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캠핑 l 가거도
섬 캠핑 l 가거도
  • 글 사진 | 이승태(여행작가)
  • 승인 2013.07.18 16: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지렁이들’ 살던 파도섬, 바람섬

▲ 독실산 정상 아래의 전망바위. 군사시설이 들어선 좁은 정상보다 이곳이 정상 역할을 하는 듯했다. 이진아씨가 맑고 드넓은 바다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

우리 땅 최서남단 바다 끝에 떠 있는 외로운 섬 가거도. 저항시인 조태일의 시어처럼 ‘거기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 한국전쟁을 피해갔다고 하니 나라 최고의 비서라는 <정감록>도 미처 파악 못했던 진짜 피장처인 셈이다. 남북으로 길쭉한 형태인 가거도는 길이 7킬로미터, 폭 1.7킬로미터쯤으로 고만고만한 크기의 섬이다. 그러나 섬 가운데 신안군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639미터의 독실산이 솟아 섬 전체가 매우 가파른 사면을 이루고 있다. 독실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22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선은 온통 기암절벽에 둘러싸여 자연성곽을 방불케 한다.

목포에서 136킬로미터 떨어진 가거도는 쾌속선으로 4시간 30분이나 걸릴 만큼 길이 멀고 사나워 한번 찾기도 힘들거니와 날씨 변덕이 심해 말간 얼굴의 가거도를 만나기란 더욱 쉽지 않은 곳이다. 일찍이 동료 문인들과 이곳을 찾았던 조태일은 이 외딴 섬에 이름이 같은 <가거도>라는 친구를 만들어주고 왔다.

▲ 폐교된 소흑산국민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쳤다. 아침이 되자 해무가 항리마을을 사이에 두고 바다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었다.

‘너무 멀고 험해서/ 오히려 바다 같지 않는/
거기/ 있는지조차/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
쓸 만한 인물들을 역정내며/
유배 보내기 즐겼던 그때 높으신 분들도/
이곳까지는/ 차마 생각 못 했던,
그러나 우리 한민족 무지렁이들은/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 마침내 살 만한 곳이라고/ 파도로 성 쌓아/
대대로 지켜오며/ 후박나무 그늘 아래서/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당할아버지까지 한식구로 한데 어우러져/ 보라는 듯이 살아오는 땅. (중략)
낯선 사람 찾아오면 죄 많은 사람 찾아오면/ 태풍 세실을 불러다가/ 겁도 주고 달래 보고 묶어 보고 풀어 주는/ 바람 바람 바람섬,/
파도 파도 파도섬.
(하략)

▲ 섬등반도 트레킹 중. 망부석이 있는 섬등반도는 가거도 최고의 비경 중 한 곳이다.
“쩌~기 폐교가 우리가 캠핑할 곳”
그렇게 ‘무지렁이’들이 한식구로 살갑게 모여 살던 바람섬, 파도섬을 서울깍쟁이들인 (사)한국작가협회 회원 아홉 명이 떼로 찾았다. 다행히 파도가 잔잔해 멀미 없이 도착한 가거도, 같은 배를 타고 도착해 독실산 산행 후 흑산도로 들어가는 단체 관광객 300여 명으로 인해 조용하던 섬은 일순 남대문시장처럼 시끌벅적해졌다. 간단히 가거도항만 몇 컷 찍고는 일행을 마중 나온 섬누리민박 박재원 사장의 트럭에 올라 타 도망치듯 대리마을을 벗어났다.

샛개재 오름길이 아찔할 만큼 가팔랐다. 가거도항이 있는 대리마을에서 우리가 캠핑을 할 항리마을까지는 5킬로미터쯤으로, 가거도 서남쪽 사면을 따라 멋진 풍광을 보여주는 도로가 나 있었다. 4륜구동 트럭이어서 가파른 곳이 나올 때마다 방식을 변경하느라 잠깐씩 멈춰서기도 했고, 또 사진 찍기 좋은 곳이면 박 사장은 어김없이 차를 세웠다.

샛개재 지나 10분쯤 달렸을까, 항리마을로 내려서는 지그재그 길을 앞두고 가거도 최고의 비경이라는 섬등반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몇 채 되지 않는 집들이 비탈진 초지대의 사면을 따라 들어섰고, 그 뒤로 100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해안절벽이 끊어질 듯 이어지며 비경을 풀어놓았다. 박 사장이 차를 멈추자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트럭에서 뛰어 내렸다. 할 말을 잊은 채 카메라 셔터만 누르고 있는데, 전라도 남원이 고향인 양영훈씨(49세, 여행작가)가 친절한 설명을 더했다.

▲ 몽돌해변에서 본 바위섬. 통통배 한 척이 한 무리의 낚시꾼을 내려주고는 돌아가고 있다.

