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사내의 작업주
이태리 사내의 작업주
  • 글 진정훈 소믈리에 | 사진제공 금양인터내셔널
  • 승인 2015.02.2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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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치아 모스까또 다스띠

이태리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은 축구, 로마 문명, 성급함 등이다. 그 중 이태리 남자들의 열정, 특히 여자들에 대한 작업(?) 본능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태리에서는 5살 정도의 어린 남자아이도 여자들에게 고급 멘트를 던질 줄 안다. 예를 들면 길거리에서 울고 있는 숙녀 옆을 지나가며, “시뇨라, 슬픈 보석을 길에 떨어뜨리지 마세요” 라고 말을 건넨다. 포크를 잘 사용하지 못해서 음식을 쉽게 집어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보통의 어린 아이들은 ‘이렇게 하는 거야’ 보여주며 자랑하겠지만 이태리 꼬마 남자아이는 “괜찮아, 아 해봐” 라고 한다.

낯선 이태리 남자들에 대해 경계가 아닌,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는 이야기다. 굳이 이렇게 전해오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태리로 여행을 다녀온 여성들은 이태리 남자들의 살아있는 작업 본능을 실컷 겪어봤을 것이다.

그들의 이런 본능에도 불구하고 더 확실하게 작업에 써먹을 해주는 도구가 필요해서였을까? 이태리 와인 중에 와인의 맛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주는 와인이 있다. 살짝 달콤하면서 풍성한 꽃향기, 매우 적절한 탄산은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취하는지 모르게 마실 수 있는 맛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모스까또 다스띠moscato d’asti다.

모스까또 moscato는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하는 포도 품종이며, 아스띠 asti는 이태리 서북부지방의 포도 산지 지역 중에 하나이다. 그러니까 모스까또 다스티는 아스띠 지역의 모스까또 품종 와인이란 뜻이다. 이태리에서는 모스까또라는 품종을 섬세한 기포와 달콤함을 이용해 술안주나 별도의 음식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게 잘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와인이 어색했던 약 15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이 와인 덕을 본 사람이 여럿 있을 것이다.

모스까또 다스띠를 만드는 와이너리(와인 양조장)는 여러 군데인데, 그 중에서 간치아Gancia라는 와이너리가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다. 1850년 설립 이후, 이태리 최초로 스파클링(프랑스의 샴페인 같은 스타일의 기포가 많은)을 만들었으며, 지하 와인 저장 창고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 정도로 깊은 역사와 문화를 자랑한다.

1870년 이태리의 왕 비또리오 엠마누엘 2세가 간치아를 공식 와인 공급처로 지정한 것을 필두로 교황 피오 11세, 스웨던 국왕 구스타프 6세 등 유럽의 로열패밀리들이 즐겨 마신 와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05년에는 LVMH 사의 장녀인 델핀 아르노와 간치아의 알렌산드로 간치아가 결혼하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태리의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남녀들은 그들의 본능을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어줄 와인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만약 줄리우스 시저 시대에 간치아 모스까또 다스띠가 있었다면,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도 훨씬 낭만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시저의 연인이었으나 로마를 이용해 이집트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였다는 관점이 많다. 시저가 죽은 후 안토니우스 장군과 결혼했다)

요즘 같은 차가운 날씨에 간치아 모스까또 다스띠를 가지고 교외로 나가보자.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이 시원하고 달콤한 와인을 마신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와인은 사람 간의 장벽을 쉽게 허물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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