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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길 ㅣ 인제 자작나무숲길
눈부신 수피가 불러오는 북방의 그리움
윗임도~자작나무숲1·3코스~아랫임도…약 8.5km, 2시간 30분
2012년 11월 09일 11:05:19 글 사진 진우석 출판팀장 mtswamp@outdoornews.co.kr

   
▲ 자작숲으로 이어진 윗임도. 아침 안개가 스며 분위기가 몽롱하다.

백두산의 울창한 자작나무숲을 본 적 있는가. ‘라라의 테마’ 음악이 흐르는 영화 <닥터 지바고>를 배경으로 한 시베리아의 광활한 자작나무숲을 기억하는가. 자작나무는 그리운 북방의 다른 이름이다. 눈과 자작나무가 어우러진 북쪽 세계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제법 멋진 자작나무숲이 있다. 그 숲을 걸으며 자작나무가 자작자작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그 속을 걸으며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시인 백석과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예전 북녘 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였다. 평안북도 정주 출생의 백석 시인은 유독 자작나무를 즐겨 시의 소재로 사용했다. 그의 시를 보면 예전 평안도나 함경도 사람들에게 자작나무가 얼마나 생활에 밀착되어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 산비탈에서 하늘 향해 솟구친 자작나무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 백석 詩, 자작나무

그동안 ‘온통 자작나무다’라는 시구는 도저히 체감할 수 없었지만,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을 거닐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눈부신 수피가 뿜어내는 은빛세계 앞에서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온통 자작나무’라고 할 수밖에.

자작나무 이름은 불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자작나무는 북위 45도 위쪽에서 잘 자란다. 백두산이 북위 42도쯤이니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강원 일원의 태백산 일대에는 자작나무들이 제법 있다. 춥고 습한 땅에 사람의 손으로 심어지고 길러진 것들이다. 우리 땅에서 자작나무숲이 대부분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것도,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급경사의 비탈면에 조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 윗임도 전망 지점에서 바라본 조망. 자작나무숲 너머로 설악산 줄기가 아스라하다.

자작나무는 대개 20m 정도 자라지만 백두산 원시림에는 이 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자라고 있다. 자작나무는 수피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수피의 겉면은 흰색의 기름기 있는 밀랍가루 같은 것으로 덮여 있고, 안쪽은 갈색이며 종이처럼 얇게 벗겨진다. 이 껍질은 불에 잘 타면서도 습기에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작나무는 한자로 ‘화(樺)’자를 쓰는데, 간혹 ‘빛날 화(華)’자로 쓰기도 한다. 지금도 결혼식을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고, 부조 봉투에는 ‘축 화혼(祝 華婚)’이라고 쓰는데, 이는 전깃불이 없던 시절 불이 잘 붙는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 대용으로 사용한 데서 비롯됐다.

자작나무의 수피는 종이의 역할도 하고, 껍질을 태운 숯으로는 그림을 그리거나 가죽을 염색했다. 그래서 옛날에 그림도구나 물감, 염료 등을 파는 가게를 ‘화피전’이라 불렀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그림의 재료도 자작나무 껍질이며, 팔만대장경도 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 자작나무의 수수한 잎사귀.

   
▲ 산책하다 앉으면 그 자리가 멋진 풍경이 된다.

산불 확산 막기 위해 69만 그루 심어
인제 원대리는 수도권과 의외로 가깝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나와 44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소양강이 보이기 지점에서 원대리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15분쯤 가면 된다. 자작나무숲을 보려면 약간의 발품을 팔아야 한다. 산림청이 운영하는 초소에서 숲까지 3.5km 거리의 임도를 걸어야 한다. 초소에서 인적사항을 적었으면 출발이다. 여기서 운이 좋으면 백구를 만날 수 있다. 백구는 마을 주민이 기르는 개로 자작나무숲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곤 한다. 임도를 따라 좀 오르면 갈림길. 왼쪽 임도는 자작나무숲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이다. 그래서 올라가는 임도를 윗임도, 내려오는 임도를 아랫임도라 부른다.

갈림길에서 완만한 오르막을 걷다 보면, 산비탈에 자작나무가 도열한 모습이 반갑다. 아침 일찍 찾은 덕분에 살짝 안개가 꼈고, 나무 사이로 찬란한 빛이 쏟아진다. 그 빛은 마치 자작나무가 뿜어내는 광휘처럼 느껴진다. 구불구불 이어진 임도를 따르다 보면, 어느덧 해가 비추며 안개는 스멀스멀 사라진다. 그리고 왼쪽 멀리 조망이 열리며 점봉산과 설악산 등 첩첩 산줄기가 아스라하다.

   
▲ 자작나무숲을 내려오면 아랫임도를 타고 하산하게 된다.

   
▲ 들국화 중에서 가장 청초하고 예쁜 구절초.

