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텐트메이커 모스 (하)
‘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텐트메이커 모스 (하)
  • 글 사진 조민석 기자
  • 승인 2014.07.2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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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들을 설레게 한 텐트메이커들

지난호에 소개한 빌 모스가 만들어낸 텐트 디자인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들려 드릴 이야기는 텐트메이커 모스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겨준 세 명의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경영의 악조건 속에서도 모스를 30년 넘게 지킨 마릴린 모스, 모스의 뒤를 이어 모스 텐트의 디자인을 완성시킨 찰스 듀발, 실용성을 도입해 대중화를 시도한 테리 브룩스가 그들입니다.

▲ 마릴린 모스 여사의 모습입니다.

모스의 미래를 보다-마릴린 모스

지난 이야기에 등장한 텐트의 사진들을 보시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신 분들이 분명히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렇게 텐트를 잘 만들어서 수익이 남기는 할까?’ 하는 생각 말이지요. 사실, 그 질문은 맞는 말입니다. 텐트메이커 모스는 1970년대에 출범하여 2001년 MSR에 인수합병 되기까지 이렇다 할 순이익을 내지 못했으니까요. 그러한 경영상의 악조건 속에서도 텐트메이커 모스를 30여 년간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사람이 바로 빌 모스의 부인인 마릴린 모스(Marilyn Moss)입니다.

▲ 마릴린 모스 여사와 빌 모스가 생전에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마릴린 모스가 빌 모스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텐트메이커 모스가 설립된 해보다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마릴린 모스는 뛰어난 화술과 경영 전략 구사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 메인 주 최고의 여성 로비스트로 그 위세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능력을 눈여겨본 빌 모스는 마릴린 모스에게 모스 그룹의 재무 분야를 이끌어달라고 부탁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백년가약을 맺게 되지요.

낮은 경영효율성으로 이따금씩 고전하던 텐트메이커 모스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해 마릴린 모스는 모스 그룹의 다른 자회사를 활용하였습니다. 70년대 초반에 모스 그룹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전문적으로 육성한 박람회 부스 디자인 분야를 총괄하던 ‘모스 전람(Moss Exhibition)’이라는 회사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마릴린 모스는 모스 전람에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를 텐트메이커 모스에 충당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정책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박람회 부스 디자인이야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봤지만, 텐트 디자인 분야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차가운 시선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1980년대 중반에 마릴린 모스는 기자들과의 담화에서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게 됩니다.

▲ 마릴린 모스 여사가 출간한 빌 모스 평전의 표지입니다.

“저는 한 회사의 가능성을 볼 때, 오늘날의 실황보다 10년 뒤, 혹은 20년 뒤에 도래할 미래의 모습을 봅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전시회 부스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모스 전람을 다방면으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모스 전람은 1984년 LA 올림픽 조직위원회 안에 있는 디자인 분야에서 그 실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텐트라는 한 폭의 예술도 그러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하는 투자의 성과가 단시간에 빛을 발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십 수 년 뒤에는 텐트메이커 모스가 텐트 분야의 예술을 선도하는 회사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장담합니다.”

빌 모스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이후 빌 모스의 평전 <빌 모스(Bill Moss)>을 만들어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텐트메이커 모스가 현재 남아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스 텐트에 대한 문화가 각국의 캠퍼들 사이에서 전승될 수 있는 이유 또한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빌 모스를 이어 텐트메이커 모스의 두 번째 총괄디자이너를 맡았던 찰스 듀발의 모습입니다.

모스 철학을 계승하다-찰스 듀발

텐트메이커 모스의 재정 분야를 마릴린 모스가 이끌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텐트메이커 모스는 1984년 개최된 LA 올림픽을 맞이하면서 수심에 빠지게 됩니다. 빌 모스가 시애틀 올림픽의 주축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위해 텐트메이커 모스의 총괄 디자이너 직을 사임하였기 때문입니다.

▲ 찰스 듀발에 의해 탄생한 슈퍼 돔 텐트의 모습입니다. 빌 모스가 고집하던 ㄷ자 모양의 출입문을 ∩ 모양으로 변형한 것이 특징입니다.
빌 모스가 지명한 후임 총괄 디자이너가 발표되었을 때, 미술계를 비롯한 아웃도어 업계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지명한 후임 총괄 디자이너는 그리 많은 경력을 갖고 있지 않았던, 새내기에 가까운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텐트메이커 모스는 안중에도 없었느냐’는 좌중의 비판이 난무했지만 빌 모스는 그러한 비난들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러는 것이었겠지요. 그렇게 지명된 논란 속 새내기 디자이너의 이름은 바로 찰스 듀발입니다.

