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s Travel Noteㅣ미국 네바다주 데스밸리 국립공원
Andrew’s Travel Noteㅣ미국 네바다주 데스밸리 국립공원
  • 글 사진 앤드류 김 기자
  • 승인 2012.06.2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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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속삼임이 들려오는 신비의 사막

▲ 하늘에 낮게 깔린 구름과 모래언덕이 맞닿는 저 먼 곳엔 모자익 캐년(Mosaic Canyon)의 높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난 늘 사막을 사랑했었어. 너도 모래언덕에 앉아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하지만 뭔가 빛나고 있어. 뭔가 고요함 속에서 흥얼거리잖아.”

미국 네바다주 데스밸리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에선 당장이라도 어린왕자의 나직한 소곤거림이 들려올 것 같다. 푸른 하늘과 대비된 채 높게 솟은 이곳의 모래언덕은 세계 어느 곳의 지형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데스밸리는 북미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으로 그 길이만 200km가 넘는다. 해수면보다 고도가 낮은 땅이 있는가 하면, 소금사막이 65km나 펼쳐지기도 한다. ‘죽음의 계곡’에선 가도 가도 집 한 채 없고 나무 한 그루 없는 삭막하고 기이한 지형들이 펼쳐져 마치 우주 어딘가의 외딴 행성을 해매는 기분이 든다. 이런 혹독한 자연조건에서 밤이슬만 마시며 한낮의 열풍과 고온을 견뎌내는 사막식물의 질긴 생명이 경이롭다.

죽음의 계곡이라는 무시무시한 명칭은 누가 지었을까? 지금부터 160년 전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 금광을 찾아 서쪽으로 달려가던 역마차들은 눈앞을 켜켜이 막아선 시에라 산맥을 힘들게 넘기보다, 평지가 많아 보이는 이 계곡으로 우회해 들어갔다.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섭씨 50도가 넘는 계곡에 발을 들여놓은 이들은 더위와 기아에 한명씩 쓰러져 나가기 시작 했지만, 이미 되돌아 나갈 방도가 없었다. 남은 것은 전진 뿐. 겨우 살아남은 일부가 계곡을 빠져 나오며 외쳤던 말은 “Good bye, Death Valley.”였다. 당시 생존자들의 저주어린 외침이 훗날 이 국립공원의 이름이 된 것이다.

죽음의 계곡에는 또 하나 불가사의한 지형이 있어 방문객의 발목을 붙잡는다. 입자가 고운 모래로 이뤄진 거대한 모래언덕이 그것인데 그 많은 모래가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어떤 이유로 생겨난 지형인지 오늘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 죽음의 계곡에 숨겨진 거대한 모래언덕. 이 많은 모래가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어떤 이유로 생겨난 지형인지 오늘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모래언덕을 멀리서 볼 땐 경사도 완만하고 이웃한 언덕까지의 거리도 짧아 보인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서 대면하면 왜 이리 높고, 어쩜 이리 멀리 떨어져 있는지. 신기루에 홀린 듯한 기분이다. 모래언덕의 지나치게 고운 입자 탓에 서둘러 발을 옮기지 않으면 아래로 미끄러지기 일쑤다. 좀 걷다 보면 요령이 생기는데, 보폭을 최대한 줄여 잰걸음으로 움직여야 앞으로 나아가는 게 수월해진다.

아침이 찾아와 태양이 솟아오르면 모래언덕은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는다. 진한 황금색에서 점차 은빛 백사장으로 변해 가는 색의 흐름이 찬란하다. 지난밤 사막에 불어온 바람은 새로운 언덕을 만들고 그 위에 물결무늬 장식을 남겨 놓았다. 하늘에 낮게 깔린 구름과 모래언덕이 맞닿는 저 먼 곳엔 모자익 캐년(Mosaic Canyon)의 높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어쩌면 이곳은 척박한 죽음의 계곡이 아니라 신비의 계곡 아닐까’ 생각될 정도의 절경이다.

인적 없는 모래언덕에 앉아 천천히 동쪽을 밝혀오는 일출을 바라보고 있자니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대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사막은 왜 아름답지요?” “사막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이 척박한 데스밸리에서 삶을 이어가는 동식물이 있듯이, 우리도 인생에 큰 고난이 닥쳐도 아름다운 인생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분명 어딘가에 희망이 존재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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