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마운틴 하드웨어(하)
‘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마운틴 하드웨어(하)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5.01.3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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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는 계속 발전한다

지난달에 이어 마운틴 하드웨어 이야기입니다. 구멍이 숭숭 난 육각 너트, 다들 잘 아시지요? 대개는 마운틴 하드웨어를 아웃도어 패션 브랜드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 해외에서는 원정용 텐트가 아웃도어 의류 제작만큼이나 높은 공신력과 인지도를 갖는 브랜드입니다.

▲ 마운틴 하드웨어의 텐트 메이킹 역사에서 과도기에 출시된 유르트(Yurt) 모델입니다. 실리콘 코팅이 적용된 원단을 사용하는 흐름에 맞추어 출시되었으나 애매한 실용성과 크기로 단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 극소수만 생산되고 단종의 길을 걸었지요.

텐트 디자인 업계에서 빌 모스 Bill Moss와는 다른 차원의 폭발적인 광기를 발휘하여 텐트 디자인 업계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킨 마틴 제미티스 Martin Zemitis와 광기의 스폰으로 성공 신화를 만든 경영진의 이야기에 이어 이번달에는 그 후일담을 전하려 합니다.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디자인이 혁신적이고 새롭다고 해도 다양한 디자인의 가치와 수익의 가치가 부딪히면 수익이 우선시되는 게 기업입니다. 마운틴 하드웨어가 텐트 디자인 분야에서 이룬 진보는 시장을 놀라게 하고도 남지만, 그 진보가 수익을 담보하거나 수익과 비례하진 않습니다.

마운틴 하드웨어와 컬럼비아
마운틴 하드웨어는 자금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그 압박 때문에 마운틴 하드웨어는 텐트 분야뿐 아니라 아웃도어 용품 전체 분야로 부담이 전이되었습니다. 경영진의 선택은 합병이었습니다. 경영 효율성 제고를 이유로 마운틴 하드웨어는 아웃도어 업계의 모회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컬럼비아 산하의 자회사로 합병되기에 이르렀습니다.

▲ 마운틴 하드웨어가 처음으로 텐트를 출시하였을 즈음에 출시된 스카이 뷰(Sky View) 2 1세대 모델입니다. 에메랄드 색상의 플라이가 가장 큰 특징인데, 이 모델 역시 3세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단종의 길을 걸었습니다.

제품 개발 등 세세한 부분의 자율성은 어느 정도 보장되었지만, 문제는 컬럼비아 그룹에서 본격적으로 마운틴 하드웨어의 경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마운틴 하드웨어 경영진에 컬럼비아의 인력이 유입되었습니다. 그들은 경영효율성 악화의 원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따져보았고 그 결과 원인은 텐트 분야에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컬럼비아 경영진과 마틴 제미티스를 총수로 한 텐트 개발진 사이의 마찰이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컬럼비아 경영진이 마운틴 하드웨어 경영에 참여하면서 마운틴 하드웨어의 텐트 또한 세대교체를 맞이했습니다. 청록색과 회색을 조합한 2세대 디자인의 텐트가 주황색과 회색을 조합한 3세대 디자인의 텐트로 변모한 것이지요. 이후 촉발된 갈등에 의해 우연히 스페이스 스테이션 시리즈가 탄생한 것을 제외한다면 두 그룹 간의 갈등은 심심찮게 일어나곤 했습니다.

바뀐 것은 디자인뿐이 아니었습니다. 출시하는 모델의 수도 대폭 줄었습니다. 초반부에 세운 10개 이내로 모델의 수를 간소화시킴으로써 단가를 합리적으로 낮춘다는 내부 정책에 따라 스카이 뷰 모델을 비롯한 여러 디자인의 텐트들이 단종의 수순을 밟게 되었습니다.

▲ 3세대 개발 과정에서 새롭게 출시된 싱글월 모델 EV2의 모습입니다. 전문 산악인 에드 비에스터스(Ed Viesturs)의 이름 앞머리를 따서 텐트 이름을 지었는데, 합리적인 가격과 성능으로 당시 각광받는 스테디셀러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디자인의 다양성을 중시하던 유저들은 우려의 뜻을 표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소비자의 합리적인 소비 패턴에는 유연하게 잘 대처한 것이 되었지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모양은 비슷한데 제원 상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두 텐트를 두고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온 것이지요.

물론 경영진이 핵심 요지로 내세운 합리성 위주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모토를 여실히 반영해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예도 있었습니다. 스페이스 스테이션 모델의 파생형으로 나온 새틀라이트 DW 모델이 있었습니다. 4인용으로 개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인용 에어매트리스 4개가 쉽게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내부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어 컬럼비아 경영진은 해당 모델을 단종시킵니다. 그 대신 공간 활용성이 좋은 새로운 텐트를 개발하라고 텐트 개발진에 지시합니다.

