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을 시작하자 내리던 비와 바람이 잠잠해져 회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 오를 수 있었다.
갑사~금잔디고개~삼불봉~동학사…약 8km 총 4시간 소요
계룡산은 주봉인 천황봉(845m)을 비롯해 연천봉·삼불봉·관음봉·형제봉 등 20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다. 전체 능선의 모양이 마치 닭 볏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계룡산이라고 불린다. 신라 5악(五嶽) 가운데 하나로 백제 때 이미 계룡 또는 계람산, 옹산, 중악 등의 이름으로 바다 건너 당나라까지 알려졌으며, 풍수지리상으로도 한국의 4대 명산으로 꼽혀 조선시대에는 이 산기슭에 새로 도읍지를 건설하려 했을 정도였다.
 |
| ▲ 오르막과 내리막에 돌길과 돌계단이 많아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에겐 다소 고생스러울 수도 있으니 유의하자. |
오랜만에 참여하는 지방 산행. 이번엔 계룡산(845m)이란다. 계룡산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공주지만 대전 근교의 대표 산이기도 하고 대전에서 자란 내가 처음 가출해서 가본 곳이기도 한 어릴 적 추억이 많은 산이다. 근 이십여 년 만에,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산우들과 함께 다시 가보려고 하니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출발 전날 태풍 마로라는 놈이 올라온다고 해서 ‘우중산행이 될까’ 많은 산우들이 걱정했지만 출발 무렵에 비는 오지 않았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안국역에서 첫차를 타고 일산 백석에 도착하니 산우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오랜만에 만나는 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커피도 맛있게 한잔 마신 뒤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리는 비를 뚫고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계속 달린다. 버스에서 잠시 생각했다. ‘이 버스처럼 나도 비를 뚫고 계룡산까지 달려가야 하나…. 오랜만에 그것도 고향인 대전 근교에 있는 계룡산으로 가는 산행인데,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산에 가려는데, 왜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바람은 이렇게 불어대는 것일까? 왜 하늘은 이렇게도 무심한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까짓 비가 대수야? 내겐 든든한 산우들이 있으니 버스처럼 장대비를 뚫고 일단 계룡산까지 가보는 거야.’ 하고 말이다.
내 마음을 하늘도 알았을까? 도착하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지난 뒤 산의 풍경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에 힘을 얻고 우리는 갑사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 들머리에 정갈하게 깔려있는 돌길은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준비운동으로 충분한 코스다.
비가 그친 뒤 상쾌한 기분으로 산행 시작
계룡산 삼대사찰 중 하나면서 많은 문화유적을 간직한 천년고찰 갑사에서 일행은 잠시 기도를 드렸다. 계룡산을 오르기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른다.
갑사에서 출발해 대성암을 지나 용문폭포에 오르는 길, 들머리 연못에 핀 연꽃을 시작으로 갈참나무, 풍개나무, 신갈나무, 쪽동백나무, 물푸레나무, 소나무, 전나무가 저마다 위용을 뽐내며 우리를 반겼다. 여기에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어찌나 시원한지 여기저기서 흥얼거렸다. 산위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 또한, 우리를 자연 품에 안긴 듯 포근하게 해 산행에 최상의 조건이 됐다.
산행 환경이 이리도 좋은데 용문폭포를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저마다 인증샷이라 부르는 기념사진을 찍어 주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가을단풍으로 더욱 유명한 높이 10m의 용문폭포는 좋은 풍광과 함께 산행에서 꼭 필요한 쉼을 얻게 하는 명소였다. 아직 가을이 깊지 않아 좀 아쉬웠지만.
 |
| ▲ 갑사는 규모는 크지 않아도 420년 창건한 유서 깊은 절로 산사의 운치를 만끽할 수 있다. |
하지만 즐거움은 거기까지였다. 오늘 코스 중 금잔디고개~삼불봉고개 코스가 나름 깔딱고개인지라 우리는 숨을 헐떡거리며 걸었다. 산꾼이 보면 ‘이 정도 가지고 엄살을 부리냐’며 나무랄 수도 있지만 이 날의 산행코스에서 나름 깔딱고개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삼불봉고개에 다다랐을 때 월금산악회의 이원발 산행대장께서 “연장자들은 남매탑으로 바로 내려가고 자신이 젊다고 생각하는 회원은 삼불봉 정상에 다녀오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다. 철제계단이 있어 좀 힘들지만, 고개에서 200m 거리라서 어렵지 않다고 등을 떠밀듯 권했다. “경치 끝내주고, 관음봉, 연천봉과 함께 계룡산 내 가장 유명한 봉우리 중 하나다. 세 명의 부처형상을 닮았다고 이름 지어진 삼불봉인데, 여기를 어떻게 그냥 지나치냐?” 혈기왕성한 몇 명의 대원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삼불봉을 향해 올랐다.
▲ 오뉘탑이라고도 불리는 남매탑에는 스님과 처녀에 얽힌 애틋한 전설이 전한다.
남매탑 주위에 둘러앉아 즐거운 식사
거리도 가깝고 오르는 길도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정상인지라 안개 때문에 사방이 하얗다. 하지만 우리는 착한사람에게만 아름답게 펼쳐진 광경이 보인다는 농담을 나누며 재빠르게 납매탑으로 내려왔다. 내려가서 다른 일행에게는 “삼불봉 정상에 오르니 거짓말같이 안개가 사라지며 주변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모두 보고 왔노라”고 장난스런 말을 건넸다. 그 말에 일행은 “나도 본 것 같다”고 한마디씩 하며 크게 웃었다.
우리는 남매탑 주위에 둘러앉아 각자 정성스럽게 준비한 도시락을 나누며 산행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식사를 마친 뒤엔 남매탑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고2 겨울방학 때 와보고 정말로 오랜만에 와보는 남매탑이다.
청량사지 오층석탑, 칠층석탑이라고도 불리는 남매탑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한 스님이 동굴에서 도를 닦는데 목에 가시가 박힌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스님이 그 가시를 뽑아 주자 이에 보답하려고 며칠 뒤 호랑이는 처녀 하나를 등에 업고와 스님 앞에 내려놓고 갔다. 스님은 날이 밝는 대로 처녀를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처녀의 부모는 이미 스님과 밤을 보냈기에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낼 수 없다고 했다. 이에 고심한 스님은 그 처녀와 부부가 아닌 남매의 연을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 불도에 힘쓰다가 한 날 한 시에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
| ▲ 회원들은 동학사 대웅전 앞 계단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갑사~동학사 산행을 마무리 했다. |
일행은 최종 목적지인 동학사를 향해서 하산을 시작했다. 산에서는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서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이 더 위험하다. 그런 이유에 다들 분주하지 않게 쉬엄쉬엄 걷는다. 그렇게 여유로운 걸음으로 1.6km정도 내려오니 어느덧 동학사에 다다른다.
동학사는, 절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동학사라는 설과, 고려 말의 충신이자 동방 성리학의 원조인 정몽주의 제사를 이곳에서 지내 동학사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현재 비구니만 기거하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동학사 대웅전 앞 계단에 앉아 단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 김승욱 방송연기자
|
성노진 | 극단 ‘신기루만화경’ 소속 연극배우. ‘인류 최초의 키스’, ‘자객열전’, ‘철로’, ‘다락방’ 외 다수의 연극과 영화 출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