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가 걷는다 ㅣ 홍천 살둔마을&은행나무숲
박기자가 걷는다 ㅣ 홍천 살둔마을&은행나무숲
  • 글 박소라 기자|사진 엄재백 기자
  • 승인 2012.11.21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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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살둔~문암마을 트레킹…단풍 코스로 인기 높아

▲ 단풍으로 물든 문암골은 수채화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정감록>에 기록된 피장처 살둔마을
시인 김홍성은 ‘지금은 뭇 목숨이 모두 애처로운 가을’이라 했다. 시 ‘내린천 살둔 마을-오래 전 가을 이야기’의 한 구절이다. 그의 시는 어서 빨리 살둔마을로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민가를 벗어나면 휴대폰조차 터지지 않는 살둔마을은 때 묻지 않은 비경을 간직해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살둔은 사람이 살만한 둔덕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에는 피장처인 3둔 5가리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둔(屯)은 평평한 산기슭, 가리는 사람이 살만한 계곡이나 산비탈을 가리킨다. 피장처는 물, 불, 바람 세 가지 재난이 들지 않는다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로 이곳에 숨으면 목숨만은 부지한다고 전해진다.

▲ 문암골은 깊이 들어설수록 풍경이 빼어나지만 계곡길은 거친 돌길로 이어진다.

‘내린천 살둔 마을. 이 말을 하자마자 내 귀에는 어린 소녀들이 재잘거리는 듯한 시냇물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숲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수려한 산봉우리들과 푸른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이 보인다.

지금은 깊은 가을. 산중은 하루 종일 바람소리 물소리만 들리다가 금방 밤이 된다. 별들이 돌아온다. 별 하나 돌아올 때마다 풀숲에서는 살아남은 벌레들이 깨어나 별빛처럼 운다. 그리하여 뭇 별들이 다 나온 한밤중이면 풀숲의 뭇 벌레도 다 깨어나 일제히 울어댄다.

내린천 살둔 마을에서는 지금 그런 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대, 거길 가려거든 술 몇 병 가지고 가야 한다. 술 없이 어찌 그런 밤을 혼자 감당해 낼 수 있겠는가.’

- 김홍성 시 ‘내린천 살둔마을-오래 전 가을 이야기’ 中

▲ 가을철 단풍 여행지로 손꼽히는 살둔마을 문암골.
▲ 살둔마을에서 문암마을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길이 평탄해 걷기 좋다.

▲ 문암마을 가는 길 입구에 설치된 ‘오마이 텐트에서 찾은 걷고 싶은 길’ 이정표.

가을철 단풍 여행지로 인기 높아
한 편의 시에 이끌려 홍천으로 향하는 길. 홍천 명물로 꼽히는 은행나무숲은 이미 가을이 한창이다. 주인 유기춘씨가 아내를 위해 26년간 가꿨다는 은행나무 2000그루가 일렬로 늘어서서 황금빛 물결을 이루고 있다. 3년 전부터 무료로 개방하기 시작한 이곳은 매년 10월 단풍철에만 한시적으로 문을 연다.

살둔마을은 은행나무숲과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살둔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도 몰랐다던 오지마을로, 캠핑족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알려진 곳이다. 그러다 방송인 김제동이 진행을 맡은 MBC 프로그램 <오 마이텐트>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프로그램은 첫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살둔마을을 찾는 발길은 점점 더 늘고있다. 주민 김명근씨는 “산간 오지지만 살기 좋고 물도 깨끗하고 고랭지 채소가 유명한 동네”라고 자랑하며 “여름철에도 시원해 피서객이 많지만 요즘은 사계절 내내 캠핑족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 내린천 둔치에 마련된 살둔마을 생둔분교오토캠핑장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살둔마을에서 문암마을로 이어지는 문암골 트레킹 코스는 ‘오마이 텐트에서 찾은 걷고 싶은 길’이다. 원래 두 마을 주민들이 오가던 옛길로 도보 여행자뿐만 아니라 MTB 라이더들도 많이 찾는다. 문암마을까지는 약 6km. 비포장도로로 된 평탄한 길이라 쉬엄쉬엄 걸어도 3~4시간이면 충분히 왕복할 수 있다. 길과 나란히 이어진 계곡 아래로 내려서면 붉게 물든 단풍빛이 선연하다. 지금 살둔마을에는 그런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 단풍잎으로 알록달록한 계곡가.

▲ 계곡을 따라 난 길은 바위와 암반이 많기 때문에 비포장 도로를 따르는 것이 좋다.

▲ 문암골은 한여름에도 발이 시릴 만큼 차갑고 깨끗한 계곡물이 흐른다.
▲ 우수수 떨어진 은행잎들이 수북히 쌓인 홍천 은행나무숲.

▲ 은행나무숲 아래에서 맞는 느긋한 가을.

▲ 비포장도로로 이어진 트레킹 코스는 도보 여행자뿐만 아니라 MTB 라이더들도 많이 찾는다.
▲ 은행나무 2000그루가 일렬로 늘어선 홍천 은행나무숲은 매년 10월 단풍철에만 한시적으로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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