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또 하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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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사진·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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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길 | ⑨ 북한산 둘레길

▲ 북한산성 입구를 지나면 북한산성계곡 너머로 북한산의 대표 봉우리인 원효봉~백운대~만경대~노적봉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우이동~정릉~은평뉴타운~북한산성~효자동 총 44km

드디어 서울에도 둘레길이 열렸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만든 북한산 둘레길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상징인 북한산을 장장 44㎞ 도는 장거리 코스다. 둘레길은 주로 저지대와 마을 사이를 에돌기에 북한산의 짜릿한 맛을 느끼기에 다소 부족하다. 하지만 대부분 호젓한 숲길이 이어지고, 북한산에 기대 사는 마을의 다양한 표정을 읽을 수 있어 매력적이다. 
 

2007년 제주도 올레와 지리산 둘레길에서 시작한 걷기 열풍은 마침내 2010년 9월, 수도 서울에 북한산 둘레길을 탄생시켰다. 북한산 둘레길은 다른 국립공원에 급속도로 파급되고, 등산과 관광이 주로 행해지는 획일적인 국립공원의 탐방 문화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 불광동 일대 조망이 시원한 스카이워크 전망대.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둘레길 시작
북한산 둘레길은 우이동에서 시작해 수유동~정릉~평창동~진관동(은평뉴타운)~북한산성~고양시 효자동~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를 거쳐 우이령 고개를 넘어 다시 우이동으로 이어진다. 시작은 우이동이지만, 북한산을 한 바퀴 돌기 때문에 서울 시민이라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면 된다.

필자의 집은 서대문구 홍은동 탕춘대성 아래다. 평소에 탕춘대성 일대가 산책 코스인 덕분에 북한산 둘레길이 이곳을 지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쾌재를 불렀다. 집을 나와 20분쯤 걸어 탕춘대성에 도착했다. 구기동에서 불광동으로 넘어가는 ‘성너머길’을 만난 것이다. 평일인데도 산성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둘레길이 열린 지 일주일도 안 됐지만, 벌써 인기는 상한가다. 취재는 이틀에 걸쳐 탕춘대성을 기점으로 하루는 은평구 쪽, 하루는 정릉 쪽을 답사하기로 했다.

▲ ‘성너머길’ 전망대에서는 비봉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탕춘대성은 북한산의 숨은 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주민을 제외한 산꾼의 발걸음은 뜸하고, 북한산을 통틀어 산길이 가장 순하다. 탕춘대성은 비봉능선 향로봉에서 남쪽 인왕산 방향으로 뻗어 나간 작은 능선에 쌓은 성이다. 조선 후기 숙종 때 병자호란 직후에 북한산성을 재축성하면서 쌓았다고 한다. 탕춘대란 이름은 연산군이 세검정 위쪽 현재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풍류를 즐기기 위해 만들었던 건물에서 따왔다.

▲ 탕춘대능선의 독박골 암문.

▲ 탕춘대성에서 불광동으로 넘어가는 소나무 능선.
탕춘대성의 유일한 암문(일명 독박골 암문)을 나서면 솔숲 능선이 이어진다. 둘레길을 통틀어 능선 걷는 맛이 가장 좋은 구간이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비봉능선은 헬기장 전망대에서 절정을 이룬다. 향로봉~비봉~보현봉으로 이어진 비봉능선의 장쾌한 흐름은 북한산을 대표하는 풍광 중의 하나다. 헬기장을 내려오면 불광동 장미공원을 만난다. 장미공원 거북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를 들이켜고, 도로를 건너면 불광근린공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하늘길’로 접어든다.

공단 측에 의하면 둘레길 은평 구간을 만드는데, 가장 애를 먹고 공사비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둘레길에 들어간 돈이 약 30억인데 그중 절반이 은평 구간에 들어갔다. 그래서 이 길에는 나무 데크를 깔아놓은 곳이 많다. 불광사 옆을 스쳐 ‘스카이워크 전망대’에 이르자 불광동 일대 도심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전망대 앞으로 둘레길의 명소인 60m 길이의 ‘스카이워크’가 시작된다. 나무 데크 덕분에 암봉 사이를 편안하게 걷는다.

불광동 골목은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더욱 정겹다. 불광중학교 후문에서 야산을 넘으면 느닷없이 거대한 빌딩숲이 나오며 ‘마실길’로 접어든다. 은평뉴타운 3지구의 폭포동이다. “올 6월에 입주했어요. 여긴 뉴타운 중에서 평수가 넓은 곳이에요. 집에서 북한산 능선 보는 맛이 기막히네요~ 호호.”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이곳으로 이사와 만족하는 것 같았다. 은평뉴타운 3지구는 가히 북한산의 품속에 자리 잡았다. 부러우면서도 맘이 편치 않다. 일부 돈 많은 시민을 위한 혜택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진관사 가는 길에 펼쳐진 수려한 북한산 봉우리들.

백화사에서 만난 나귀연 할머니
아파트 뒤편의 선림사 옆 계곡으로 들면 기자촌을 지난다. 아담한 전원 마을이었던 기자촌도 뉴타운 공사 때문에 쑥대밭이 됐다. 기자촌을 내려오면 진관사 가는 길. 진관사 진입로는 호젓하고 운치 있는 길이었는데, 역시 공사중이라 난장판이다.