“쩌~기 뒤쪽 폐교가 오늘 우리 캠핑할 곳이야. 멋있지? 그 앞이 항리마을이고, 쩌~기 아래에 지붕만 살짝 보이는 집이 섬누리민박. 박솔미와 박해일이 주연했던 <극락도 살인사건>을 여기서 촬영했어.”

양 작가는 가거도의 매력에 반해 그간 수차례 이곳을 찾았던 터라 가거도에서 현지인 못지않은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주었다. 박 사장이 어릴 때만 해도 70세대나 되어 국민학교가 시끌시끌했었다는 항리마을은 지금은 다 떠나고 대부분이 비어 있었다. 그나마도 겨울이면 죄다 목포로 나가 마을이 텅 빈단다.

▲ 해무가 감싼 신비로운 풍광의 섬등반도. 깎아지른 해벽이 100미터 높이를 자랑한다.

‘섬등반도’, ‘몽돌해변’ 어디라도 그림

식사 후 주변 산책을 겸해 섬등반도로 향했다. 가장 흔한 식물은 키가 큰 강활. 민박집 주변으로 가득했다. 바위 위로는 갯메꽃이 만발했고, 바위채송화 금빛 꽃이 여기저기서 눈부셨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린 해국과 갯까치수영도 바위틈새서 반가운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달팽이가 많은 것도 독특했다. 그 달팽이를 먹고 사는지, 백로도 심심찮게 보였다. 산에는 염소와 황소가 야생에서 살아가고 있단다. 섬등반도로 이어지는 길은 전망대를 갖춘 데크로 정비되어 있었다. 능선에서 만난 군용 서치라이트와 텅 빈 초소가 이곳이 국경지대(?)임을 새삼 느끼게 했다.

▲ 독실산 전망바위에서 딴 한 움큼의 산딸기를 들고 즐거워하고 있는 이진아씨. 크기도 했지만 정말 달고 맛있었다.
▲ 섬등반도의 한 바위에 오른 진우석씨. 멀리 해무에 휩싸인 구굴도가 이승인가 싶다.

우리는 데크시설이 끝난 곳에서 건너편의 돌탑이 선 봉우리까지 좀 더 가보기로 했다. 길은 오르내림이 급해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초지를 이룬 돌탑봉에 앉아 해무가 덮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독실산과 항리마을을 보고 있자니 그대로 그림이었다. 아니, 가거도 어디라도 다 그림 같았다.

저녁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몽돌해변으로 내려섰다. 오래 된 시멘트계단 위로 데크를 깔아놓았다. 지형이 워낙 가팔라서기도 했겠지만 계단 하나의 높이가 거의 30센티미터쯤이어서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다. 숨을 고르며 150여 개의 계단을 다 내려서니 몽돌이 깔린 작은 해변이 나타났다. 사방으로 절해고도인 가거도에 이런 해안이 숨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밀려왔다 빠질 때마다 파도는 “촤르르- 촤르르-” 몽돌을 씻어냈다. 그 소리가 모두의 넋을 잃게 했다. 눈앞으로 펼쳐진 풍광은 또 어떠한가! 서해 대부분의 바다가 탁한 빛깔이지만 이곳 가거도 바다는 동해처럼 짙은 코발트빛을 띤다. 물빛도 투명해 스노클링에 딱일 정도다.

▲ 두 번째 전망바위에 올라 풍광을 스케치 중인 이상임씨. 왼쪽이 섬등반도고 오른쪽 섬이 구굴도다.

▲ 독실산 산행 끝부분에서 만난 섬등반도와 항리마을.

온갖 별 헤던 가거도의 밤

해 지기 전 서둘러 텐트를 쳤다. 네 명 모두 솔로캠핑 준비를 해 온 터라 폐교 운동장에 네 동의 텐트와 미니 타프가 들어섰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창문도 다 깨진 을씨년스런 교사와 일행의 컬러풀한 텐트와 타프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교사 앞엔 여느 ‘국민학교’에나 있던 ‘이승복 어린이상’과 ‘독서하는 소녀상’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허물어진 채 서 있다. ‘비 오는 날 밤 12시가 되면 동상들이 내려와 운동장을 뛰어다닌다’는 학교괴담이 예서는 꼭 진짜일 것 같은 다소 으스스한 분위기다.

▲ 섬등반도 한쪽에서 만난 무덤. 평생 바다와 함께 살았을 저이는 지금도 그 바다를 통째 끌어안았다.

▲ 뒤쪽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만난 몽돌해변. 짧은 해변이지만 몽돌 구르는 소리의 감동은 긴 여운을 남겼다.

안주인의 손맛에 반한 캠핑 팀도 취사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둔 터여서 민박집에 내려와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 박 사장이 집 앞 바다에서 잠수해 잡은 뿔소라와 해삼, 삿갓조개, 거북손 등 해산물을 이용한 바다향 가득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예쁜 상차림만큼이나 맛도 예술이어서 모두의 눈과 입이 즐겁다.

