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 잡설 ㅣ 초 밥
태양의 요리사 음식 잡설 ㅣ 초 밥
  • 글 사진|박찬일 기자
  • 승인 2012.11.19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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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 한 점에 깃든 거대한 요리 세계

▲ 초밥이라는 게 단순한 패스트푸드에서 이제 거대한 요리의 세계를 이루다보니 다양성도 늘어났다.

“…지방이 알맞게 들어 있는 참치 등살에서 시작해 새우나 조갯살을 붙인 초밥을 만들어 내주고 점점 산뜻한 맛의 파란 비늘이 빛나는 생선으로 진행한다. 그리고 계란과 김밥으로 끝난다. 그늘의 특별 주문은 적당하게 코스 속에 집어넣으면 되는 것이다….”

오카모토 카노코의 단편소설 <초밥>에서는, 이렇게 초밥을 먹는 순서를 말한다. 초밥은 알고 보면 아주 단순한 음식이다. 준비된 고명(네타)을 잘 지은 밥(샤리)에 얹어 먹는다. 이 음식이 일본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음식이 될 줄은, 최초의 니기리스시를 만들어냈던 에도 시대에는 몰랐을 것이다.

▲ 스시는 계절감이 중요한 요리로 제철에 나오는 재료를 충분히 써서 맛을 내는 게 포인트다.
에도시대 거쳐 현재 초밥으로 발전
니기리스시는 에도시대, 그러니까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권력을 쥐고 에도(현재의 도쿄)에서 군림하던 때를 말한다. 1800년대까지 이어지는데, 도쿄가 이후 일본의 수도가 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도쿠가와의 에도는 권력이 집중되면서 수많은 역사(役事)가 벌어졌다. 그 덕에 전국에서 목수를 비롯한 건설노동자와 일꾼들이 몰려오게 된다. 이들은 일하면서 간단히 먹을 음식을 원했고, 도쿄만에서 잡힌 생선을 이용한 스시가 첫 선을 보이게 된다. 이후 이 요리들은 에도마에요리라고 이름 붙으며 도쿄 스타일을 완성하게 된다.

도쿄와 쌍벽을 이루는 오사카에서는 오시즈시라고 해서, 틀에 넣은 밥에 생선을 얹어 누른 후 잘라 먹는 스시가 유명하다. 반면 도쿄는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일종의 패스트푸드로 발전하게 되는데, 곧바로 손으로 쥐는 니기리스시가 발달하게 된다. 그것이 현재 초밥의 대세가 되어 어디든 초밥이라면 손으로 밥알을 뭉치고 그 위에 고명을 얹는 걸 먹는다.

초밥은 사전적으로 무엇이든 올려낼 수 있지만 우선은 날 생선이다. 에도마에 초밥의 전형인 것이다. 보통 한국은 흰 살 생선을 좋아하지만, 일본은 등 푸른 생선을 더 윗길로 쳐준다. 특히 스시는 계절감이 중요한 요리다. 제철에 나오는 재료를 충분히 써서 맛을 내는 게 포인트다.

초밥이라는 게 단순한 패스트푸드에서 이제 거대한 요리의 세계를 이루다보니 다양성도 늘어났다. 일전에 후쿠오카에 들렀더니, 그곳의 유명 스시 장인이 지역의 제철 채소로만 이루어진 초밥 코스를 팔고 있었다. 물론 대히트를 쳤다. 가지와 버섯, 무와 피망이 모두 네타가 되었다. 절이고 굽고 날것을 쓰는 등 같은 채소라도 다양한 요리 기법으로 맛의 변화를 줬다.

그래도 여전히 초밥이라면 생선이다. 청담동의 스시모토에 들렀다. 42년을 요리사로 살아온 장인 스나가와 야스오씨가 주방장이다. 그는 모든 에너지를 모아 스시를 쥐고 생선을 썰었다. 같은 생선이라도 스시에 얹는 방법을 달리 해서 다채롭고 변화무쌍했다.

생선살을 아부리라고 해서 가볍게 토치하듯 불로 지지면 그을린 맛을 준다. 삼치나 고등어, 도미 같은 생선을 그렇게 요리한다. 아니면 츠케라고 해서 간장에 절이는 방법도 있다. 참치의 붉은 살과 고등어가 적당히 절여져 전혀 다른 감칠맛을 냈다.

▲ 가볍고도 미세한 칼집을 내거나 아니면 굵은 칼집 서너 번으로 물리적 미각을 도모하기도 한다.
칼집으로도 물리적 미각 구현
칼로도 변화를 노리는데, 가볍고도 미세한 칼집을 내거나 아니면 굵은 칼집 서너 번으로 물리적 미각을 도모하면서 스시의 테크닉을 정교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좋은 초밥집을 보는 통설에 대해 말했다.

“등 푸른 생선, 달걀구이, 붕장어 이 세 가지가 좋으면 안심해도 됩니다.”

등 푸른 생선은 선도가 아주 중요하다. 날로 요리하거나 식초나 간장에 절이는 방법으로 다채로운 맛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걀구이는 촉촉한 밀도의 기법이 기초적인 테크닉이라 초밥집의 내력을 볼 수 있다고도 했다. 붕장어는 다루기 쉽지 않고 모양을 내어 굽는 기술을 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의 초밥은 대개 숙성한 생선과 해물을 썼다. 종류마다 숙성 시간과 방법이 달라 재료가 가진 에너지와 촉각을 최대로 끌어내는 기술이다. 요즘은 전어가 좋은데, 식초에 절인 전어초밥을 입에 넣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눈 녹듯이 스르르 초밥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초밥집의 수준을 볼 수 있다는 붕장어구이 초밥도 압권이었다. 부드러운 붕장어가 밥알을 감싸듯 씹히다가 엷은 양념과 고소한 여운을 남기고 흔적 없이 넘어갔다.

단순한 노동자의 먹거리로 등장했던 도쿄식 초밥은 이제 ‘쑤시’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각광받고 있다. 그저 음식을 떠나 일본 문화의 첨병 내지는 상징으로까지 이미지를 굳혔다. 가을날, 생선이 겨울을 위해 살을 찌우는 계절이다. 초밥 한 접시를 천천히 음미하기에 좋으리라. 너른 마당이 있어 단풍잎이라도 떨어지는 날이면 운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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