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ILKROAD ㅣ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BEYOND SILKROAD ㅣ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 글 사진 박하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승인 2012.09.2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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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석굴에 깃든 일그러진 탐욕

▲ 힌두쿠시 산자락에 위치한 바미안 석굴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일이다. 세계의 관심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발표한 한 포고문에 집중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신은 유일하기 때문에 형상을 신앙대상으로 삼은 것은 잘못이다. 모든 불상들은 이슬람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부터 그 불상들이 신앙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바미안 석굴을 비롯한 아프간 내의 모든 불상들은 제거돼야 한다!”

▲ 바미안에는 오랜 내전과 외침으로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다.

식을 벗어난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에 세계의 여론이 들끓었다. 이 발표 이후 유네스코는 물론 유엔 189개 회원국이 서둘러 불상 파괴 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으며, 이집트·터키·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조차도 탈레반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은 이 같은 비난 여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의 문화유산인 바미안(Bamiyan) 석불을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완전 파괴했다. 그 충격적인 현장은 미국의 CNN방송을 비롯한 세계 통신사들의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중계되었다. 세계인의 이목이 바미안 계곡으로 쏠리면서 국제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 부르카를 입은 여인이 빵을 사서 집으로 가고 있다.
▲ 탈레반 정권이 강제로 폭발시켜 파손된 불상의 흔적

아프간 중부의 산골에 위치하고 있는 바미안. 두 번째 아프간에 발길을 들여놓으면서 그토록 갈망해 왔고, 또 문제의 현장이었던 바미안 계곡을 찾아가고 있다. 수도 카불에서 꼭두새벽에 출발하는 미니버스로 가는 엉망진창의 산길은 고행길과도 같았다. 곳곳에 부서진 장갑차들이 전흔을 말해주고 있고, 군데군데 흰색으로 지뢰 지대임을 표시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긴장감을 느끼기보다는 오랜 숙제를 풀 수 있게 된다는 기대에 가슴이 벅차 오를 뿐이다.

▲ 신부집에 온 신랑을 둘러싸고 기념촬영 중인 사람들

▲ 대공포가 설치되어 살벌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바미안 전경

9시간이 걸려 겨울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는 바미안에 도착했다. 도시가 아닌 산골분지 마을로 사방이 황토빛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여관이라고 할 것도 없어서 ‘MAMA NAJAF RESTAURANT’이라는 식당 겸 여관의 허름한 방에 일단 여장을 풀었다. 외국인이라고 제법 비싼 달러 요금을 받는다.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있으랴. 날도 춥고 벌써 어두워져 가고 있는데. 그러나 이 건물 지붕 위에 올라서니 고대하던 바미안 석굴 쪽의 전망이 좋아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 바미안의 동쪽 석굴 전경

▲ 각기 다른 색상의 부르카를 입고 있는 아낙네와 어린이들

밤새 가랑비가 눈으로 변해 주변 높은 산에는 하얀 눈이 쌓이고, 구름이 걸려 있는 모습이 일품이다. 중국 실크로드 지역에 있는 화염산맥이 풍기는 기기괴괴한 멋을 이곳 산들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힌두쿠시 산자락이다. 이곳 바미안 석굴을 대표하던 2개의 대불이 있던 자리가 동쪽과 서쪽에서 또렷하게 들어온다. 마음이 급해진다. 라마단 기간이어서 아침식사를 기다릴 것도 없어 곧장 석굴 쪽으로 걸었다.

▲ 교육시설이 부족해 천막 교실에서 수업 중인 학생들

▲ 석실의 천장과 벽면에 남아 있는 벽화의 흔적

석굴 입구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허가증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있는 사무소에 허가증을 받으러 가면서 또 허가비를 톡톡히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취재 왔다고 하니 별 어려움은 없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지 미지수지만 아직까지 이 엄청난 유적에 관람료가 없다는 사실을 기분좋게 생각해야 할지 말지 모르겠다.

