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 잡설 ㅣ 오동동 타령과 통술집
태양의 요리사 음식 잡설 ㅣ 오동동 타령과 통술집
  • 글 사진|박찬일 기자
  • 승인 2012.10.2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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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알아서 한 상 차려내는 손맛

▲ 주인은 창의적으로 제철 음식의 선도와 특기 중심으로 안주를 준비하고, 손님은 무엇이 나올까 기대하며 술상을 기다렸다.

오동동이 무슨 소리인 줄이나 알고 불렀는지 모르겠다. ‘오동동 타령’ 말이다. 어지간한 트로트 가수나 민요 가수는 한 번씩 부르고 취입했던, 이른바 젓가락 국민가요가 그것이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야 오오도올동 술타령이 오도옹동이야….”

뭐 이렇게 추임새를 올려가며 부르면, 동동주나 막걸리가 두어 순배 쫙 돌고 술자리의 흥은 절정으로 치닫던 거였다. 노래방 세대들은 생각도 못할, 젓가락 장단의 합창으로 골목이 들썩이던 전설의 시절도 있었던 것이다. 자진모리에 휘모리에 국적 불명의 제멋대로 장단까지 젓가락이 탁자를 두들기면 취객들은 악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한 시절을 보내고, 촉수 낮은 전등불이 어른거리던 술청의 밤이 깊어갔다.

마산시 합포구 오동동(午東洞). 이젠 창원으로 통합되어 마산합포구라는 희한한 구에 속한다. 한때 마산에 돈이 몰리고 흥청거리던 때, 오동동은 현금을 손에 쥐고 배에서 막 내린 선원들이 진탕 마시던 골목이었다. 부두에 바로 이어져 있어서 자연스레 술집과 밥집 같은 골목이 형성됐다. 마산의 3대 먹거리 골목이라는 아귀찜, 복어, 통술골목이 모두 이 지역으로 이어지는 땅에 놓인다.

▲ 그날그날 들어오는 재료나 인기 안주를 되는 대로, 주인과 손님의 깊은 신뢰로 주고받는 통술집.
대낮에 자못 전설적인 이 골목에 들어서니 마치 세트장에 들어선 것처럼 현실감이 없다. 지역 문화인들이 골목마다 벽화를 그려놓아 화사하게 단장되어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상상을 돕는다. 4.19의 발단이 된 마산 3.15 의거가 바로 이 골목에서 시작됐다는 안내를 보면서 잠시 걷는다. 어린 소년들이 어깨를 겯고 독재타도를 외치고 있는 사진 앞에서 나는 잠시 망연자실하다. 못 먹어서 머리는 큰데, 교복은 낡고 허름해서 부대자루를 입혀 놓은 것 같다. 그들은 지금 모두 살아 있는지, 무얼 해서 먹고 사는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마산의 술집 문화는 자못 질펀하고 느긋한 데가 있다. 부산이 좀 더 수선스럽고 왁자하다면, 마산은 인근인데도 술청의 분위기가 다르다. 사람들은 낮고 무겁게 말하고, 주모들도 은근하다. 젓가락 장단이나 술타령은 없으니, 취기가 도도하면 ‘회관’이나 ‘가요주점’이라고 부르는 가라오케로 자리들을 옮길 것이다. 우리는 주모에게 술을 청한다. 반갑게도 마산은 주모 문화가 있다. 나이 어지간하고 음식 솜씨 고소한 아지매들이 주방과 홀을 틀어쥐고 일한다. 이런 집들을 대개 ‘통술집’이라고 부른다.

식당이든 술집이든 원래 우리나라는 ‘알 라 카르트(a la carte)’가 대세다. 벽에 메뉴를 적은 종이를 붙여 놓고 주문을 받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 용어는 프랑스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아주 오래 전, 우리 매식 문화에서는 그런 전통이 없었다. 그저 그날그날 들어오는 재료나 인기 안주를 되는 대로, 주인과 손님의 깊은 신뢰로 주고받았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통술집의 스타일이다. 일정한 돈을 내면 주인이 알아서 한 상 떡하니 차려낸다. 뭘 빼고 더하고 주문이 없다. 주인은 창의적으로 제철 음식의 선도와 특기 중심으로 안주를 준비하고, 손님은 무엇이 나올까 기대하며 술상을 기다렸던, 멋진 주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생각건대 나는 이런 술집 문화가 그저 민중의 습속대로 살다가 스러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화재라는 게 손에 잡히는 물성이 구체적이지 않아도 지명하고 지정해서 살린다고들 하는데(무형문화재라고 하는) 통술집 문화 역시 기록으로 남기고 민중의 역사로 기록하고 지켜야 할 것으로 믿는다.

오동동은 외곽의 신마산 지역에 생겨나고 있는 신흥 통술집 거리에 조금씩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다. 전통은 새로운 세대에게는 역시 부담스러울 것이다. 오동동 통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동안, 나이 쉰 미만의 손님을 거의 볼 수 없었다. 택시 기사는 아예 창원시 통합으로 술손님들조차 창원으로 빼앗기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덧붙였다. 마산의 전설인 오동동도 퇴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우리가 고른 통술집은 그 이름도 거창한 ‘야망통술’. 주인네가 기품 있고 안주 손맛이 뛰어나다. 병어회가 달았고, 문어가 혀에 붙었다. 거기다가 비싸기로는 쇠등심 윗길인 갈치가 큼지막하게 한 토막 나온다.

“마산에선 이제 아구가 잘 안 나옵니더. 갈치를 마이 묵는데, 마산 오셨으니 갈치라고 꿉고 가셔야지예.”

이 땅의 술 문화는 세계사에 유래가 없을 다채로움이 있다. 그중에서 나는 ‘주인 맘대로’ 즉, 영어로 하면 ‘fixed menu’(식당에서 임의로 정하고 내는 여러 가지 요리. 고르기 힘들며 주는 대로 먹는 방식인데, 대개 고급식당에서 채택한다)에 관심이 끌린다. 전국에서 그렇게 유명해진 스타일로는 세 개를 들 수 있다. 통영의 다찌집, 전주의 한상막걸리집 그리고 오동동의 통술집이다. 셋 다 방식이 조금씩 달라 재미를 더한다. 다찌집은 술을 새로 시킬 때마다 고급 요리가 더 나오는 식이며, 전주도 비슷한 방식인데 막걸리를 마신다는 점이 특이하다. 통술집은 술을 더 시켜도 안주가 추가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다르다.

이런 스타일이 원래부터 화려하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요란했던 것은 아니다. 간소하게 집에서 먹는 찬을 내는 식으로 깔던 안주가 돈과 손님이 몰리면서 차츰 화려하게 바뀌었다. 전주 한상막걸리만 해도 이젠 소박한 과거의 알찬 내용 대신 점차 외화(外華)를 뽐내는 불편한 분위기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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