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북유럽 디자인시티
헬싱키, 북유럽 디자인시티
  • 글 사진 전영광 | 취재협조 핀에어
  • 승인 2014.10.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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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ROAD | 이니그마가 담는 세상

북유럽 풍 디자인이 인기다. 북유럽 감성, 북유럽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먼저 북유럽의 매력은 무엇일까? 북유럽을 다녀온 이들은 참말로 좋았다고 입을 맞춘 듯 말한다. 그 혹독한 물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헬싱키를 향하기 전 궁금한 것이 참으로 많았다. 그렇게 수많은 호기심을 트렁크에 가득 담고 디자인 시티 헬싱키로 떠났다.

처음 만나는 헬싱키
북유럽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9시간 만에 핀란드 반타공항에 닿았다. 처음 만난 헬싱키의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북유럽의 차가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말이다.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왔고, 맨질맨질한 돌바닥은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리고 부지런히 오가는 녹색 트램이 도시에 생기를 더했다. 사람들의 표정엔 여유가 넘쳤고 옷차림엔 화사한 컬러가 스몄다.

하지만 거리의 건물들에선 차갑고 어두운 겨울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핀란드의 겨울은 두 달 동안 거의 해를 볼 수 없고 여름은 두 달 동안 거의 해가 지지 않는단다. 참으로 혹독한 자연환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핀란드 인들은 그들의 땅을, 그들의 계절을 사랑한다 말한다. 어쩌면 그런 자연환경이 핀란드 사람들을 더 강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헬싱키의 첫인상은 차분했지만 친절하고, 조용하지만 생기가 느껴졌다.

자전거투어
헬싱키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다. 헬싱키는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있고 높은 언덕이 없어 자전거를 타기에는 최고의 환경이다. 덕분인지 헬싱키의 호텔에선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많다. 선착순이란 말을 듣고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나섰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출발했는데 뭔가 조금 어색하다. 뒷 브레이크가 없어 핸들이 허전하다. 아뿔싸, 요즘 트랜드라는 싱글 기어 자전거, 픽시인 것. 앞으로 페달을 돌리면 앞으로 가고 뒤로 돌리면 뒤로 간다. 처음 타보는 픽시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편안한 자전거 도로를 달리니 조금씩 적응이 되었다.

헬싱키는 생각보다 자그마한 도시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중앙역과 번잡한 거리를 지나 해변까지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해변에 고운 모래사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공원과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다. 마리나에 정박한 아름다운 요트들 그리고 노천카페에서 차 한 잔을 즐기는 사람들,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더 이상 지나칠 수 없어 새로 익힌 픽시 자전거의 브레이크를 사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 한 잔과 함께 핀란드 사람들의 여유를 흉내 내 본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따스한 태양이 어우러지고, 작은 새가 날아와 노래를 부른다.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다. 헬싱키에 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화창한 날씨 덕분인지 주변은 다들 환한 얼굴이다. 옆자리의 가족과 자연스레 인사를 나눴다. 딸기 모양의 모자를 쓴 귀여운 아기 그리고 엄마와 할아버지가 함께다. 아기 모자가 이쁘다고 말했더니 근처의 시장에서 산 거라며 친절히 위치를 알려준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아본다. 카우파토리 시장을 향해.

카우파토리 시장
헬싱키 구도심 항구 옆에 있는 광장인 카우파토리, 카우파토리는 ‘시장 광장(Market Square)’라는 뜻의 핀란드어다. 시장은 역시나 활기가 넘친다. 하얀색 돔이 높이 솟은 핀란드 대성당이 굽어보고 있고 크고 작은 유람선들은 부지런히 오가며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상인들은 항구 앞 천막시장을 열고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과일과 야채를 파는 잘생긴 젊은이들의 환한 미소는 피하기 힘든 유혹이다. 연어와 청어를 굽는 냄새는 더더욱 피하기 힘든 유혹이다. 결국 걸음을 멈추고 연어 스프를 맛보고 말았다. 신선한 연어의 맛에 항구의 바다 내음과 적당한 북적임이 맛을 더한다. 결국 연어 스프를 다 비우고 나서야 시장을 찾은 이유가 떠올랐다.

시장을 한 바퀴 휘 돌고 주변 상인들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딸기 모자를 파는 할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소일거리로 니트 모자를 만들어 팔고 계신 듯한 할머니는 헬싱키에서 만난 사람 중 유일하게 영어를 못하시는 분이셨다. (핀란드의 공용어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결국 옆 가게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딸기 모자 대신 핀란드 국기 모양의 니트 모자를 10유로에 구입했다. 핸드 메이드라는 점과 북유럽의 물가를 생각할 때 만족스러운 가격이다.

디자인 디스트릭트
발걸음은 자연스레 헬싱키 디자인 디스트릭트로 향한다. 헬싱키는 디자인의 도시답게 에스플러네이드 거리를 중심으로 중심가의 대부분이 디자인 디스트릭트로 지정되어있다. 이곳에 핀란드를 대표하는 아르텍(Artek), 마리메꼬(Marimekko), 이딸라(Iittala), 펜틱(Pentik) 등의 쇼룸을 비롯해 200여 개의 숍이 자리하고 있다. 에스플러네이드 거리 초입에 있는 아르텍 가구 매장부터 들렀다.

핀란드 국민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였던 ‘알바 알토’의 디자인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알바 알토는 건축은 물론 유리공예, 가구, 조명 등의 디자인으로도 적지 않은 작품을 남겼다. 1933년에 디자인한 스툴 60 과 1936년에 디자인한 이딸라 꽃병이 그의 시그니처 작품이다. 심플한 디자인에 겹쳐 쌓을 수 있는 스툴 의자는 주변에서 흔하게 보던 것인데 무려 80여년전 작품이라는 것이 놀랍다. 스툴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이 지금 보아도 무척 세련된 모습이다. 그가 ‘모더니즘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다. 이딸라 매장에서도 알바 알토와 그의 아내 아이노 알토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북유럽 식기에 관심이 있다면 이딸라 숍은 성지와도 같다. 아름다운 세라믹 식기들과 유리공예 제품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은 거짓말처럼 흘러간다.

디자인 디스트릭트에서는 오래된 가구와 소품으로 가득한 앤틱숍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족히 백 년 이상 된 가구들은 색이 바래고 벗겨져 있지만 그 자체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오래된 것의 가치를 알고 지켜갈 줄 아는 핀란드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북유럽답게 제품의 가격은 상당히 비싼데, 어쩌면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소유욕일랑 곱게 접어두고 작품으로서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북유럽풍 디자인은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무언가 더해지거나 화려한 것은 아니다. 디자인은 언제나 실용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작은 변화와 센스 있는 컬러로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한다. 그래, 북유럽 디자인이란 바로 위트이자 유머이다. 북유럽의 땅을 밟고 나서야 이곳에서 디자인이 발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칫 음울해지고 침잠하기 쉬운 환경 속에서 디자인이란 그들의 삶에 미소를 더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였을 것이다. 북유럽의 감성이란 추운 겨울을 견디며 따스한 여름햇살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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