무장 군인의 입회하에 첫 대면한 것은 서쪽에 있는 대불의 감실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인 감실의 윤곽은 아직껏 또렷하게 남아 있지만, 1500년을 지켜오던 그 거대한 불상은 간 데 없고 텅 빈자리 밑에 무너져 내린 흙덩이들만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당시 뉴스를 통해 봤던 그 충격적 화면이 떠오른다. 세계 각처에서 이 불상의 파괴를 막아 보려고 그토록 노력했지만 결국 탈레반 정권은 파괴하고 말았다.

“비이슬람 우상과 싸우겠다”는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모든 것을 파괴 대상으로 삼겠다는 잘못된 사고가 반달리즘(vandalism·문화예술의 파괴행위)의 차원을 뛰어넘은 ‘반문명적 폭거’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세계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 거대 불상이 있었던 서쪽 석굴의 석실

군데군데 많은 석굴은 이곳 주민들이 문을 달아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비록 불상이나 벽화가 남아 있지 않은 텅 빈 곳이라지만 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이렇게 방치되고 훼손돼가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동쪽의 대불 또한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이곳은 불상이 있었던 자리의 윤곽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감실 옆으로 나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여기저기 석굴마다 놀랍게도 벽화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너무 심하게 훼손되어 무슨 내용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당시의 화려한 모습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불교미술사에서 이 바미안 석굴이 특별히 유명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거대한 크기의 불상 때문이었다. 어느 지역의 어느 불상도 필적할 수 없을 만큼 큰 크기는 일찍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미안 분지의 북쪽을 둘러싸고 약 1.3km에 걸쳐 펼쳐져 있는 암벽에는 이처럼 1천여 개의 크고 작은 석굴이 파여 있다. 이중 얼마 전 파괴된 커다란 대불이 동쪽과 서쪽에 하나씩 감실 안에 새겨져 있었다. 동쪽의 대불은 높이가 38m, 서쪽의 대불은 55m였다.

6세기쯤 바미안을 거쳐 가는 교역로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이곳에 불교가 번성하면서 이처럼 많은 석굴들이 조성되었다. 석굴 안에는 훌륭한 벽화들도 있다. 간다라의 쿠샨 왕조 때부터 불교도들이 즐겨 찾는 순례지였던 이곳에는 서기 400년경에는 중국의 법현스님이, 630년에는 현장법사가, 그리고 8세기 초 신라의 혜초스님도 이곳을 다녀갔다고 전해진다.

바미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경관이다. 그것을 말해주는 가장 좋은 자리가 석굴 맞은편 남쪽의 언덕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볼 때 펼쳐지는 장대한 암벽의 동서를 장식했던 두 대불은 그 경관 안에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두 대불은 이처럼 멀리서 볼 때 더 웅대하고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모습은 볼 수 없다.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민다. 유네스코와 아프간 새 정부에서 조만간 이 불상들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옛 모습을 어느 정도까지 살릴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 어느 민가 앞에서

아쉬움에 잘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이끌고 마을로 내려오니 중무장한 미군 한 무리가 갑자기 나타나 사주 경계를 펴고 있다. 이중에는 금발의 미녀도 한 명 끼어 있다. 인상이 좋아 보여 “지금 뭐하는 중이냐?”고 물으니 아프간 정부인사의 경호를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군용 헬기 한 대가 머리 위에서 날더니 그 편으로 고위급 간부 일행이 이곳 바미안을 방문한 모양이다. 아직도 도처에서 탈레반 잔당들의 기습이 염려가 되기 때문에 이렇게 미군들이 직접 경호를 맡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한 마디 더 물었다. “아프간과의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나는 잘 모른다. 직업일 뿐이다.”

날이 점차 흐려져서 눈이라도 내릴 듯하다. 겨울철에는 엄청난 눈이 쌓여 바깥세상과 내통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때의 바미안은 또 어떤 모습일까. 어수선한 시국이지만 이곳 바미안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별 동요 없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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