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길 ㅣ 내설악 단풍나무 숲길
아름다운 우리 길 ㅣ 내설악 단풍나무 숲길
  • 글 사진 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2.10.2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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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흐르는 고요의 순례길
백담사~영시암~오세암~백담사 13km

▲ 만경대에서 본 공룡능선과 오세암. 내설악에서 본 공룡능선은 초식 공룡처럼 순하다.

설악산에서 시작해 내장산에서 절정을 맞는다. 우리 땅의 단풍 기상도는 늘 그렇다. 대청봉에서 시작된 단풍은 소리소문없이 거북이걸음으로 쉬지 않고 밑으로 내려온다. 10월 15일쯤은 백담사까지 밀고 내려와 세상을 울긋불긋 물들인다. 험준한 설악산에서 산행 부담 없이 단풍 구경하기 좋은 곳이 내설악 수렴동계곡이다. 백담사에서 오세암으로 가는 길은 만해 한용운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하는 시 구절이 떠오르는 그윽한 단풍 숲길이다.

▲ 백담계곡은 최남선이 금강산에는 없는 곳이라며 극찬했다.

육당 최남선의 백담계곡 예찬론
9월 중순이면 대청봉에는 불이 당겨진다. 대청에 부는 바람 속에서 겨울을 감지한 나무들은 서둘러 잎에 저장된 양분을 줄기로 보낸다. 이 과정에서 잎에 남아 있던 색소가 붉게 혹은 노랗게 드러나는데, 이것이 단풍이다. 식물에게 단풍은 생존 방식이지만, 인간에게는 매년 찾아오는 자연의 축복이다.

▲ 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백담사의 산문 입구.
국내 최고를 자부하는 설악의 단풍을 즐기려면 서둘러야 한다. 내설악의 단풍절정기는 대개 10∼13일쯤이다. 일기예보에서 단풍절정기(대개 10월 20일경)란 말을 듣고 떠났다가는 찬바람만 두들겨 맞기 십상이다. 내설악 단풍 걷기 코스는 오세암 가는 길과 같다. 내설악의 산문 격인 백담사에서 시작해 영시암을 거쳐 만경대에 올랐다가 오세암을 찍고 되돌아가는 일정이다. 이 길은 험준한 설악산답지 않게 순하고 부드러워 아이들도 잘 올라간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이어진 백담계곡은 예전에는 걸어 다녔지만, 요즘은 셔틀버스를 타고 절 앞까지 오른다. 버스가 다니지만 아직까지 걷기 만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계곡이 워낙 절경인 까닭이다. ‘백담(百潭)’ 이름은 소와 담이 100여 개가 이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백담사란 절 이름 역시 여기서 유래했다. 세종의 아들인 광평대군 후손인 이의숙(1733~1807)은 ‘곡백담기(曲百潭記)’에서 “내산의 모든 샘물은 서북으로 쏟아져서 갈역(용대리)으로 돌아간다. 황장연(황장폭포)으로부터 아래로 20리, 맑은 물굽이와 깨끗한 늪이 많으니, 이것을 통틀어 곡백담이라 부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 백담사 경내의 한용운 동상.

▲ 백담계곡과 수렴동계곡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황장폭포와 영산담.

육당 최남선은 설악산에 들면서 “금강산과 설악산 중에서 어느 산이 나으냐 못 나으냐 하는 문제는 얼른 대답하기 어렵고, 금강산이 더 나으리라 함이 보통 가지고 있는 생각일지 모르지마는 설악산에는 분명히 금강산에서 볼 수 없는 경치가 많이 있습니다.”라면서 첫 번째 이유로 백담계곡을 들고 있다. “산의 입구인 갈역으로부터 시작하여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70리 길이의 긴 계곡 바위 벼랑과 돌바닥이 깊은 골에서 흘러나오는 시냇물을 덜고 굽이굽이 재주를 부려서 토막토막 소도 만들고 폭포도 드리우는 일대 필름은 금강산을 고사하고 조선의 어느 명산에도 다시 없는 장관일 것입니다.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서 본다면 청룡담 황룡담 제폭 황장폭, 무엇무엇 하지마는 온통 합하여서는 곡백담이라고 부릅니다. 해주의 석담, 청주 보은의 화양동 등을 다 한데 연접해도 그 길이나 그 기이함이나 다 설악의 곡백담을 따르지 못할 줄 나는 압니다.” 따라서 최남선은 백담계곡은 금강산에도 없는 아름다운 계곡이라 극찬하고 있다.