“여기서 일 년쯤 살까 봐요. 그러면서 사모님께 요리를 배우고 싶어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 잘 배워둬. 내년에 와서 데려갈게. 그럼 앞으로 캠핑 갈 때마다 진아씨가 요리하면 되겠다.”

이진아씨와 진우석씨의 대화가 식탁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기막히게 맛난 저녁상에 웃음바이러스까지 더해져 더없이 행복한 밤이었다.

▲ 항리마을에서 뒤돌아 본 풍광. 이처럼 가거도는 척박하고 또 척박한 땅이다.

▲ 섬누리와 섬등반도.

오락가락하던 해무로 오후 내내 흐르더니 늦은 밤 캠핑지로 올라갈 때는 하늘에 별이 총총. 은하수까지 떴다. 별 사진을 찍으며 이 별 저 별 온갖 별을 헤는 아름다운 밤. 독실산 산행을 하기로 한 내일은 날이 좋겠다.

▲ 항리에서 만난 해넘이. 수채화 같은 황혼이 하늘 가득 번져가고 있었다.

▲ 별을 헤던 밤.

▲ 신선봉에서 본 독실산. 저 울창한 숲은 후박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꼭 한번 가봐야 하는 아름다운 섬, 가거도

▲ 백년등대와 등대지기 숙소

캠핑지

가거도에서는 크게 두 곳의 캠핑지를 추천한다. 2구인 항리마을에 있는 폐교된 ‘소흑산국민학교’ 운동장과 1구인 대리마을의 ‘김부연하늘공원’이다. 섬등반도를 등지고 들어선 소흑산국민학교의 운동장은 관리되지 않아 잡풀이 더 많은 잔디와 가운데 드러난 잔돌 섞인 흙으로 되어 있다. 긴 쪽이 50~60미터쯤 되고, 폭은 30미터쯤이다. 운동장에서 뒤쪽의 섬등반도 능선이 지척이고, 오른쪽의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아담하고 예쁜 몽돌해변을 만난다. 운동장 앞으로는 가파른 벼랑 위에 제비집처럼 들어선 서향한 항리마을이 풍광을 이룬다. 정면은 독실산. 항리마을에 ‘섬누리민박’이 있지만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매점이 없고, 대중교통이나 다른 편의시설도 전무하다. 섬누리민박의 트럭을 이용해 가거도항까지 이동해야 한다.

김부연하늘공원은 가거도의 각종 방파제 공사를 위한 돌을 대던 채석장 터에 들어선 공원으로, 바로 앞은 몽돌이 깔린 동개해수욕장이다. 가거도의 번화가인 가거도항을 낀 대리마을이 지척이어서 편리하다.

▲ 동양고속 쾌속선 ‘뉴골드스타’호

교통

가거도행 여객선은 목포항여객터미널(061-240-6060)에서 매일 출발한다. 신안군의 비금·도초도와 다물도, 흑산도, 상태도, 하태도, 만재도를 지나 마지막에 소흑산도라 불리는 가거도에 닿는다. 매일 08:10에 출발해서 12:20에 도착한다. 가거도에서는 13:00에 출발해 다시 위의 섬들을 거꾸로 경유해 목포항에는 17:40에 닿는다. 가거도까지 편도 6만1300원. 여름 성수기엔 10% 할증. 짝숫날에는 남해고속(061-244-9915)에서, 홀숫날에는 동양훼리(061-243-2111)에서 운항한다.

▲ 벼랑 끝에 자리잡은 섬누리민박

잘 데와 먹을 데

가거도 항리마을에 창 가득히 아름다운 섬등반도가 들어오는 ‘섬누리 민박(061-246-3418. sumnuri.com)’이 있다. 토박이인 박재원 사장 부부가 운영하는 ‘섬누리’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장어국수와 해물수제비, 섬누리정식 등 각종 별미들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 맛을 잊지 못해 부러 이곳을 찾는 마니아들도 많다.

2010년에 섬누리 가족의 이야기가 KBS 인간극장을 통해 5부작(‘가거도 내 사랑’)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서울 수유리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인 안주인이 섬 총각을 만나 이 외진 땅끝까지 시집 온 아름다운 이야기는 가거도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드는 러브 스토리다.

섬누리정식은 7천원, 장어국수와 해물수제비, 어죽은 1만원. 이 외에 각종 회와 매운탕, 생선찜, 흑염소불고기, 거북손과 삿갓조개를 이용한 요리 등 미리 예약해야 맛볼 수 있는 별미들이 많다.
가거도항이 있는 대리마을엔 민박집과 식당이 많다. 가거도 중앙식당민박(061-246-5467), 남해장(061-246-5446), 다이빙리조트(061-246-525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