그로써 찰스 듀발은 빌 모스가 직접 디자인하였던 모든 텐트 디자인을 어떻게 발전된 형태로 대를 이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신인 디자이너이니만큼 일각에서는 그가 빌 모스의 수작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이 오갔지만, 찰스 듀발은 모스 텐트의 디자인에 큰 변혁을 일으키는 대신 이전의 모델들이 떠안고 있던 자그마한 단점들을 솔기솔기 잡아내어 변화를 주는 것을 택했습니다. 사소한 변화였지만 그와 동시에 모스 텐트의 실용성이 한층 더 증대되었다는 점에서는 크면서도 성공적인 변화라는 평가를 동시대의 아웃도어 업계로부터 받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찰스 듀발은 빌 모스가 미처 완성하지 못했던 델토이드 모델의 후속작인 디퍼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디자인함으로서 빌 모스가 텐트를 디자인하며 추구한 철학을 온전히 이어나가는 일에도 성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리틀 디퍼라는 텐트는 텐트메이커 모스에서 출시한 텐트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텐트라는 영예까지 얻게 됩니다. 이 성공적인 성과들은 마침내 텐트 판매고가 8000동을 돌파하면서 다시 재조명을 받기에 이르지요.

▲ 빌 모스가 미완성으로 남겨두었던 디퍼 시리즈의 도면과 찰스 듀발이 완성한 디퍼 시리즈의 텐트들입니다.

▲ 텐트메이커 모스의 3번째 총괄디자이너였던 테리 브룩스가 다시 손을 댄 리틀 디퍼 모텐트의 모습입니다. 원단과 색감 등의 부분에서 기존의 것과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실용주의를 추구하다-테리 브룩스

텐트메이커 모스가 찰스 듀발에 의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 텐트메이커 모스의 역사에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 하나가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빌 모스의 사망이었습니다. 1994년 빌 모스가 사망하고 난 이후 찰스 듀발은 사건의 여파로 텐트메이커 모스의 총괄 디자이너 직을 사퇴하게 됩니다. 찰스 듀발의 뒤를 이어 텐트메이커 모스의 총괄 디자이너 직을 맡은 사람은 테리 브룩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경영진에 의해 총괄 디자이너로 지목된 테리 브룩스는 앞서 텐트메이커 모스의 전성기를 이끌어나갔던 두 명의 디자이너들과는 텐트에 대해 상반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찰스 듀발보다 더 실용주의적 관점에 치우쳐 있는 사람이었죠.

▲ 찰스 듀발과 테리 브룩스에 의해 새롭게 디자인되어 사용되었던 텐트메이커 모스의 로고입니다.

경영 효율성을 개선해 달라는 경영진의 숙제를 떠맡은 테리 브룩스는 텐트메이커 모스에 상당히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베이지색 계열의 플라이 원단을 황토색의 일반 나일론 원단으로 바꾼 것을 시작으로 하여 생산 공정을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관한 것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그와 더불어 슬리브 형식의 텐트 일부를 후크를 사용하여 폴을 고정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생산된 텐트를 GT 버전의 텐트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이 덕분에 이전에 비해 경영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부분에 있어서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와 더불어 판매 가격이 소폭 하락했으니 이를 찾는 소비자 역시 자연스레 늘게 되었지요.

예상대로 빌 모스가 추구하던 모스 텐트의 스타일을 선호하던 유저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변화로 인해 텐트의 전체적인 실용적 요소는 극대화되었지만, 그만큼 미적 요소는 현저히 떨어졌으니 그들의 반발도 일리 있는 목소리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전까지 사용되던 베이지색 원단에는 텐션 패브릭(Tensioned Fabric)이라는, 스판덱스와 유사한 성향의 기술이 들어갔는데 이 기술이 빠지게 되면서 텐트의 플라이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 기술의 부재가 기존 유저들의 반발을 크게 산 것으로 보입니다.

▲ 테리 브룩스가 새로 디자인한 리틀 디퍼의 모습입니다, 미국의 딜러가 불나방에 이 시리즈의 텐트를 비유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 테리 브룩스의 생각에 의해 새롭게 디자인된 카탈로그의 모습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황토색 플라이 색상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지요. 이따금씩 저와 국제전화를 통해 텐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딜러가 있는데, 그 딜러가 “중국산 모스 텐트는 마치 불나방을 연상케 한다”고 저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하더군요. 딜러가 왜 그렇게 GT 버전의 텐트를 표현했는지는 사진을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정말 불나방 같죠?

찰스 듀발과 테리 브룩스, 그리고 마릴린 모스라는 세 명의 인물이 오늘날까지도 텐트메이커 모스의 역사의 한 축에 들 수 있는 이유는, 텐트메이커 모스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한 그들의 끊임없는 투지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 호에는 힌두교 문화를 기본 컨셉트로 디자인된 가루다 텐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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