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가는 길, 교토
가을로 가는 길, 교토
  • 글 사진 전영광 기자
  • 승인 2014.11.0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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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ROAD | 이니그마가 담는 세상

일본의 가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바로 교토다. 천년고도 역사만큼 교토의 가을 내음은 깊고 진하다. 한번 몸에 배인 그 향은 늘 그곳을 그립게 한다. 특히 서늘한 바람과 함께 낙엽이 바스러지는 계절엔 말이다.

난젠지
천년고도 교토는 긴 역사만큼이나 아름다운 명소로 가득하다. 아무리 긴 시간이 주어진다 한들 교토의 매력을 모두 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사색하기 좋은 교토를 바쁜 걸음으로 둘러볼 수도 없는 노릇. 우선순위를 정해두고 한 곳, 한 곳 찬찬히 걸음을 옮기는 것이 교토를 여행하는 좋은 방법이다.

난젠지는 은각사에서 시작하는 철학의 길이 끝날 무렵 나타난다. 이곳을 좋은 관광지로 꼽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교토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되면 우선순위는 완전히 바뀐다.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난젠지로 향한다. 난젠지는 교토의 단풍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13세기말 가메야마 천황이 자신의 별궁을 선종사찰로 창건한 난젠지. 이후로도 막부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난젠지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그 흥망성쇠를 함께하게 되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난젠지에는 로마식 수도교를 본딴 수로각이 놓이게 된다.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코의 물을 교토 시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지만 막부와 협력한 난젠지의 맥을 끊어놓기 위한 것이었다. 사찰 내부를 가로지르는 서양식 벽돌 구조물은 무척이나 흉물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수로각에 이끼가 끼고 세월의 흔적이 덧대어지면서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내었다.

특히 화려한 단풍과 함께 어우러진 수로각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제는 이 수로각이 난젠지의 상징을 넘어서 교토의 손꼽히는 명소가 되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없다. 난젠지에서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삼문이다. 20여미터에 이르는 난젠지 삼문 위에 오르면 화려한 색으로 가득한 난젠지를 넘어 교토시내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아라시야마
옛 귀족들의 별장이 자리하던 아라시야마는 예나 지금이나 교토를 대표하는 명소다. 파아란 가을 하늘 아래, 다채로운 빛깔로 아라시야마는 물들고 호즈강은 잔잔히 흐른다. 보기만해도 가슴 탁 트이는 풍경이다.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뜻을 가진 도게츠교에는 달 대신 사람들로 가득하다. 교토의 가을을 탐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 그 풍경은 마치 메카를 찾은 성지순례자들과 같은 모습이다. 도게츠교를 건너면 아라시야마의 가을속으로 본격적으로 빠져든다. 예스러운 상점이 경쟁하듯 늘어선 거리에 인력거꾼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더해지며 기분 좋은 활기를 만들어낸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텐류지를 지나 치쿠린 대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화려한 단풍 속에서 사시사철 짙푸른 대나무 숲은 또 다른 매력이다. 울창한 대나무 숲을 걷다보면 마음속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치쿠린 대나무 숲 안에는 토롯코 열차가 숨겨져있다. 열차만큼이나 작은 토로코 아라시야마 역사는 예사로 걷다보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작은 규모다.

열차에 오르면 호즈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며 화려한 옷을 입은 듯한 아라시야마 역사로 들어선다. 풍류를 아는 차장은 마이크를 들고 돌아다니며 한 곡 뽑는다. 무슨 노래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 흥겨움만은 잘 전해진다. 토롯코 열차의 인기가 어찌나 대단한지 단풍철에는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토롯코 가메오카 역까지 갔다가 다시 토롯코 열차를 타고 돌아오거나 호즈강을 따라 뱃놀이를 즐기며 다시 도게츠교까지 돌아올 수 있다. 말그대로 신선놀음이다.

키요미즈데라
교토의 동쪽, 히가시야마 산자락에 자리한 키요미즈데라는 교토를 찾을 때면 꼭 한번은 찾게 되는 곳이다. 기온 거리에서 야사카진자를 돌아 산넨자카 언덕을 오를때면 교토에 와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다. 거리를 가득 매운 상점들은 교토의 특산품을 내세워 발걸음을 이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갈지자로 걷는 길이 제법 즐겁다. 하지만 한눈을 팔다가 돌계단에서 넘어지면 안 되겠다.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재앙이 찾아온다는 옛말이 있으니 말이다. 그 때문일까? 아직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는 이는 보지 못했다.

상점가의 유혹을 물리치고 오른 키요미즈테라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본당 툇마루는 172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하다. 그곳에 서면 아름답게 물든 히가시야마의 단풍 그리고 저 멀리 교토시내 위로 우뚝 솟은 교토타워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본당 툇마루를 지난 사람들은 세 줄기의 물이 떨어지는 오토와 폭포를 향한다. 키요미즈는 ‘성스러운 물’이란 뜻으로 이 물을 먹으면 여러 가지 효험이 있단다. 왼쪽은 지혜, 중간은 사랑, 오른쪽은 건강에 효험이 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하는 사실은 세 가지를 다 마시면 효험이 없으니 욕심내지 말 것.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에는 조명으로 불을 밝히고 야간개장을 한다. 어두운 밤 달빛 아래 웅장한 모습의 키요미즈데라와 화려한 단풍에서 교토의 가을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한 해에 며칠 되지 않는 이 특별한 기회를 만나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어 교토의 밤을 메우고는 한다.

기온의 밤
교토에 어두움이 드리워질 때면 서둘러 발걸음을 돌려 기온으로 향한다. 천년고도 교토의 밤을 만나기에 기온만한 곳이 없다. 오래된 목조건물들이 늘어선 거리는 예스럽지만 여전히 기품이 있다. 하늘 위에 엉켜 흐르는 전깃줄만 제외한다면 이곳의 풍경은 수백 년 전의 모습과 하나 다를 것이 없다.

하나미코지 거리를 걷다 만날 수 있는 게이샤들은 이곳이 오래된 도시가 아닌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다. 요정이나 연회석에서 전통적인 춤과 노래로 술자리의 흥을 돋우던 게이샤는 19세기 미술작품을 통해, 그리고 헐리웃 영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일본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짙은 화장 속에 표정을 감춘 채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지는 게이샤의 모습은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색하며 걷는 조용한 도시 교토지만 온 도시가 붉게 물드는 가을이면 아라시야마에서 시내까지 구간이 조금은 더 흥겨워진다. 물론 그 중심에는 기온이 있다. 하나미 코지에서부터 본토초까지 좁은 골목길은 늦은 시간까지 북적거린다. 교토의 선선한 가을밤 공기를 안주삼아 사케 한 잔 마시는 것이야 말로 이곳의 가을밤을 만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교토의 추억 한 페이지를 더하며 또 다른 가을밤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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