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s Travel Note ㅣ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의 중심지 나파밸리
Andrew’s Travel Note ㅣ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의 중심지 나파밸리
  • 글 사진 앤드류 김 기자
  • 승인 2012.11.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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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로 적신 축복의 땅

▲ 나파밸리는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의 중심지다.
1976년 프랑스에서 열린 와인 블라인딩 테스트 페스티벌(Blinding Test Festival)에서 세계가 놀란 일이 발생했다. 기라성 같은 와인 생산국 프랑스와 이태리를 물리치고 캘리포니아산 와인들이 상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후 미국의 포도원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15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의 와이너리 숫자는 턱걸이로 겨우 1000개쯤 됐다. 그러나 지금은 8000곳이 넘다고 하니 그 격차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지의 중심은 나파밸리(Napa Valley)다. 천혜의 조건을 갖춘 이곳 포도나무들은 무척이나 투실하고 두꺼우며 포도알들이 촘촘하고 작다. 우리나라 거봉 같은 큰 포도알은 어디에도 없다. 나파밸리의 따가운 햇살은 포도알을 하나하나 터트릴 듯 작렬하고, 태평양 연안에서 불어오는 해풍은 그 열기를 시원스레 보듬어준다. 해안을 따라 연결된 산은 밤에 찬바람이나 서리 등을 막아주고 따갑고 건조한 공기는 잎사귀 진액마저 포도의 당도를 높이는데 쓰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동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면, 무수한 와인 양조장들이 대문을 활짝 열고 고객들을 맞이한다. 입구에는 ‘나파밸리의 양조장들은 와인에 시를 담습니다(Napa Valley Vintners-the Wine is Bottled Poetry)’라고 적힌 큼지막한 간판이 걸려 있다. 이 글을 보면서 나파밸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살리나스에서 태어난 노벨문학상 수상자 존 스테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떠올랐다. 미국이 경제공항을 겪던 1930년, 가난이라는 이유 하나로 처절하게 붕괴된 한 가정과 그 이웃들의 슬픈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아마 당시 존 스타인벡은 나파밸리 포도밭에서 엄청나게 고생하던 가난한 노동자를 위해 쓴 글일지도 모른다.

이제 이곳은 ‘분노의 포도’가 아닌 ‘축복의 포도’를 키운다. 오늘날의 나파밸리를 이룬 사람은 바로 45년 전 쉰 살이 갓 넘은 나이에 큰 꿈을 품고 이곳에 포도밭을 일궜던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다.

▲ 포도밭의 고급 레스토랑. 나파밸리 포도밭은 결혼식이나 각종 연주회,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산 고급 와인이 없던 시절이었다. 로버트 몬다비는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나파밸리에 프랑스 최고급 와인 생산지인 보르도나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 원목을 들여와 개량시킨다.

우수한 품종의 포도 묘목들이 성공하자 그는 곧바로 미국인 특유의 기막힌 마케팅 귀재로 변신했다. 그의 와인 양조장 철학은 아주 간단했다. “나는 술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문화를 파는 사람이다.”

▲ 나파는 인디언 말로 ‘아주 많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명료한 철학이 결정되자 몬다비는 양조장 안에 음악당을 만들어 각종 연주회를 개최했다. 포도밭에는 와인으로 만든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또한 시음 테스트 겸 양조장을 투어하는 유료 관광 상품도 만들었다. 모두가 그가 구상한 아이디어였다. 포도가 영글면 그대로 팔거나 와인으로 만들어 팔았던 시골 양조장이 아니라 와인 향과 함께 예술이 무르익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지금 나파밸리의 포도밭에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결혼식이 열리고, 각종 연주회나 전시회가 성황을 이룬다. 세인트헬레나에서 나파밸리까지 와인 열차도 운행 중이다. 대도시 초특급 호텔의 인테리어 수준과 별반 차이 없는 레스토랑과 바들을 보면 이곳이 과연 시골마을인 나파밸리의 포도밭인가 의심케 만든다.

나파는 인디언 말로 ‘아주 많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햇살과 마케팅이 빚어낸 마법의 포도원들이 즐비한 나파밸리에 가면 어원 그대로 아주 많은 포도알들이 영글어 가고, 아주 많은 마케팅이 잉태되고, 아주 많은 이들이 와인 한 잔 놓고 삶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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