심인 5m로 흘려보니 밑걸림이 없다. 수심을 한 번에 7m로 조절하고 흘리니 바로 밑걸림이 생겼다. 그래서 이번에는 6m로 흘렸다. 역시 밑걸림인지 찌가 ‘자물자물’ 들어간다. 안 되겠다 싶어 낚싯대를 올리는데 밑걸림이 아니다. 뭔가 매달려 있는데 힘을 안 쓴다. 챔질하자 그제야 꾹꾹 하며 힘쓰는 것이 감성돔임을 직감했다.

올려보니 은빛 자태가 예술인 감성돔이 반겼다. 씨알은 가거도치고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낚시를 시작하자마자 이런 식으로 감성돔 두 마리를 연달아 낚았다.

▲ 48cm급 감성돔을 낚고 포즈를 취해 본 필자.
겨울엔 감성돔 낚시하는 맛이지!
한동안 입질이 없어 잠시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순간 찌가 바닷속으로 총알처럼 들어갔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약간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챔질에 성공했다. 팔꿈치 관절이 허용된 범위에서 부드럽게 휘둘렀는데도 입천장에 단단히 박힌 느낌이 전해져 온다.

그런데 이 녀석 힘이 굉장했다. 설마 줄이 끊어지겠느냐 만은 끌고 오는 경로 앞에 수중여가 떡 하니 있어 신경이 쓰였다. 이 녀석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수중여 쪽으로 파고들면 제아무리 질긴 낚싯줄이라 해도 힘없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작정 당기면 당길수록 녀석도 죽기 살기로 힘을 쓸 거다. 이럴 땐 ‘밀당’을 잘해야 한다. 녀석이 힘을 쓰면 당기지 말고 대를 조금 숙여서 놓아주는 듯하다가 잠시 주춤거린다 싶으면 걷어 올리기를 반복하며 힘을 빼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몇 초간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더니 슬슬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올려서 확인하니 씨알이 제법 큰 감성돔이다.

겨울에 살이 포동포동하게 쪄서 그런지 빵(체고)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 두께가 어찌나 두껍던지 한 손으로 들고 있기가 버거웠다. 만약 들고 있는 상태에서 펄떡이기라도 한다면, 어렵게 낚은 감성돔은 그대로 바다에 헌납하게 될 것이다. 산 물고기를 촬영하면서 굉장히 조마조마했다.

▲ 가거도 낚시 2 일차는 현지에서 ‘높담’이라 불리는 포인트에 내렸다.

상황을 보니 지금 이곳에 감성돔이 몇 마리 더 들어와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나는 미끼를 던지기 전 밑밥부터 뿌리며 감성돔이 이곳에 더 머물러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서둘러 미끼를 꽂아 던졌다. 미끼는 깐 새우를 썼다. 침 한 번 꿀꺽 삼키고 찌를 응시하는데 찌가 살짝 잠기려다 만다. 여차하면 챔질해야 하니 늘어진 원줄을 감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찌가 사라졌다. 입질이다.

이 녀석도 꾹꾹 처박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입질 받은 지점이 정면이 아닌 훨씬 왼쪽이었기 때문에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끌고 와야 했다. 괜히 여유 부렸다가는 수중여에 쓸리기 딱 좋아 기선 제압을 해나가는데 이 녀석이 힘을 팍 쓰며 맞불을 놓았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 낚시 발판이 미끄럽고 지형이 험했다.

녀석이 처박으면 처박는 대로 낚싯대 고개를 숙여주고 잠시 주춤한다 싶으면 낚싯대 탄력으로 끌어오면 된다. 정말 무지막지한 대물이 아닌 이상 이렇게 하면 대부분 통한다. 제아무리 감성돔이라도 생선은 생선 아닌가? 이 정도 생선이 인간의 힘을 이길 수는 없을 거다.

이윽고 뜰채에 담기자 순간 바늘이 훌러덩 벗겨져버렸다. 여태 덜 걸린 상태였다니 운이 좋았다. 감성돔 입장에서는 재수가 안 좋은 거지만. 이후 나는 고만고만한 씨알의 감성돔을 한 마리 더 잡아내면서 가거도에서의 원정낚시를 끝마쳤다. 비록, 본인의 기록을 경신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마릿수 재미가 좋았던 조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 앙증맞은 황점개볼락.