▲ 수렴동계곡에서 오세암 갈림길에 우뚝한 금강소나무.
▲ 백담사에서 오세암으로 가는 길은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떠오르는 그윽한 단풍 숲길이다.

옥빛 강물과 암반 어우러진 수렴동계곡
버스에서 내려 백담사로 이어진 백담교를 건너면서 마음을 다잡아야 하지만, 계곡을 물들인 화려한 단풍 빛에 온몸이 벌렁거린다. 절에 들어 만해 한용운 동상 앞에서 인사를 드리자마자 붉게 물든 계곡으로 달려간다. 물가에 있는 나무들의 단풍이 더욱 곱고 진하다. 백담사를 지나면 평지처럼 순한 길이 이어진다. 화강암 반석 위를 흐르는 계곡물은 투명한 에메랄드빛을 띠고, 길섶에는 붉고 노란색의 단풍들이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그 찬란한 풍경 속을 걷다보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올챙이처럼 두 눈을 뜨고 감탄을 연발한다. 어쩌면 한용운 역시 이 길을 산책하다가 ‘님의 침묵’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 수렴동계곡의 은은한 옥빛은 단풍과 기막히게 어울린다.

산길이 왼쪽으로 크게 굽이치는 지점, 계곡은 커다란 암반이 깔리고 작은 폭포가 걸려 있다. 이곳이 황장폭포(황장연)다. 폭포 앞으로 제법 넓은 에메랄드빛 소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는 영산담이다. 폭포는 보잘 것 없지만, 이 폭포를 기준으로 백담계곡과 수렴동계곡을 나누기도 한다. ‘황장’이란 이름은 봉산의 황장목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한다. 황장목은 조선시대 궁궐을 짓는 데 사용했던, 줄기가 곧고 재질이 단단한 금강소나무를 말한다.

▲ 오세암으로 가는 언덕에 자리한 물박달나무.
황장폭포를 지나 30분쯤 가면 암자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중창불사를 한 영시암에 이른다. 이곳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10분쯤 더 가면 갈림길, 여기서 오세암과 봉정암이 갈린다. 갈림길 입구에 힘차게 쏟은 금강송 금강송이 두 그루가 당당하며, 그 옆 단풍나무는 온통 몸을 불태우고 있다. 오세암 방향으로 들어서면 슬그머니 길은 오르막으로 변한다. 거대한 물박달나무는 흰 수피와 은은한 단풍이 어울렸다. 작은 고개를 넘어 두 번째 고갯마루에서 내려가면 오세암이다. 하지만 오세암 직전에 만경대를 거치는 것이 순서다. 이곳 고갯마루에서 오른쪽 봉우리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그곳이 만경대로 가는 길이다.

설악산은 만경대가 셋이다. 오세암 직전의 내설악 만경대, 양폭산장 위쪽의 외설악 만경대, 오색 근처의 남설악 만경대. 만 가지 경치를 두루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니, 단풍 풍광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옛 문헌에는 내설악 만경대만 기록되어 있지만, 점차 외설악과 남설악에도 하나씩 생겼다. 내설악 만경대가 깊은 맛이 있다면, 외설악 만경대는 눈이 멀도록 화려하다. 그리고 남설악 만경대는 가장 늦게 생긴 탓에 아는 이가 드물다. 세 개의 만경대 중에서 가장 찾기 쉬우면서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 내설악이다.

▲ 공룡능선 신선봉 일대를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

▲ 만경대에서 본 대청봉과 공룡의 이빨처럼 솟구친 용아장성릉.

