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자의 캠핑 기어 ㅣ 침낭 ①Interview 우석훈 다나산업 대표
이기자의 캠핑 기어 ㅣ 침낭 ①Interview 우석훈 다나산업 대표
  • 글 이형로 기자 ㅣ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2.11.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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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1박2일팀이 와도 그냥 안 줘”

▲ 다나산업 우석훈 대표와 아내 서경희씨. 몸이 불편한 우 대표를 대신해 서 여사가 실무를 맡고 있다.

“박영석, 엄홍길씨 모두 다나 침낭 썼죠. 예전에 원정대 90%는 우리 집에 와서 가져갔으니까요. 얼마 전엔 1박2일팀이 와서 협찬해달라고 하다가 결국 사갔어. 우리는 그냥 안 주거든.”

10년 전 쓰러져 몸이 불편한 우석훈 사장을 대신해 옆에 앉은 아내 서경희씨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끝마다 품질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책장에서 꺼내 펼친 서류 봉투에는 각종 산악연맹, 대학산악부 이름이 빽빽하게 적혀있다. 모두 다나 침낭을 쓴 사람들이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침낭 하면 ‘다나’라는 이름이 제일 먼저 나왔다.

“저 양반이 몸이 불편하지만 지금도 일주일에 3번은 나와서 직접 확인해요. 침낭 두드려보면서 여기 몇 그램 더 넣어야겠다고 말해요. 옛날부터 품질에 대해서는 빈틈이 없어요.”

▲ 전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산악인과 마니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주문 생산할 수 있다”는 게 서경희씨의 설명.

다나의 품질은 일찍이 고산등반을 통해 인정받았다. 원정을 다녀온 대원들의 보고서를 우석훈 대표가 항상 꼼꼼하게 점검했다.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 나갔다. “다녀온 원정 대원들의 불만이 거의 없었다”는 서경희씨의 말은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예전에는 일산공장에 10명 정도 있었는데 요즘은 인원이 줄어 3명이 만든다. 모두 다나와 함께 세월을 보낸 베테랑들이다. 하지만 전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탓에 한 사람이 종일 일해야 하루에 겨우 침낭 2개가 나온다고. 대신 그동안 쌓은 노하우와 기술력 덕분에 침낭에 몸을 넣었을 때 입체적으로 감싸준다고 한다.

요즘은 고산등반에 스폰서 문화가 많아져 다나산업 같은 중소형 업체는 상황이 어려워졌다. 산악인들이 대기업 장비 일체를 후원받기 때문에, 다나 침낭이 아무리 우수해도 가져가기 어려운 탓이다. 조금 아쉬울 법도 하지만 다나를 이끌어가는 두 부부는 담담해 보였다.

“우리는 꾸준하게 물건 잘 만들면 돼요. 세계 어디 내놔도 괜찮은 제품이라는 자부심이 있거든. 다른 제품 보고 흉내 낼 여유도 없어요. 우리는 우리 꺼 하는 거지 뭐.”

▲ 우리나라 90년대 고산 등반 역사를 언급할 때 다나는 빠질 수 없는 업체다.
▲ 95년 브로드피크 정상에서 산악인 엄홍길씨가 다나의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산악인들이 “다나 덕분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고 전해주는 한 마디가 큰 보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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