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Camping ㅣ 영국 웨일즈
World Camping ㅣ 영국 웨일즈
  • 글 사진 김후영 여행작가
  • 승인 2012.09.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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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를 치면 남부럽지 않은 성주가 된다

▲ 웨일즈 북부는 어디를 가나 푸른 초원 위에 양들이 노니는 풍요롭고 한가로운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

웨일즈는 독립국은 아니지만 영연방에 속한 곳으로 독자적인 정부와 국기, 언어, 문화 등을 지닌 매우 흥미로운 여행지이다. 북웨일즈에는 13~14세기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세운 중세 고성들이 자리해 있고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스노도니아 국립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기차를 타고 국립공원 주변의 고성들을 찾아가는 여행은 색다른 재미를 가져다준다. 게다가 캠핑장과 카라반 파크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캠퍼들에게 멋진 추억을 선사한다.

▲ 웨일즈 출신 건축가가 수집해 온 동상과 다채로운 건축물들이 한데 모인 동화마을 포트메이리온.

▲ 요트와 어선이 정박하고 있는 카나본의 부두.

웨일즈는 영국 남서부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웨일즈의 면적은 영국 전체 면적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며 2만㎢로 경상북도의 면적과 비슷하다. 전체 인구는 약 3백만 명이며 수도는 웨일즈 남부에 자리한 카디프(Cardiff)이고 영어와 함께 토착어인 웨일즈어를 사용한다. 잉글랜드가 앵글로색슨족으로 구성된 데에 반하여 웨일즈는 유럽의 소수민족이라 할 수 있는 켈트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17세기 후반 잉글랜드와 연합하면서 아쉽게도 켈트족의 전통문화가 많이 사라졌다.

웨일즈는 독립 국가는 아니지만 독자적인 정부(물론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등과 연방정부를 이룬다), 언어와 국기, 전통 문화를 지니고 있다. 17세기 잉글랜드와 합병된 이후로 경제적으로 잉글랜드에 의지하게 되면서 독립 국가를 이루는 꿈은 점점 요원해지고 있다.

▲ 여름철 운행되는 스노도니아 등산철도. 포트마독과 스노도니아 국립공원의 산 정상을 왕복 운행한다.


여행자들에게 있어 웨일즈는 신천지처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유럽의 여행지이다. 영국에서도 변방으로 불리는 웨일즈는 기대 이상의 매력이 숨겨진 곳이다. 웨일즈 북부에는 웨일즈에서 가장 높은 산인 스노던(1085m)이 솟아있는 스노도니아 국립공원이 있어 자연을 사랑하는 수많은 하이커나 캠퍼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또,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등산열차가 증기를 내뿜으며 스노던 정상까지 운행한다. 뿐만 아니라 웨일즈의 역사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중세의 고성들이 북웨일즈의 카나번, 콘위, 하레쉬 등지에 자리해 있다. 이곳에 소개할 웨일즈 북부 지역은 웨일즈 어느 곳보다 전통과 역사적 유물이 잘 간직된 곳이다. 거리 어느 곳에서나 신비로운 언어인 웨일시(Welsh)를 사용하는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 포트메이리온 인근에 자리한 고성 호텔. 중세적 분위기의 고성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낭만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어 좋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카나본 성
‘독수리의 땅’이라는 이름을 지닌 스노도니아 국립공원 서쪽에 자리한 인구 약 1만 명의 카나본(Caernarfon)은 웨일즈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세풍의 작은 도시이자 스노도니아와 인근 자연경관을 둘러보기 좋다. 게다가 이 도시의 주변에는 캠퍼들을 위한 시설들이 자리해 있기도 하다. 매끈한 메나이(Menai) 해협과 자주빛 스노도니아 산들 사이에 자리한 카나본에는 환상적인 자태를 지닌 카나본 성이 자리해 있다. 예로부터 카나본이 웨일즈의 주요 도시로 여겨졌던 이유도 바로 스노도니아로의 접근성과 웨일즈 전통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평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카나본은 웨일즈의 수많은 도시 중에서 웨일즈언어를 사용하는 현지인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오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카나본의 중심가는 매우 규모가 작은데, 여전히 포석 깔린 도로가 놓여있고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교회건물과 조지안 시대의 건축풍을 지닌 오래된 가옥들이 있어 예스러운 중세도시의 기풍을 잘 지니고 있다. 요트가 정착되어 있는 항구에는 소박한 어부들의 일상과 보트 위에서의 여가를 즐기는 휴양객들의 유유자적한 모습이 묻어난다.

