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에서|코스프레
캠핑장에서|코스프레
  • 서승범 기자
  • 승인 2013.07.1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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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과 장비는 전문 캠퍼, 행동은 영락없는 행락객

저는 좀처럼 정장을 입을 일이 없습니다. 정장에 넥타이를 두르고 출퇴근하는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요. 예전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나 한 번씩 입었고, 요즘엔 그나마도 입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제가 정장을 챙겨 입는 날이 있습니다. 아이의 졸업식이나 입학식입니다. 아시겠지만, 졸업식과 입학식에도 정장을 입고 오는 부모는 거의 없습니다. 놀이터에서 공 차는데 축구화에 정강이 패드까지 차고 나온 모양새입니다. 제가 그런 날 정장을 입는 이유는 아이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며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여느 아빠들과 달리 운동복이나 반바지 차림인 아빠가 내심 부끄러웠나 봅니다. 제가 양복 입은 모습을 아이가 처음 본 날, 아이가 잠든 후에야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습니다.

옷의 차이는 아이만 알아채는 게 아닙니다. 가장 잘 아는 건 저 자신입니다. 누구 하나 관심도 없는데 혼자 어색한, 그런 느낌. 아이가 좋아하니 가끔 입긴 합니다만 어색함과 불편함은 가시질 않네요. 어깨를 자꾸 들썩거리거나 넥타이 매듭을 자주 매만집니다. 그래서 저는 ‘직딩 코스프레’라고 표현합니다. 진짜 ‘직딩’은 아닌 거죠. 코스프레는 ‘코스튬’과 ‘플레이’를 일본식으로 합한 말입니다. 남의 옷을 입고 그 사람인 척! 노는 거죠. 게임 캐릭터 코스프레나 좀비 코스프레가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 빨간 보자기 두르고 수퍼맨인 척 소파 위를 뛰어다녔던 것도 코스프레입니다.

요즘 인기 상종가인 캠핑장에서도 코스프레를 많이 보게 됩니다. 옷과 장비는 영락없는 캠퍼입니다. 하지만 캠핑장에서 실제 하는 것을 보면 캠퍼가 아니라 행락객인 경우가 많습니다. 캠퍼 코스프레인 셈이지요. 이들은 공통적으로 늦게까지 시끄럽고, 떠난 뒤에도 흔적을 진하게 남깁니다.

얼마 전 지리산 달궁캠핑장에 갔습니다. 5월 산 속 캠핑장의 아침은 상쾌합니다. 10시쯤 쓰레기를 치우러 아저씨 두 분과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고, 그분들 역시 웃으며 받아주셨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봉투들 앞에서 저의 인사는 무척이나 민망했습니다. “놀러 나온 건데, 어떻게 쓰레기만 나누고 있겠어요.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요. 대충이라도 나눴으면 좋겠어요.” 불은 라면과 휴지와 은박지가 뒤섞인 검은 비닐봉투에서 소주병을 꺼내던 아주머니의 말씀입니다.

옆에서 병들을 한데 모으시던 아저씨가 거드셨습니다. “지금은 양반이에요. 여름철 돼봐, 아주 난리여, 난리.” 장비는 갈수록 좋아져서 집 안이나 집 밖이나 생활하기는 비슷한데, 왜 밖에만 나오면 사람이 달라지는 걸까요? 우리의 캠핑은, 캠핑과 캠핑 코스프레 사이, 어디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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