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짱의 한국기행 | 남원
콘짱의 한국기행 | 남원
  • 글 사진 곤도 유리 기자
  • 승인 2014.07.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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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 발자국 따라 추어탕 한 그릇

광주발! 버스로 떠나는 콘짱의 한국기행. 일본인 유학생 콘짱이 광주 광천터미널을 시점으로 전국 곳곳을 돈다. 이번 달은 22 번 승차 홈에서 ‘남원’으로 향한다.

남원, 그곳은 내가 한국 유학길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소다. 학부 2학년이었던 내게 ‘판소리’란 세계를 처음 알게 해준 ‘어머니’와 같은 곳이다. 좋아서 자주 찾아보는 영화는 많지만,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처럼 내 인생에 큰 역할을 끼친 작품은 없을 것이다. 어두운 강의실에서 화면을 바라보던 내 가슴을 갑자기 설레게 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 광한루원 입구에 놓여진 춘향과 이도령 모형.

한 발은 여기 놓고, 또 한 발 저기 놓고, 충, 충, 충충거리고 건너간다. 장송 가지 뚝 꺾어 죽장 삼어서 자르르 끌어 이리저리 건너갈 제, 조약돌 덥벅 집어 버들에 앉인 꾀꼬리 탁쳐 후여쳐 날려 보고 무수히 장난허다가, 춘향 추천허는 앞에 바드드득 들어서, 춘향을 부르되 건혼이 뜨게, “아나, 였다, 춘향아!”
-<춘향가> 中 ‘방자 춘향 부르러 감’ 대목-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간다~”로부터 시작되는 위 대목에선 이도령의 명령을 받아 그네를 타고 노는 춘향을 부르러 가는 방자의 모습이 묘사된다. 조상현 명창의 소리와 김학용이 연기한 방자의 동작 하나하나가 맞물린 그 장면은 0.1초 단위로 계산됐다는 카메라워크 덕에 시각효과마저 장단의 하나인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꺾인 충격으로 순발력 있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던져진 돌이 물속에 들어가자 높이 오르는 물보라처럼 말이다. 남원에 가면 자연 속에서 총총거리고 싶어지는 건 아마도 화면 속 방자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 광한루를 찾은 젊은 커플.

▲ 신관 사또가 부임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현재 약 8만7000명의 인구를 가진 남원시는 1읍 15면 7동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라북도에 속한다. 광주에선 약 1시간 10분이면 간다. 동편제의 시조 송흥록의 고향이기도, <흥보가>의 발상지이기도 해 판소리와 인연이 깊다. <춘향가>의 무대로서 지명도는 말할 나위 없다. 남원은 어딜 가나 춘향을 연상케 하는 상징물이 곳곳에 있다. 각종 건축물의 디자인, 거리명, 상품명 등이 그러하다. ‘춘향 이야기’는 한국인이라면, 한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5월 5일을 전후로 열리는 춘향제는 올해로 84회를 맞았다. 시작은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 올해는 6월 12일~17일에 개최될 예정이라고.

▲ 춘향과 이도령이 사랑을 속삭였다는 오작교.

단오를 맞이해 광한루에서 날개를 펴는 이도령은 그네를 타는 춘향의 모습에 매혹된다. 둘의 사랑 이야기는 광한루서부터 시작하므로 바로 운명의 장소인 셈이다. 방문객 중 젊은 커플도 적지 않은 것은 변함없는 사랑을 기약해서일까. 춘향·이도령은 어느새 ‘사랑의 신’과 다름없는 존재가 됐다. 광한루가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건 1444년, 세종대왕 때였다. 당초는 ‘광통루(廣通樓)’의 이름으로 1419년에 남원으로 유배 온 황희정승에 의해 창건됐단다. 이후 전소와 복원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1963년엔 보물 281호로, 2008년엔 명승 33호로 지정됐다. 춘향·이도령의 사랑 이야기에 매료돼 건축학적 의의를 찾지 못한 채 지나갈 수도 있지만, 기둥 위의 공포양식이 주심포집에 다포집 계통을 절충한 특수한 건물이란다. 여러모로 ‘호남제일’의 누각인 것이다.

▲ 휴식을 취하며 빙수 한 그릇.

▲ 푸짐한 한상으로 차려진 추어탕.

▲ 남원 추어탕의 상징인 미꾸리.

아카시아 향기가 풍기는 춘향테마파크에서 춘향의 발자국을 더듬는데 인형들이 “오늘은 무지 덥소. 어서 추어탕 먹으러 가세”하는 듯해 추어탕거리로 서둘러 갔다. 암행어사 풍장을 한 미꾸리가 입구에 있다면 그 가게는 추어탕을 판다는 것. 지리산 시래기가 듬뿍 들어간 추어탕이 보글보글 소리를 내면서 내 앞에 나타났다. “보고 싶었소, 내 사랑아!” 보기만 해도 공기밥 두 그릇 정도는 쉽게 넘어갈 지경인데 산초 향기가 식욕을 더더욱 돋운다.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웠을 때, 가게 주인이 냄비를 들고 테이블을 돌며 막 끓인 추어탕을 서비스로 담아주셨다. 배터지게 두 그릇이나 먹었는데 죄책감이 안 생기는 건 비타민A가 풍부한 건강식이기 때문. 추어탕은 시력과 면역력 증진에 이바지한다.

그런데 추어탕을 멀리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내 주위에서도 가리는 친구가 종종 있다. 추어탕에 대한 의식만은 ‘일편단심’을 버리고 도전해봤으면 한다. 어쩌면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지도…?

곤도 유리|일본 아오모리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제일문학부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적벽가> 예능보유자 송순섭과 판소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박사과정 중이다. 전공은 민속학. 주로 판소리, 농악 등 공연예술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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