고갯마루에서 가파른 산길을 10분쯤 올라가면 소나무와 암반이 어우러진 정상부가 나온다. 이곳이 내설악 만경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북동쪽으로 훤히 보이는 오세암. 공룡능선을 병풍처럼 두른 모습이 한눈에도 기막힌 명당자리다. 단풍과 전나무의 초록, 그리고 천수관음보전의 청기와 지붕이 어울린 모습은 그대로 동화 속의 한 장면이다.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공룡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보면 설악산의 제왕인 대청봉의 육중한 모습이 드러나고, 그 앞으로 대청을 지키는 수호신 용아장성릉의 암봉들이 육식 공룡 이빨처럼 드러나 으르렁거린다. 용아장성릉 뒤로 보이는 높은 능선 마루금은 귀때기청봉(1577m)에서 대청으로 이어진 서북능선이다. 과연! 이곳 만경대처럼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내설악의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 또 있을까.

다섯 살 동자와 관음보살의 순수한 교감
만경대를 내려와 고갯마루를 내려서면 오세암. 644년 자장율사가 절을 창건하며 관음보살이 언제나 상주하는 도량임을 알리기 위해 관음암이라 불렀다. 관음암이 1643년 오세암으로 중창된 배경에는 5세 동자에 얽힌 유명한 관음영험설화가 서려있다. 관음암에서 수행 중이던 설정스님은 형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고아가 된 조카를 암자로 데려와 기르게 되었다. 아이의 나이가 5살 되던 해, 겨울이 막 시작되는 10월 하순 어느 날 스님은 산사의 월동준비로 양양의 물치 장터를 다녀오기 위하여 암자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 오세암에서 양양의 물치 장터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다녀와도 족히 이틀은 걸리는 장도였다. 그 이틀 동안 혼자 있을 조카를 위하여 스님은 그 동안 아이가 먹을 만큼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스님은 아이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 법당 안의 관음보살을 가리키며, “내가 다녀오는 동안 이 밥을 먹고 있으며 저분을 어머니처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 불러라 그러면 저분이 너를 보살펴 줄 것이다.”라고 일렀다.

▲ 오세암의 천보관음보전. 뒤로 관음봉이 우뚝하다.

▲ 관음보살과 순수한 교감을 나누었던 오세암의 동자상.

5살의 어린 조카에게 이렇게 신신당부를 하고 설정스님은 관음암을 내려와 물치장에서 겨우살이를 포함한 생필품을 구입한 후 신흥사에 들러 하루를 묵게 되었다. 스님은 다음날 조카가 기다리고 있을 관음암으로 돌아가려 일찍 일어났으나 밤샌 폭설로 엄청나게 쌓인 눈 때문에 도저히 암자로 돌아갈 수 없었다. 스님은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머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스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야속한 눈은 그 뒤에도 그치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갔다.

그 사이에도 무정한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어느덧 봄이 오고 눈이 녹아 산길이 열리게 되었다. 서둘러 바랑을 챙긴 스님은 뜀박질하듯 달려 암자에 들어섰다. 암자에 들어서니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카가 살아있다는 반가움에 스님은 어쩔 줄 몰라 했으며 어찌된 것이냐고 물으니 조카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어머니가 언제나 찾아와서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같이 놀아도 주었어요.”라고 답을 하였다.

▲ 백의여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동자를 살린 것을 형상화한 오세암의 안내도.

그러자 갑자기 환한 백의여인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성불의 기별을 주고는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창공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놀란 스님은 마음을 가다듬고 부처님 전에 큰절을 올리고 조카를 안아 보려 하자 품에 안기지도 않은 채 조카는 그대로 사그라져 승천했다. 맑고 무구한 마음으로 무념무상의 '관세음보살'을 계속하자 관음보살이 감응하고 그 가피로 영생불멸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스님은 이 도량에 관음보살의 영험이 있음을 길이 전하기 위해 관음암을 중건하고 절 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 전설은 동화작가 정채봉의 손에 의해 오누이의 이야기로 변주되면서 우리의 심금을 더욱 울리기도 했다. 오세암에서 되돌아오는 길은 그동안 달아올랐던 몸과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설악의 깊은 아름다움은 시나브로 슬픔의 감정까지 불러오는 것은 왜일까. 내설악을 찬란하게 비추던 빛 이 점점이 사라지며 땅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온 땅거미가 가야할 길을 집어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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