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파괴력에 상처 입은 소박한
자연의 파괴력에 상처 입은 소박한
  • 글 사진·최광호 사진가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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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사진가 최광호의 KOMSTA 동행기 | ⑧ 스리랑카(Sri Lanka)

▲ 치료를 받은 아이들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든다. 모든 것을 앗아간 쓰나미 앞에서도 그들은 웃을 줄 안다.
자연. 우리는 자연에 얼마나 당당할 수 있으며 그 자연을 얼마만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할까. 문명이 기계화되기 이전은 아름다웠다. 우주를 소유하는 방법도 지금과 다른 근원적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여지가 있는 아름다운 꿈이었으니까. 하지만 기계문명이 등장하고 풀턴이 기선이라는 이동 수단을 만들면서 필요하지 않던 ‘잉여’가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불러냈다.


이제 현대인들은 자연 위에 군림하려 한다. 자연은 이제 자연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군림한 땅, 대상일 뿐이다. 자연도 지쳤던 것일까. 아니면 화가 났던 것일까. 인공으로 꾸며진 지구에 몰아닥치는 기이한 현상들은 일순간에 인간이 구축한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 자연재해인 태풍, 화산, 지진, 그리고 쓰나미는 엄청난 위력으로 우리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 같다. ‘더 이상 자연을 건드리지 말라’는 위협처럼. 2005년 1월, 동남아를 할퀴고 간 쓰나미의 현장, 스리랑카에 다녀왔다.

아름다웠던 항구도시는 쓰나미에 파괴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엄청난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어. 이렇게 높은 파도가…, 몸으로 다가오는 공포감. 더운 지방이라 집도 허술한 것이 문제였지만 태풍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으니 바다의 무서움을 느껴 본 적이 없었지.”

▲ 상단 쓰나미로 폐허가 된 민가.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스리랑카는 세 번째다. 인천에서 출발해 콜롬보(Colombo)에 도착하여 하루 숙박하고 스리랑카 북동부 난민촌 트링코말리(Tringcomali)로 이동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트링코말리는 정부군과 타밀반군이 평화협정을 맺은 몇 년간을 제외하고, 2009년 내전종결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여행이 어려운 위험지역이었다. 비오는 날이면 호텔 앞 바다에서 발가벗고 비를 맞으며, 수영을 즐기던 아름다운 곳이며 동시에 콤스타 단원이 과로로 사망한 마음 아픈 곳이기도 하다.

쓰나미 구호 활동을 위해 다시 찾은 트링코말리. 우리의 예전 숙소였던 호텔 1층은 쓰나미로 모두 잠긴 흔적이 역력하다. 도마뱀이 천장을 기어 다니고, 물건을 채어가는 원숭이와 원숭이를 몰아내는 사람, ‘까악’ 울어대는 까마귀, 아침저녁에는 주먹만한 달팽이가 화단 풀 사이를 기어 다니는 모습이 있는 참으로 아름답던 곳. 내가 갔을 때만 해도 반군세력들의 활동으로 검문검색이 심해 밤에는 이동이 통제되던 위험하기도 했던 이곳을 다시 찾았다.

▲ 의료진이 탄 차를 보내주지 않는 이들에게, “오후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살아가는 사람들
첫날 진료 장소를 보건소로 정하고 진료를 시작했다. 수 없이 몰려드는 사람들. 끝없이  아우성치며 줄서는 모습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전쟁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렇게 힘든 하루를 마친 후.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두고 조를 짜서 이동진료를 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아침에 진료 장소로 오는 도중 “왜 우리들이 있는 곳에 와서 진료를 하지 않느냐”며 차를 막는 이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후에 와서 치료 하겠다는 약속 후에야 길을 열어 주었다.

둘째 날 오전, 베이스캠프에서 진료가 진행되었다. 우연히 여자 한의사 분이 진료하는 곳에 들어서니 어째 사람들의 표정이 엄숙하다. 의사선생님이 환자의 발을 입으로 소독하고 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셔터를 누르니 의사선생님이 되레 놀라며 계면쩍어 한다. 열악한 상황에 장비는 없고 환자의 상처는 썩어가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붉어진 얼굴로 웃는다. 오후에는 계획대로 두 개조로 나누어 현지 주민들이 사는 지역으로 이동해 진료를 한다. 어딜 가나 몰려드는 사람들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 진료를 받기 위해 끝없이 몰려드는 사람들.