100% 자연산, 가거도 밥상

낮에 도시락은 형편없었는데 비해 저녁 찬은 그래도 꾼들이 잡아온 횟감이 있어 풍성했다. 자연산 감성돔 회를 주축으로 대부분 이 지역에서 나는 재료들로 반찬이 꾸려졌다. 단맛이 강한 아기 배춧잎과 물미역은 자연산 감성돔 회를 보조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자연산 감성돔 회를 아기 배춧잎에 싸서 입에 넣었다. 그 맛이 어찌나 차지고 맛있던지 알고 있는 단어를 총동원해도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런 걸 보면 낚시꾼에게는 ‘아침은 거지같이 먹고 저녁에는 황제처럼 먹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접시 안쪽에는 50cm가 넘는 자연산 우럭 회도 섞여 있었지만, 꾼들의 젓가락은 연신 감성돔에만 집중되고 있었다. 차진 식감, 고소한 감칠맛에서 우럭과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 아주 신선할 때나 볼 수 있는 오로라 현상.

이 감성돔 회를 물미역에 두어 점 올려서 싸먹으니 가거도의 차디찬 바다 향기가 입안에서 스르륵 하고 녹는 듯했다. 감성돔을 먹다 보니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낚시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일어나야 하니 부지런하지 못하면 즐길 수 없는 게 바다낚시이니 말이다.

그놈의 감성돔이 뭐기에 단잠을 포기하면서까지 수십, 수백 해리를 달려와 이 난리를 치는 걸까? 비록 서울에서 가거도로 오느라 몸은 피곤하고 허탕 쳐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지만, 이때만큼은 그런 기억에서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 인생을 산다는 게 다 그런 게 아닐까?

한편으로는 이 맛을 언제까지 낚시꾼과 어부들만 알고 있어야 하는지 안타깝기도 하다. 이 즐거운 맛을 혼자서 누리는 게 어쩐지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시중에서는 이 맛을 그대로 느끼기 어렵다. 식당이나 어물전에서 파는 감성돔은 대부분 양식이고 그중 절반 이상은 중국산이다. 어렵사리 자연산 감성돔을 구한다 해도 먼 곳에서 활어 차에 실려 온 감성돔과 직접 낚아 먹는 소위 ‘낚시 바리’와는 활력과 싱싱함에서 비교가 안 된다. 도심에서는 구하기 어렵지만, 이곳 가거도에서는 감성돔이 가장 흔한 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하나다.

▲ 혼자서만 잡아오는 바람에 조금 염치없고 어색한 포즈를 취해본다.

가거도 감성돔 낚시

가거도는 목포에서 여객선을 타고 오는 것과 진도에서 낚싯배를 타고 들어오는 방법이 있다. 필자는 수도권에서 출조점 버스를 타고 진도에 도착해 거기서 다시 낚싯배를 타고 들어왔다. 진도에서 가거도까지는 뱃길로 세 시간이 소요된다. 가거도는 서해에서 가장 먼 섬이다 보니 물때보다는 기상이 그날의 조과를 좌지우지한다. 기상이 나쁘면 아예 낚싯배가 결항해 입도 자체가 안 되니 늘 해상 날씨를 주시해야 한다.

채비
낚시채비는 고부력 반유동 채비가 손쉽고 입질도 빠르다. 가거도의 대부분 포인트는 수심이 5~10m 정도로 그리 깊지 않다. 하지만 속조류가 빨라 바닥 수심층에 맞췄다 하더라도 미끼가 곧잘 떠오른다. 이렇게 되면 감성돔의 입질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므로 수심과 상관 없이 1호~2호 사이의 찌를 권하며 3B 이상의 여부력을 확보해야 B봉돌로 목줄을 안정감 있게 잡아줄 수 있다. 낚싯대는 1~1.5호, 릴은 2500~3000번, 원줄은 3호, 목줄은 1.7~2호가 적당하다.
수도권 가거도 출조 문의 인천 피싱클럽 (010-5352-1317)

▲ 추운 겨울 낚시에 대비한 바다낚시 복장.

가거도
알려졌다시피 가거도는 1구, 2구, 3구로 나뉘어 촌락을 구성하고 있다. 총 200여 가구에 500여 명의 주민이 산다. 그중에서도 1구는 목포에서 수시로 여객선이 들어오는 덕에 물자조달이 수월하지만, 이곳 3구는 항에서 멀어 물자를 조달받으려면 배가 들어오는 날에 맞춰 나가야만 한다. 그만큼 육지에서 멀고 척박한 섬이다. 대신 바다는 자연산 전복을 비롯해 각종 해산물이 나는 황금어장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소흑산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가히 살 만한 섬’이란 의미의 가거도(可居島)가 붙여진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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