진관사 갈림길에서 계곡을 건너면 삼천사 입구. 여기서 백화사까지는 잠시 도로를 따르다가 흙길을 이리저리 둘러간다. 미로 찾기처럼 재미난 구간이다. 어느새 길은 ‘내시묘역길’로 들어왔다. 백화사 앞 계곡에서 지친 몸을 쉬었다. 등산화를 벗고 발을 담그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계곡 옆 작은 집에서 할머니 한 분이 손짓한다.

▲ 백화사 앞에서 만난 할머니. 북한산 둘레길에는 가슴 절절한 사연을 품고 사는 서민들이 많다.
“아주까리, 채송화 이거 내가 다 심은 거야. 사람들이 다니면서 보라구. 이거 사진 좀 찍어줘. 내 사진두 하나 찍으면 안 될까. 돈 줄게 나중에 갖다 줘. 응~” 나귀연(74세) 할머니의 작은 집은 백화사계곡 바로 옆에 자리 잡았다. 할머니는 40년쯤 전에 이 집을 105만 원 주고 사서 들어와 북한산의 품에서 4남매를 키웠다고 한다. 

“어려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새 장가를 들었어. 근데 새엄마가 밥도 잘 안 주고 학교도 안 보냈지 뭐야. 지금이라면 가출이라도 했을 거야. 집 건너 학교가 있었는데, 쳐다보기만 했지. 지금도 학교 못 간 것이 천추의 한이야. 왜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는지…”

할머니의 아픈 사연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하다. 북한산 둘레길에는 할머니처럼 슬프고 애잔한 사연을 간직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백운대가 보이는 단출한 백화사에 이른다. 절 뒤편 바위에 새겨진 삼존마애불이 볼만하다. 비교적 현대에 만들어진 것 같은데, 조각이 정교하다. 백화사 뒤편에는 알려지지 않은 내시묘가 숨어 있다.

▲ 북한산초등학교만큼 북한산 절경이 드러나는 곳도 드물다.

▲ 백화사의 마애삼존불. 비교적 현대에 만들어졌지만 조각이 정교하다.
마애불에 인사를 드리고 길을 나서면 의상봉 들머리를 지나 산성입구에 닿는다. 산성입구 직전에 북한산초등학교가 숨어 있는데, 그곳 운동장에서 보는 북한산의 모습이 장관이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치솟은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의 수려한 풍광은 아이들의 감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산성 입구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북한산성계곡을 건너는 아치교를 만난다. 여기서 보는 원효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의 모습이 장관이다. 철조망 속으로 보이는 내시묘를 지나면 원효암 입구가 나오고, 길은 도로를 만나 송추 우이령 입구까지 지루하게 이어진다.

다음날 다시 탕춘대성에 붙어 독박골 암문을 지난다. 이번에는 반대쪽인 평창동, 정릉 방향으로 잡는다. 탕춘대성에서 내려오면 구기터널 앞으로 떨어진다. 잠시 도로를 따르다 금해복집 앞에서 골목으로 들어서고, 전심사를 지나서 사자능선으로 올라붙는다. 능선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슬쩍 보이는 보현봉의 수려한 모습에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보현봉이 잘 보이는 암릉지대가 나오길 빌었지만, 길은 속절없이 평창마을로 내려선다. 능선에서 내려오면 ‘평창마을길’이다. 전망 좋은 예쁜 집과 미술관 등이 형제봉과 멋들어지게 어울린다. 은평뉴타운이 획일적이라면 평창동은 개성 넘친다.

▲ 형제봉이 내려다보는 평창동 구간.

흰구름 올라탄 듯 황홀한 구름전망대
길은 형제봉 입구에서 산길로 이어진다. 여기서 정릉까지는 ‘사색의 길’이다. 그 이름처럼 시종일관 고요한 숲길이 이어진다. 산길 초입에는 작은 계류가 시원하게 흐른다. 오래 걸었으면 잠시 발을 담가도 좋겠다. 거북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선 구복암 입구를 지나면 고갯마루를 넘는다. 깊은 숲길이 한동안 이어지다 어느 순간 정릉 탐방안내소를 만난다. 잠시 도로를 따르다 보덕사 방향으로 들어가면서 ‘솔샘길’이 시작된다.

▲ 순례길 전망대에서 본 4.19 묘역.
솔샘길은 북한산생태숲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하면 더욱 좋겠다. 성북 생태체험관에는 성북구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가꾼 식물들도 가득하다. 야생화원에는 벌개미취가 가득 피었고, 아담한 생태연못이 보기 좋다. 솔샘길이 끝나면 ‘흰구름길’이 시작된다. 이 길의 백미는 12m 높이의 구름전망대. 공룡 송곳니같이 뾰족한 인수봉과 도봉산, 불암산과 수락산, 그리고 서울 도심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흰구름길에서 내려오면 ‘순례길’의 시작이다. 독립운동가 김도연과 신숙 선생 묘역을 지나 4·19 국립묘지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주저앉았다. 시나브로 땅거미가 내려앉고 참배자들도 하나둘 사라진다. 아직 길은 남았지만, 둘레길 걷기는 여기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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