▲ 딱히 아픈 곳이 없는데도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다 같다. 쓰나미로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청년은 머리가 아프다고 왔다. 그것은 병 때문이 아니라 공포심에 정신이 멍한 상태이기에 치료할 수 없단다. 그래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던 의료진은 “단기간에 치료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환자들에 의료진이 애가 닳는다. 한국에서 챙겨간 컵라면으로 요기하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맞이하기가 바쁘다.
셋째 날은 트링코말리에서 제일 피해가 심한 곳으로 배를 타고 이동한다. 사람들이 살던 곳은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지고 사람들은 학교에 모여 있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다.

그 천진난만함에 답하기라도 하듯 의료진들이 사비를 털어 학용품과 공을 사서 나눠준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의료진들은 진료뿐만 아니라 마음을 나누어 온기를 전한다. 한 의료진은 따로 칠판을 사서 학교에 선물하기도 한다. 그 모습에 어린 시절, 미군들이 과자를 땅바닥에 던져주던 것이 생각난다. “의술은 곧 인술”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소박하면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진료였다. 25명의 한의사들이 5000명이 넘는 부상자들을 진료했으며, 1만여 명에게 구호품을 전달했다.

▲ 정중히 환자를 대하는 한의사들.
▲ 침 맞은 서로의 손을 비교하며 즐거워하는 환자들.

▲ 이동진료를 마치고 주민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현장에서야 그 피해와 아픔을 알 수 있는 자연재해. 사람 사는 세상이라지만 결코 인간이 이곳의 주인이 아닌,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해는 재해가 아니라 인간들이 만든 재앙이다. 사람들이 자연을 역행해 만들어진 기이현상이다. 그런 자연을 마구 망가뜨리면 망가뜨릴수록 우리가 사는 지구의 피해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과 인간, 우리는 함께 공존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한 진료 여행이었다.

사진가 최광호 | 1956년 강릉 출생. 고교시절 우연히 시작한 사진에 빠져 거의 모든 시간을 사진과 함께 해 온 사진가.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나는 사진이다”로 답하는 여전히 뜨거운, 청춘. 우연한 기회에 스리랑카, 몽골, 티베트, 우즈베키스탄 등 수십 차례에 걸친 <콤스타> 의료봉사에 동행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숨 쉬며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풀어가고 있다.

스리랑카는 어떤 나라?

위치와 생김새 때문에 ‘인도의 눈물’이라는 별칭을 지닌 스리랑카(Sri Lanka)의 원래 이름은 실론(Ceylon)이었다.

18세기 말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던 실론은 1948년 2월, 독립한다. 하지만 다수 불교계인 신할리족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소수 힌두계인 타밀족을 정책적으로 차별하기 시작한다. 결국 1972년, 타밀어로 된 원래의 국호 ‘실론’을 신할리어인 ‘스리랑카’로 바꾸면서 타밀족의 분리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재개된다.

타밀족의 분리독립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1983년 타밀족 본거지인 자프나 반도에서 정부군 몇 명이 사망하면서부터다. 이를 도화선으로 타밀족 대학살이 자행되었으나, 2009년 타밀반군의 항복과 정부군의 무력진압으로 일단 종결되었다.
2004년 불어닥친 쓰나미로 3만 여명이 넘는 국민이 사망, 인도네시아에 이어 큰 피해를 입었다.

쓰나미란 무엇인가?

해저 단층대를 따라 해수가 급격하게 이동할 때 형성되는 긴 파장의 천해파다. 대개 얕은 진원을 가진 진도 6.3 이상의 지진과 함께 일어나는데 그 외에도 해저화산폭발, 단층운동 같은 급격한 지각변동이나 빙하의 붕괴, 해저에서의 토사 함몰, 핵폭발 등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해소(海嘯), 지진해파(地震 海波, seismic sea wawa) 또는 쓰나미(tsunami)라고도 한다. 이에 대해, 태풍 또는 저기압에 의해서 생기는 해일을 폭풍해일 또는 저기압해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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