▲ 웨일즈 기차 여행은 전원 속에 자리한 반듯한 가옥, 카라반 파크 등 다채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을 유발시키기에 부족함 없는 카나본 성은 카나본 중심가에 자리해 있다. 1283~1330년까지 군사적 방어 목적으로 세워진 이 성은 웨일즈와 잉글랜드가 대립하던 시기에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잉글랜드 국왕인 에드워드 1세는 카나본 성을 북웨일즈 지역의 통치기반으로 삼았다. 1911년에는 이곳에서 프린스 오브 웨일즈(전통적으로 영국연방을 통치할 왕가의 상속자에게 부여하는 칭호) 서임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오늘날 북문인 킹스게이트를 통하여 성 안으로 들어가면 중후한 분위기에 둘러싸인 고성의 안뜰 중앙에 들어서게 된다. 성 안을 둘러보면 중세시대 이곳을 통치했던 잉글랜드왕가의 유물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주기적으로 웨일즈의 역사를 소개하는 필름이 상영되며 여름철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영어 가이드 투어도 진행된다.

▲ 동화 속 마을 포트메이리온에 조성된 연못과 주변 자연경관.

난공불락의 요새, 하레쉬 성
자연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웨일즈 여행은 기차가 제격이다. 차창 밖 풍경으로 웨일즈의 작은 마을과 푸른 초원을 구석구석 둘러보기에 적합하다. 게다가 영국철도 패스 소지자에게는 철도 회사에서 운영하는 버스 루트를 이용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카나본에서 기차패스로 탑승 가능한 버스를 타고 포트마독을 거쳐 다시 기차를 타고 두 번째 고성순례지로 들른 하레쉬(Harlech)는 인구 2천명의 작은 마을이었다. 간이역에 도착하니 바로 언덕 위의 하레쉬 성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암으로 이루어진 회색벽돌을 쌓아 만든 고성의 자태는 회색빛 하늘 아래 마치 섬뜩한 피비린내 나는 전설을 담고 있을법한 분위기에 보는 이를 흠칫거리게 만든다. 역사적으로 1647년 크롬웰의 군대에게 마지막 함락되기 전까지 여러 차례 성의 주인이 바뀌었지만 난공불락의 요새로 명성을 지녔기에 그러한 느낌이 전해지는 걸까? 하레쉬 성 역시 카나본 성과 마찬가지로 웨일즈를 차지한 에드워드 1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에드웨드1세는 카나본, 하레쉬, 콘위 등 여러 성을 축조하여 웨일즈 정복의 전략적 기지로 삼았다. 오늘날 기네드(Gwynedd)지방에 에드워드 1세가 세운 고성(카나본 성, 하레쉬 성, 콘위 성 등)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포트메이리온으로 가는 베이스인 포트마독 타운 주위를 두른 스노도니아 국립공원의 산자락.

하레쉬 고성 방문을 마치고 카나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트 메이리온(Port Meirion)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관광 마을을 방문했다. 오래 전 1976년 오픈한 이곳은 웨일즈 출신의 윌리엄스 엘리스라는 건축가가 1926년부터 자신이 수집해 온 동상, 조각품 등을 모아 이탈리안 스타일의 건축물과 정원으로 이루어진 동화 속 요정마을 같은 분위기의 관광지로 만들었다. 이 마을은 사람들이 사는 실제 마을이 아닌 TV시리즈물에 나오는 세트장과도 같다. <더 프리즈너(The Prisoner)>라는 TV드라마가 1967년 이곳에서 촬영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에 자리한 가옥들은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 상점 등으로 사용되며 일부 건물은 방문객들의 휴양을 위해 대여되기도 한다.

유럽의 변방으로 치부되어 온 미지의 땅에서 누린 웨일즈 북부 여행은 짧지만 소탈하면서도 독특한 전통 문화와 신비로운 역사, 한 장의 사진처럼 생생한 자연과 만난 시간이었다. 웨일즈 여행은 이 지역의 잃어버린 역사와 전통을 살며시 들여다보고픈 여행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미 영국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정체성 안에 파고들어가 있는 웨일즈의 길들여진 신문화적 질서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펼쳐질 희망과 마래의 땅으로서의 웨일즈를 내다보는 여행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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