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39
▲ 119구급대원들이 처마 아래의 말벌집을 퇴치하고 있습니다. |
지루하던 마른장마가 끝나고 산골에 짧은 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 숲으로 둘러싸인 저희 집 마당에는 온갖 종류의 곤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곤충들의 전시장’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개체의 곤충들이 출몰했지요.
많은 곤충을 보며, 곤충에 시달리는 일도 자연 속에 살고 있는 혜택이라고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곤충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던 지난 8월 초, 손님 중의 한 분이 저희 집 처마 밑에 말벌들이 집을 지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너무나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말벌인지라 살짝 긴장을 하고 말벌집을 살피니 집 처마 끝에 뚫린 구멍으로 들락날락하며 열심히 집을 건설하고 있는 중인 듯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살충제를 뿌리고 상황종료라 여겼습니다.
▲ 말벌집을 없애기 위해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있는 119구급대원들. |
난생 처음 119구급대에 도움을 청하는 일이 생기고 나니 가슴이 두근두근, 바쁜 분들에게 괜히 번거로운 부탁을 드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동네 소방서에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하니 “부담 갖지 말고 신고하시라”는 친절한 안내를 해주시는 소방서 관계자 분들.
그래서 용기 내어 119구급대에 신고하고 나니, 신고한 지 20분도 안 되어 출동하신 119구급대원 여러분들. 세상에나, 전화를 걸고 하루쯤 지나야 오실 거라는 어림짐작은 왜 했는지요.
출동하신 구급대원 여러분들은 말벌집을 살피고는 얼마만한 크기의 말벌집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보호 장구를 착용하는데 그 과정이 어찌나 죄송하던지요. 이 무더위에 두꺼운 방화복에 얼굴까지 특수 마스크 착용하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는 저도 내내 등에서도 땀이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 망사로 된 모자를 얼굴까지 덮고 나면 이 무더위에 얼마나 더울까요? |
“아주머니, 이 벌집을 아마도 9월쯤에 신고 하셨으면 아주 큰 벌집이 되어 더 힘들게 없애야 했었을 겁니다. 미리 신고 잘 하신 거예요.”
▲ 처마 끝에 송판을 뜯고 살충제를 분사하는 119 구급대원. 저 살충제 이름이 모두가 아는 그 ‘**킬라’였더랬습니다. |
아침저녁 선선해져서 가을이 문턱에 와 있음을 실감하는 요즈음, 여름 한철 바쁘다는 핑계로 ‘산골일기’ 연재를 두어 번 빼먹고 보니 계절이 벌써 바뀌고 철 이르게 단풍들고 있는 나무들도 보이는군요. 여름내 좋은 인연들로 바빴다면 이제 가을걷이 준비로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있습니다. 다들 가을걷이 준비들 제대로 하고 계시겠지요?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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