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가 춤추는 하늘 아래서 캠핑
오로라가 춤추는 하늘 아래서 캠핑
  • 글 사진 조준희 solmoru4u.blog.me
  • 승인 2014.08.2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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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엘라벤 폴라 클래식 ③

Day5 눈구덩이 오픈 쉘터에서의 하룻밤
클라우스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전날 밤 맞추어 놓은 시계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잤다. “미안한데 스토브 좀 켜줄래? 잘 안되네.” “그래? 내가 한번 볼게.” 살펴보니 연료통이 비어 있었다. 휘발유를 채우고 다시 불을 댕기니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코펠에 한가득 눈을 퍼다 물을 끓였다.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눈이기에 따로 정수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지난밤에도 심한 눈보라가 일었지만 다행히 해가 뜨니 바람이 잦아들었다. 이곳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해가 있고 없고에 따라 한낮에도 기온의 변화가 커서 체감하는 온도 차이는 상당하다.

그간 지나왔던 광활한 풍경을 뒤로 하고 이날은 구불구불한 숲길을 지난다. 가끔씩 얼음 호수 위를 지나기도 했는데 그곳에 쌓인 눈은 이미 조금씩 녹기 시작하고 있었고 얼음낚시를 즐기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인근에 사는 현지 주민들이다. 순록고기가 주식인 그들이지만 늘 순록고기만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 개썰매 여행이 가능한 시기는 12월 초부터 4월 중순까지인데 이는 적설량과 호수의 얼음 두께 때문이라고 한다.

개썰매 여행이 지루해질 때쯤 숲 속으로 이어지는 좁고 구불구불한 트레일은 달리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S자로 심하게 구불거리는 길 위에서 넘어지지 않고 개썰매를 타기 위해서는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했다. 코너에 진입하기 전에 썰매의 속도를 낮추고 회전할 때에는 체중 이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썰매가 코너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브레이크도 잘 듣지 않을 정도의 심한 내리막 구간에선 특히 더 조심해야 했다. 썰매에서 넘어지더라도 썰매를 놓쳐서는 안 된다. 썰매 개들은 스스로 멈추는 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개썰매는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가 되기 때문이다.

소나무와 잡목들이 무성한 숲 한가운데서 휴식을 취했다. 입맛이 없어 초콜릿과 에너지바 등으로 점심 식사를 대신했다. 오후 동안 이어지는 트레일의 경치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키 높은 자작나무 사이를 흐르는 깨끗한 계곡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이 느껴졌다.

두 시간 남짓 이른 시간에 숙영지에 도착했다. 썰매 개들의 잠자리를 챙겨주고 썰매에 걸터앉아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이제 캠프에서 벌어질 일상에도 익숙해지니 한결 여유로운 시간이다. 담배를 두 대째 연거푸 꺼내 무는 순간 독일의 아웃도어 매거진 기자인 알렉스(Alex)가 내게 다가오며 말을 건넨다. “저, 미안하지만…” “그래 미안해. 담배 끌께.” 처음엔 나의 담배 연기를 못마땅해 하는 줄 알았다. “아니 그게 아니고…담배 한 대 빌릴 수 있을까?” 몇 해 전에 담배를 끊었던 알렉스는 나의 담배 피우는 모습이 맛있어 보여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이지. 언제든 이야기해. 내가 빌려줄게.” 사실 나를 제외한 폴라 원정대원 모두가 비흡연자였다.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기가 좀 멋쩍기도 했는데 이제 담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겨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피엘라벤 폴라 원정길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은 텐트를 치지 않았다. 대신 큼직한 눈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잠자리를 만들어 침낭과 매트만으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이런 추운 겨울에 바깥에서 잠을 잔 경험이 없는 비전문가들이다. 때문인지 원정대장인 요한이 눈 쉘터를 만드는 요령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참가자들의 얼굴은 심란해 보였다. 눈구덩이를 파며 오픈 쉘터를 만드는 동안 난 절로 신이 났다. 온전히 혼자 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첫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혼자 쓰기엔 충분히 넉넉한 나만의 공간을 뚝딱 만들었다. 캠프파이어를 위해 죽은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고 준비해 간 태극기까지 걸고 나니 그럴듯한 쉘터가 완성됐다.

이날은 꽤 많은 미디어 그룹들이 초대되어 현장을 스케치하고 참가자들을 인터뷰했다. 유일한 동양 참가자였던 나 역시 많은 미디어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대부분의 질문은 그동안의 소감과 나의 경험 그리고 한국의 아웃도어 현황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핀란드에서 온 신문기자가 몹쓸 질문을 했다. “한국에서는 개를 먹는다고 하던데 너도 개고기를 먹느냐?” 순간 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만하자. 무슨 의도에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몹시 기분이 나쁘다.” 개고기를 먹는 나라에서 온 미개한 아시아인처럼 비치는 것도 싫었지만 매너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몰상식함에 더 화가 났다. 마지막 남은 라면을 끓였다. 술은 잘 못하지만 소주 한 잔이 생각났다.