그 결과로 탄생한 모델이 새틀라이트 6입니다. 이 텐트는 이전의 새틀라이트 DW 모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전실 공간을 확보했고 실내 공간 역시 확장된 데다 설치할 때 필요한 폴의 수가 줄어 유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 현재 텐트메이커 슬링핀에서 몸담고 있는 마틴 제미티스의 모습입니다. 그와 함께 하고 있는 구조물의 이름은 웹 트러스로, 내부에 이너 텐트를 걸거나 외부에 플라이를 씌우는 등 수많은 활용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높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커지는 갈등 그리고 슬링핀(Sling Pin)

컬럼비아 경영진의 수익 구조 개편으로 인해 전반적인 재정 사정은 호전되었지만, 이전에 비해 좋아진 것일뿐 경영진이 원하는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마운틴 하드웨어 사가 여태껏 유지하던 수익률이 모회사를 경영하는 그들의 눈에는 석연찮았던 것이지요.

사업 구조를 개선하여 더 많은 수익을 내고자 했던 경영진은 텐트 개발진을 상대로 이전보다 무리한 단가 인하를 요청하게 됩니다. 경영진과 개발진의 갈등은 당연히 커졌습니다. 경영진은 기업의 존재 이유를 근거로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웠고, 마틴 제미티스를 비롯한 텐트 개발진은 ‘원정대원들의 생명이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장비의 원가 절감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으로 맞섰습니다.

▲ 슬링핀에서 출시된 LFD 모델의 모습입니다. 기존에 마운틴 하드웨어 사에서 디자인하였던 스페이스 스테이션 구조를 크게 활용하지 않고 당시 발견되었던 단점들을 상당 부분 보완하여 새롭게 개발한 것이 특징입니다.

텐트 개발진 안에서도 입장이 둘로 나뉘게 됩니다. 회사의 입장을 수용하자는 온건파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파. 마틴 제미티스와 뜻을 같이 한 강경파들은 마운틴 하드웨어를 결국 떠나게 됩니다. 이들이 새롭게 세운 텐트 메이커가 현재의 슬링핀 Sling Pin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내 분위기를 수직 구조의 관료제 분위기에서 벗어나 수평적 관계를 기반으로 형성해 나갔다는 점과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폴 구조인 웹 트러스 Web Truss 구조를 선보였다는 점, 마틴과 같은 이유로 본 소속 회사에 사표를 낸 당대 유수의 텐트 디자이너들이 업계에 대한 마틴의 도전에 합류했다는 점이었습니다.

▲ 마운틴 하드웨어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4세대 버전의 스트롱홀드(Stronghold) 모델입니다. 원정용급 텐트 전체의 배색도 바뀌었고, 여태껏 마운틴 하드웨어 사의 텐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성능상의 장점이었던 다이옥신 코팅 기술도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거꾸로 컬럼비아는 자신들이 생각했던 그림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눈엣가시 같은 텐트 개발진의 총수가 자리에서 물러났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3세대 초기형의 마운틴 하드웨어 텐트들이 부분적인 원가 절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기존에 사용하던 스칸듐 폴을 알루미늄 폴로 변경하는 것부터 바닥 재질에 들어가던 두꺼운 원단을 얇은 것으로 교체하는 것까지 그 방식은 다양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웃도어 유저들 포럼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마운틴 하드웨어 사에서 공식적으로 4세대 텐트 라인업을 공개한 것이었습니다. 성과물만 절대적으로 평가한다면 진보를 이룬 것은 확실한데, 문제는 경쟁사와의 비교 과정에서 생겼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교 과정에서 가장 큰 논란을 일으켰던 회사는 마틴 제미티스의 슬링핀이었습니다.

▲ 같은 시기에 리뉴얼을 거친 트랑고(Trango) 시리즈의 텐트입니다. 기존 3세대에서도 꾸준한 판매 실적을 보유했던 모델이니만큼 4세대에서도 온전히 계승되어 출시되었습니다.

논란의 이유는 마운틴 하드웨어 사의 4세대 텐트 라인업이 기반하고 있는 배색과 그 이전부터 출시 중이던 슬링핀 사의 기본 배색이 거의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다홍색 계열이 섞인 주황색과 백색의 조합이 핵심이었는데, 이를 두고 마틴 제미티스가 마운틴 하드웨어에 잔류했다면 이런 논란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마운틴 하드웨어 사의 텐트는 기업이 원하는 수익성과 원정대원들이 원하는 기능성, 안정적인 마케팅 전략을 기반으로 현재 진행형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현재의 모습을 두고 아웃도어 포럼에서 활동하는 유수의 유저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기는 합니다만, 주관적인 입장에서 보기에는 기업의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성이 수익성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1990년대 과도기의 화려한 면모가 사라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아쉬움을 느끼지만, 과도기의 화려함을 넘어서 이제는 유수의 텐트메이커들이 지향하는 안정성이라는 개념에 조금 더 개발 비중을 두는 모습에 유저의 한 사람으로 적응해 나가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니까요.

▲ 마운틴 하드웨어 사의 3세대 트랑고 텐트와 슬링핀 사의 LFD 모델이 한 숙영지에서 동시에 사용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체적으로 유저들은 마운틴 하드웨어의 3세대의 텐트를 기능적, 실용주의적 측면에서 가장 선호하는데, 이 탓에 경매시장에 나오는 3세대 텐트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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