초소를 떠나지 1시간이 좀 넘으면 비로소 자작나무숲을 만난다. 이곳 자작나무숲은 원래 인제국유림관리소가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해 1974~95년까지 41만 평에 69만 그루를 심어 조성한 것이다. 그중 7만 5천 평을 숲 유치원으로 꾸며 운영하고 있다. 숲 선생님과 함께 타잔 놀이, 외나무다리 걷기, 꽃 이름 알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놓았다.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 새겨진 나무 조각상 앞에서 드디어 자작나무숲으로 들어선다. 은은한 노란빛 단풍을 매단 미끈한 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사람들은 그리로 들어서면서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는다. 숲으로 들어서면 작은 쉼터와 광장이 반긴다. 광장에는 숲속유치원 시설인 자작나무 그네와 정글, 외나무다리 등이 놓여 있다.

갑자기 자작나무숲이 시끌벅적하다. 유치원 아이들이 들어온 것이다. 아이들이 광장 자작나무 의자에 앉자 숲이 환해진다. 아이들과 자작나무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아이들은 자작나무 낙엽을 뿌리고, 그네를 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뛰어다니며 신나게 논다.

   
▲ 아랫임도가 윗임도보다 분위기가 좋고 차도 다니지 않는다.

광장을 둘러봤으면 본격적으로 숲을 둘러볼 차례다. 자작나무숲 속에는 세 개의 탐방로가 있다. 1코스인 자작나무코스(0.9km), 2코스인 치유코스(1.5km), 3코스인 탐험코스(1.1km)이다. 문제는 지도와 안내판 등이 부실해 숲 속에 들어가면 미로처럼 길을 잃기 쉽다는 점. 3개 코스를 답사해 본 결과, 1코스를 천천히 둘러보고 3코스를 따르다가 아랫임도를 타고 하산하는 것이 좋다. 2코스는 야산을 넘어야 하고 자작나무가 별로 없어 추천하고 싶지 않다.

광장에서 1코스와 3코스가 갈린다. 우선 오른쪽 1코스를 따르면 울창한 자작나무숲으로 빨려 들어간다. 자작나무숲 중에서도 유독 큰 나무들이 몰려있다. 밑동이 굵고 수피에서는 번쩍번쩍 윤이 난다. 솔솔 부는 바람이 잎사귀를 흔들면 새하얀 수피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 자작나무숲 입구의 산림청 초소.

시간이 정지되는 숲
야트막한 언덕에 너른 공터가 있다. 여기서는 누워 자작나무숲 위로 펼쳐진 하늘을 감상하기 좋다. 숲에 부는 바람은 자작나무 잎사귀 한 줌을 하늘에서 떨어뜨린다. 시간은 숲 안에서 정지된 느낌이다. 공터를 지나면 잠깐 급경사를 지나 전망대에 올라붙는다. 넓은 조망이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건너편으로 무리지어 자란 자작나무들이 예쁘다. 자작나무는 무리지어 자란다. 홀로 자랄 수 없기에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받쳐주고 서로 북돋아 준다고 한다.

   
▲ 숲으로 들어서는 아이들.

전망대를 지나면 처음 만났던 자작나무숲 입구다. 이곳 임도에서 계속 산속으로 1.5km쯤 걸어가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나온다. 한때 50여 가구가 넘는 주민들이 살았다는 회동마을이 있던 터다. 집은 다 허물어지고, 묵은 밭에는 억새만 가득 피어나 출렁거리고 있는 곳. 임도가 없던 시절, 도로에서 산길로 족히 두어 시간은 걸어 들어와야 하는 이리 깊은 산중에 어찌 마을이 있었을까. 그곳에는 ‘아이오라’라는 이름의 펜션 한 채와 옛 모습을 간직한 교실 한 칸짜리 분교가 남아 있다.

   
▲ 자작나무숲에서 그네를 타는 아이.

이곳에 마을이 들어선 연유가 이랬다. 한국전쟁 무렵 산 아래쪽 3·8선이 마을 한복판을 지나가는 원대리에는 국군과 인민군이 총부리를 겨누며 치열하게 교전을 벌였다. 고지를 뺏고 뺏기는 전투가 계속되자 주민들은 마을을 버리고 산으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갔다. 그렇게 생겨난 마을이 여기 회동마을이었다. 초등학교 분교까지 세워졌으니 제법 번성했던 마을이었다. 1963년 개교한 분교는 1993년 폐교됐다. 30년 동안 이 학교를 거쳐 간 졸업생은 고작 36명. 거의 1년에 1명꼴로 졸업한 셈이다. 이처럼 작은 학교가 참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다시 자작나무숲 광장에 이르러 이번엔 왼쪽 3코스를 타고 내려간다. 300m쯤 자작나무 사이를 걸으면 길이 갈린다. 이정표가 없지만 오른쪽 길을 따라야 한다. 졸졸 시냇물 소리 정겨운 길을 한동안 따라 내려가면 아랫임도를 만난다. 이 길은 차가 다니지 않고 종종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완만한 내리막을 2km쯤 내려가면 초소를 만나며 걷기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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