피엘라벤 폴라의 마지막 날 밤을 축하하기 위해 주최 측이 준비한 깜짝 파티는 정말이지 훌륭했다. 스웨덴의 유명한 록밴드인 ‘만도 디아오(Mando Diao)’의 리드 싱어인 본(Bjorn Dixgard)과 구스타프(Gustaf Nor?n)가 초대되었다. 기타를 퉁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자 “우후~” 하며 썰매 개들도 함께 하모니를 넣기 시작했다. 노랫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설원 한가운데 울려 퍼지는 그들의 노래와 그곳의 분위기는 감성(感性) 그 자체였다. 큼직한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우리는 그곳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 후 진한 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 나의 쉘터로 돌아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휴대폰을 꺼내 김광석의 음악을 틀었다. 난 그렇게 타닥타닥 피어오르는 장작의 불꽃에 한참 동안 취해 있었다. 모닥불의 열기가 잠잠해질 무렵 한기가 느껴져 침낭에 몸을 넣었다.

하늘을 보니 옅은 구름 사이로 북두칠성이 반짝이고 있었다.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을 돌려보며 지난 시간을 꺼내보는 사이에 누군가 소리쳤다. “Northern Lights. Northern Lights.” 옅은 구름 사이로 좁고 기다란 연녹색의 빛줄기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오로라가 캠프의 하늘 위를 춤추기 시작한 것이다. 오로라를 처음 나의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이다. 기대보다는 희미하고 옅은 빛줄기였지만 전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오로라가 춤추는 하늘 아래서 캠핑하는 꿈을 이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련한 감성으로 가득한 밤이었다. 그날 밤 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Day6 대장정의 마무리
찬바람이 눈보라를 일으켜 침낭 속에 얼굴을 묻었다. 손목에 찬 시계를 꺼내기조차 귀찮아 몇 시쯤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꽤 이른 시각임에 틀림없었다. 아침 햇살이 동녘을 빨갛게 물들이며 조용히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키가 큰 전나무 아래 눈 쉘터에서 맞이한 아침 풍광은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보온병에 담아둔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인기척이 들려 고개를 돌리니 아웃도어 사진가인 스티븐 왓슨이 이른 아침 캠프의 비밀스런 풍광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오늘은 북극권 툰드라 원정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구간도 짧아 3시간이면 종착점에 이를 수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도 출발 시간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았다. 자작나무 껍질에 파이어 스틱을 사용해 불을 지피는 방법을 연습해보거나 캠프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팀의 대원들과 사진을 찍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각기 나라를 대표해 참가한 이들이지만 원정기간 동안 함께한 그들과 교류하는 이 시간만큼은 인종이나 국적의 다름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원정대장인 요한에게 다가가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다. 일주일간의 원정 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아웃도어에 임하는 자세는 존경받을 만했고 그가 알려준 여러 지침과 팁들은 충분히 유용했다.

이제 종착점인 베케라(Vakkera)까지 약 50Km 구간만 남겨두고 있다. 뒷정리를 마치고 마지막 날의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개썰매에 올라서니 다시 흥분되기 시작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얼어붙은 호수 위와 숲 속으로 이어지는 평탄한 트레일은 그리 험난하지 않았다. 이젠 개썰매 타기에 충분히 익숙해졌고 주변 풍광을 천천히 둘러볼 정도의 여유도 생겼다.

선두에 서서 달리던 우리 팀은 결승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다른 원정대원들과 함께 그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 무사히 끝나간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쉬움까지 밀려온다.

베케라야르비(Vakkerajarvi) 호수 위에 길게 늘어선 인파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종착점에 도착했다. 각 나라의 국기를 흔들며 종착점을 통과한 우리는 서로 포옹하며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과 함께 또 다른 모험에 대한 도전을 기대하는 표정들이었다.

피엘라벤 폴라 원정에 함께 참가한 220여 마리의 개들도 이제 각기 그들의 고향과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나흘 동안 나를 끌어준 듬직하고 용감한 개들을 일일이 쓰다듬으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개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고 그들과의 이별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할 수 있다면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싶을 정도였다. 그들은 진정 최고였다.

뜨겁게 달궈진 돌에 물을 부어서 그 열기로 사우나를 즐기는 스웨덴식 사우나에서 긴 여정의 여독을 풀었다. 무한으로 제공되는 시원한 맥주와 함께 대원들은 성공적인 폴라 원정길을 자축하며 밤새도록 이어지는 파티를 즐겼다. 믿기지 않는 환상적인 경험을 함께함에 서로 감사했고, 또 그것을 멋지게 해냈다는 것을 자축했다.

300km의 혹한의 극지방 설원을 개썰매 타고 달려왔던 피엘라벤 폴라 원정길은 그렇게 끝이 났다. 원정대장인 요한 스컬맨과 작별인사를 하며 아쉬워하자 그가 전한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끝이 났다고 슬퍼하지 말고, 이렇게 멋진 경험을 했음을 즐기세요.”

비록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차가운 극지방의 겨울 설원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웠지만, 눈부시도록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장대한 설원을 달리는 기분은 내 평생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매일 밤 새로운 곳에서 보내는 캠프는 즐거웠고 개썰매를 모는 경험은 환상적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아웃도어 마니아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는 내게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로라가 춤추는 하늘 아래에서 캠핑하는 꿈을 이루었다. 그것은 내 인생 최고의 아웃팅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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