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산길|정선 가리왕산
걷고 싶은 산길|정선 가리왕산
  • 글 사진 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2.09.1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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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처럼 몰려오는 가을철 운해 장관

▲ 가리왕산은 여름과 가을철에 종종 구름바다가 펼쳐진다. 왼쪽 멀리 두 개의 뿔처럼 보이는 봉우리가 발왕산이다.

인적 뜸하던 가리왕산에 최근 산꾼들이 부쩍 늘어났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활강경기장으로 가리왕산 중봉 일대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가리왕산은 산림유전자보호구역인 관계로 산림청에서 대체지를 물색했으나 마땅치 않아 원안대로 가리왕산이 최종 결정됐다. 이 소식을 들은 전국의 산꾼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리왕산을 찾고 있다.

남한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장대한 육산
정선의 진산인 가리왕산은 해발 1,561m로 남한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장대한 육산이다. 그 품이 깊고 넓어 거느린 능선과 계곡이 부지수로 많다. 특히 장전계곡, 장구목이골, 어은골 등은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이끼계곡으로 유명하다. 가리왕산은 산나물과 약초 천국이다. 곰취, 참나물, 산작약, 당귀, 산마늘, 더덕, 산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중 산삼이 특히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세운 산삼봉표석(도유형문화재 제113호)이 가리왕산과 중왕산 사이 마항치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국가에서 산삼 주산지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의 채삼은 물론 출입을 금지하려고 설치한 봉표다.

산 이름은 동해안 지방에 있던 옛 부족국가 맥국(貊國)의 갈왕(葛王)이 예국(濊國)의 공격을 피해와 이곳에 성을 쌓고 머물렀다고 하여 갈왕산이라고 불리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가리왕산으로 바뀌었다. 산 북쪽 골짜기의 장전리에는 ‘대궐터’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는 갈왕이 대궐을 삼았던 곳이라고 전한다.

가리왕산의 등산로는 남쪽의 가리왕산자연휴양림과 북쪽의 숙암리 일대가 대표적이다. 예전에는 휴양림 코스가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교통이 편리한 숙암리 쪽이 인기가 좋다. 코스는 장구목이골을 들머리로 정상에 올랐다가 중봉까지 능선을 타고 숙암리로 내려오는 길이 일반적이다. 거리는 약 14㎞, 6~7시간 걸리는 고된 길이다.

산행 출발점인 장구목이골 입구는 승용차 몇 대 세울 수 있는 도로변 공터가 있다. 커다란 장승들과 물레방아 앞을 지나면 산길로 들어선다. 골짜기 오른쪽의 옛 산판길을 다듬은 등산로를 따르면 세찬 물소리와 함께 깊은 숲이 펼쳐진다. 힐끔힐끔 계곡을 바라보다가 풍성한 이끼 군락지를 발견했는데, 이런 이끼들은 계곡 내내 펼쳐졌다. 북향인 장구목이골은 수량이 풍부한 습한 계곡이라 두꺼운 이끼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장구목이골을 그냥 이끼계곡이라 부른다.

장구목이골에서 유일하게 계곡을 건너는 지점에 통나무다리가 놓여있다. 이곳에 이끼들이 제법 볼만하다. 다리를 건너면서 계곡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40분쯤 꾸준히 발품을 팔면 장구목이골에서 가장 원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끼 군락지가 나온다. 계곡 가운데 크고 작은 바위들에 두툼한 이끼가 뒤덮여 있다. 이끼는 비가 내려 수분이 풍부해지면 손바닥만큼 두터운 두께로 자란다고 한다.

계곡이 끝나면서 임도를 만나고 곧바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이제부터 가파른 산길이지만 고목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왕사스레나무, 피나무, 잣나무, 전나무 등은 하나같이 밑동이 굵고 키가 크다. 마을에 있었다면 모두 당산나무 감이다. 특히 뿌연 안개에 잠겨 하나의 뿌리에서 대여섯 가닥의 굵은 줄기들이 자라난 피나무 거목 앞에서는 입이 쩍 벌어졌다. 하나둘 보이는 주목은 능선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장구목이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10분쯤 더 오르자 대망의 정상이다.

▲ 가리왕산 정상의 상징인 돌제단. 이 제단은 가리왕산이 정선의 으뜸 봉우리라는 상징이다.

산삼 키우는 원시 숲과 구름바다 조망 압권
다음날 새벽, 심하게 불던 바이 자면서 주위가 고요하다. 뭔가 이상해 밖으로 나가보니, 맙소사 날이 활짝 갰다. 맑은 물에 헹군 듯 별은 초롱초롱하고 솜이불 같은 구름이 발아래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서둘러 사진을 찍는데, 순식간에 별들이 사라지면서 동편으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온다. 그 빛은 시나브로 붉게 물들면서 구름바다를 뚫고 해가 솟구친다.

운해가 9시쯤 사라지자 그제야 중봉으로 출발한다. 중봉까지는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쥐오줌풀, 범꼬리, 박새 등의 야생화를 구경하며 신갈나무 고목 사이를 걷는 길이 더없이 상쾌하다. 앞쪽으로 수피가 눈부시게 흰 거대한 나무가 비스듬히 누워있다. 식물학자들이 가리왕산의 대표수종으로 꼽는 왕사스레나무다. 안타깝게도 뿌리가 들려져있다.

정상에서 1시간쯤 걸리는 중봉은 숲이 우거진 평평한 봉우리다. 돌탑 아래에 앉아 잠시 한숨 돌리고 숙암리 이정표 방향으로 내려선다. 30분쯤 비교적 완만한 길을 따르면 자작나무 숲을 지나 임도에 닿고, 다시 산길을 1시간쯤 내려서면 쭉쭉 뻗은 이깔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숲을 지난다. 소나무 사이로 숙암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거의 다 내려온 것이다. 돌이 무너진 너덜지대를 지나 별천지박물관(옛 숙암분교)에 닿으면 산행이 마무리된다. 

TIP

교통
자가용은 진부IC로 나와 정선 방향을 따른다. 버스는 서울에서는 진부로 가는 것이 빠르고 편하다. 동서울터미널→진부 06:32부터 30~50분 간격, 2시간 10분 소요. 진부→정선 10:00, 14:10, 19:40. 정선행 버스를 타고 장구목이골에서 내린다. 1시간쯤 걸린다. 정선→장구목이골 버스는 8:30 12:40 18:20에 있으며 40분쯤 걸린다.

숙식
가리왕산자연휴양림(033-562-5833)은 산막과 오토캠핑장이 잘 구비되어 있다. 휴양림매표소 직전의 오른쪽 회동교를 건너면 산꾼들이 즐겨찾는 민박집 수정헌(033-563-8860)이 있다. 식사는 정선의 주막집(033-563-0050)과 굴피집(033-563-1361)에서 곤드레정식, 콧등치기 국수 등 정선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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