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 몬스터’가 사는 황홀한 설국
▲ 호키비타이 루트로 가기 위해 오다케와 마에다케 사이의 안부를 향해 오르는 스키어들. 이 고개만 올라서면 핫코다에서 가장 긴 활강 코스가 시작된다. |
일본 동북부 끝에 자리한 아오모리현 핫코다 산. 해발 1323m의 로프웨이 정상이 가까워지자 눈부신 수빙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뭇가지에 달라붙은 눈이 얼어붙어 거대한 눈덩이처럼 형성된 나무들이다. 흔히 ‘스노 몬스터(Snow monster)’라고도 부른다. 곤돌라가 위로 올라갈수록 수빙은 한결 더 신비스럽게 다가왔다. 더불어 곤돌라 정상에 가려 보이지 않던 마에다케나 오다케 등의 봉우리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도 하나같이 수빙이 늘어서 장관을 연출했다. 일본 최고의 수빙을 자랑하는 센다이 자오 스키장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웅장한 모습이다.
▲ 로프웨이 정상에서 내려 백 컨트리 스키를 즐기기 위해 걸어가는 스키어들. |
▲ 백 컨트리 스키를 타기 위해 로프웨이를 탄 스키어들이 곤돌라 밖에 펼쳐진 수빙지대를 감상하고 있다. |
100년이 넘는 일본 스키 역사의 산증인과 같은 핫코다 산은 백 컨트리 스키 명소다. 해마다 봄이 오면 일본 전역에서 스키 고수들이 이곳을 찾는다. 백 컨트리 스키는 스키장 밖에서 타는 스키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슬로프 밖에서 스키를 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지만 적설량이 풍부한 일본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백 컨트리 스키는 일정 지점까지 곤돌라나 리프트를 타고 간 뒤 그 다음부터는 걸어서 이동한다. 이때는 설피를 신고 간다. 원하는 봉우리나 능선에 닿으면 그때부터 스키나 보드로 갈아 신고 대자연속으로 활강을 시작한다. 백 컨트리 스키는 등산과 스키가 접목된, 아주 자연적인 스키라 할 수 있다.
오다케(1584m)를 중심으로 11개 봉우리가 있는 핫코다 산에는 모두 10개의 백 컨트리 스키 루트가 있다. 이 루트들은 방사형으로 골고루 퍼져 있다. 어떤 루트는 하루가 꼬박 걸리기도 한다. 각각의 코스마다 트리런이나 대사면, 수빙 등의 다양한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루트가 10개라고 하지만 선택에 따라서는 수십, 수백 개가 될 수 있다. 그만큼 변화무쌍하게 코스를 변경하며 스키를 탈 수 있다.
▲ 101명 정원의 핫코다 산 로프웨이. 이 로프웨이를 타야 백 컨트리 스키를 즐길 수 있다. |
▲ 핫코다 산 로프웨이에서 활강을 준비하는 보더. |
2시간 걸어올라 대사면 활강
원정대는 이틀간 포레스트와 다이렉트, 도조 루트에서 몸을 풀며 백 컨트리 스키 적응을 마쳤다. 원정 3일째. 가이드가 선택한 코스는 호키바타이. 이 루트는 핫코다 산의 백 컨트리 스키 코스 가운데 가장 길다. 이곳으로 가려면 곤돌라 정상에서 스카유 온천 방면으로 내려가다 오다케와 이도다케(1548m) 사이의 안부를 넘어서 간다. 걸어 올라가는 길이 힘들고 멀지만 안부에만 올라서면 스릴 넘치는 대사면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회전반경을 원하는 만큼 넓혀가며 탈 수 있다. 이 코스는 보통 4월에 개장하지만 이틀 연속 날씨가 좋아 3월 초순인데도 가이드가 그곳을 선택한 것이다.
▲ 로프웨이 정상에서 포레스트 루트를 선택한 스키어들이 수빙지대를 지나가고 있다. |
로프웨이 정상을 출발했다. 곳곳에 빙판이 도사린 울퉁불퉁한 설사면을 내려서자 넓은 평원이 나타났다. 이미 앞서 출발한 팀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 너머로 이도다케 정상부에서 흘러내린 산자락을 따라 수빙 군락이 펼쳐졌다. 평원은 생각만큼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보더들은 아예 걸어서 가고, 스키어들은 정강이에 피멍이 들도록 스키를 밀고 갔다. 고된 이동은 15분 정도 계속됐다.
평원이 끝나는 곳에서 스카유 온천 방면으로 방향을 잡았다. 가파른 설사면을 내려서서 수빙 사이를 빠져 나갔다. 햇살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아늑한 안부라 파우더 눈이 남아 있었다. 스키 플레이트에 닿는 눈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그래 이 맛이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설질도 좋고, 하늘도 맑고, 수빙도 가득하니 스키어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활강의 기쁨도 잠시, 스키를 벗고 설피를 신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다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 스키를 벗었다. 이제부터 오다케와 이도다케 사이의 안부까지 걸어 올라갈 일만 남았다. ‘수빙의 바다’가 펼쳐진 완만한 계곡 곳곳에서 스키어들이 행군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도 안부를 넘어 호키바타이 루트로 향할 것이다.
▲ 핫코다 산 로프웨이 정상. 건물에도 눈꽃이 만발했다. |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될 때쯤 안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거의 2시간 만에 고개 마루에 올라섰다. 이제부터는 활강할 일만 남았다. 이도다케를 오른쪽으로 감싸면서 돌아가자 거대한 설사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사면의 초입은 땅이 꺼진 것처럼 가팔라 보였지만 설질이 좋았다. 우려했던 빙판 구간은 없었다. 하나씩 열을 지어 대사면을 내려가는 스키어와 보더들이 행렬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한 슬로프에 수백 명이 뒤엉켜 스키를 타는 한국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스키가 지난 자리에는 S자 모양의 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완만한 경사의 대사면은 산의 중턱까지 이어졌다. 보더들도 원 없이 큰 턴을 그리며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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