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트레킹, 첫발을 내딛다
네팔 트레킹, 첫발을 내딛다
  • 글 사진 김경희 기자
  • 승인 2014.10.23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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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KKING | 네팔

일단 지르고 보자, 카트만두로!
몇 해 전 어디선가 히말라야 트레킹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아름다운 풍광과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에 매료돼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행에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도무지 꿈으로만 남겨둘 수 없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5월 2일, 카트만두행 비행기에 올랐다. 6시간 45분의 비행 끝에 도착. 해발고도 1300m. 벌써부터 손이 떨리고 머리가 아파왔다. 도착하자마자 타멜거리에 들러 안나푸르나 지역 지도와 앞으로 트레킹을 하며 지인들에게 보낼 엽서를 구입했다.

카트만두는 전력 사정이 좋지 않다. 민박집에 들어섰을 때 이미 전기는 차단된 상태였고 거실과 계단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다. 방에서는 헤드랜턴을 켜고 움직여야 했다. 뿐만 아니라 당분간 제대로 샤워를 하지 못할 것 같아 욕실에 들어섰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주인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최근 카트만두 날씨가 좋지 않아 태양열로 물을 데울 수 없었다고 하신다. 걱정이 태산이다.

다음 날 아침, 포카라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민박집 직원 키솔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공항까지 가는 동안 그는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올 때 지불해야하는 택시비용과 고산병이 왔을 때 응급처치 하는 법, 도난을 당하지 않기 위한 몇 가지 주의사항 등을 꼼꼼히 일러주었다.

히말라야 트레킹의 시작점, 나야풀
오전 10시 반이 넘어 포카라에 도착. 택시를 타고 트레킹이 시작되는 나야풀로 이동했다. 조금씩 귀가 먹먹해지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함께 온 포터와 식당에 들어갔다. 몽롱한 상태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데 옆 테이블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행객이 앉아있다. 일행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눈길을 피하려는 순간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한국인이세요?” 인사를 하고 트레킹 경로를 확인해보니, 오늘의 목적지가 같았다. 점심 메뉴로 네팔 음식 달밧을 주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 이름은 민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느낌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동행자를 만난 듯 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첫날 트레킹 코스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작은 마을버스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었고 경사도 심하지 않았다. 왼쪽으로는 계곡이 나있어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포터도 자주 쉬며 여유 있게 걸었다.

네팔에 오기 전 날씨 예보를 확인했을 때 카트만두와 포카라의 날씨는 일주일 내내 비 소식이었고 낮 12시만 넘으면 강수확률은 매번 100%였다. 슬프게도 예보는 틀리지 않았다. 점심 이후로 날은 계속 흐렸고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짐을 내려놓고 쉬는 사이 이내 억수같이 쏟아졌다.

힐레에서 첫날 밤을
오늘 묵을 첫 트레킹 숙소는 힐레 지역의 ‘디팍’이라는 이름의 롯지. 우리는 이층으로 올라가 나란히 방을 잡고 배낭을 풀었다.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느껴졌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이곳도 차가운 물만 나온다. 어쩔 수 없었다. 머리라도 감아야지. 계속 이런 상황이면 어쩌나싶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비는 계속 내려서 양말도 속옷도 빨 수 없다. 9일 여정 중의 첫날인 데 말이다.

샤워를 마친 뒤 공용공간으로 나와 지도를 펼쳤다. 오늘 걸어온 길과 내일부터 다시 떠나야할 길을 확인했다. 엽서도 가지고 나와 친구에게 두 번째 편지를 썼다. 저녁으로 버섯수프와 볶음밥, 밀크티를 주문했다. 민주는 피자를 주문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가방에서 꺼냈다. 잠시 후 싱가포르와 중국인 여행자들이 숙소에 도착했다. 요가 클래스 멤버들이란다. 영어와 중국어가 모두 편한 민주는 낯가림 없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내게도 질문이 돌아올까 싶어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주문한 저녁이 나오고 나는 또 한 번 크게 실망했다. 양송이 수프를 기대했는데 수프는 갈색의 멀건 국물이었고 볶음밥은 너무 짰다. 그나마 괜찮은 피자와 밀크티로 배를 채웠다. 8시도 채 안 되는 시각에 저녁식사를 마쳤다. 너무 이른 시각에 자면 새벽 일찍 눈을 뜨게 돼 컨디션이 나빠져 고산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했다. 목표 취침 시간은 밤 10시. 다행히 오늘 처음 만난 민주와 오랜 시간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요가 클래스 멤버들은 요가를 하러 떠났을 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화제가 끊이질 않았다. 취침 시간까지는 가뿐하게 버틸 수 있었다.

침낭 속에 들어가자 무서운 속도로 잠이 쏟아졌다. 숙소 밖은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다. 눈을 감으니 오늘 걸어온 길의 장면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앞으로 무슨 일들이 생길지, 무사히 이 트레킹을 마칠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지금 서울의 밤은 이곳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지금 네팔에 있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이제 본격적인 히말라야 트레킹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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