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남고딩’들이 끓인 그 맛을 못 잊어”
“시커먼 ‘남고딩’들이 끓인 그 맛을 못 잊어”
  • 글·사진 이재건 기자
  • 승인 2012.03.0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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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부대찌개 ①

의정부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인 부대찌개는 알고 보면 슬픈 유래를 가지고 있다. 한국 전쟁 직후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었지만 의정부에 자리한 미군 부대에는 소시지나 햄 같은 육가공품 등이 차고 넘쳤다.

▲ 돼지고기와 소시지와 신 김치를 듬뿍 넣어 끓인 김치부대찌개. 캠핑장에서 먹고 남은 재료들을 한데 모아 끓이면 밥 두 공기를 뚝딱하게 만드는 찌개가 손쉽게 완성된다.
주변 주민들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핫도그나, 햄 등의 소시지로 끼니를 해결했는데, 그것이 입맛에 맞지 않아 김치나 고추장 등을 넣고 얼큰하게 끓여 먹기 시작했다. 이것이 맛도 좋고, 그때 당시에는 영양가도 있기에 입소문이 퍼지다 1960년대 초 의정부에 전문식당이 생겨나게 됐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부식물로 만들었기에 부대찌개라는 이름이 생겼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린든 베인스 존슨의 성을 따 존슨탕이라고도 불렀다. 혹자는 미국인의 흔한 성이 존슨이라 이를 땄다고도 한다.

부대찌개가 탄생하게 된 계기는 서글프지만 지금은 누가 뭐래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찌개임은 분명하다. 찌개 안에 넣는 것도 다양해서 햄과 소시지뿐만 아니라 취향에 따라 치즈, 떡, 라면 사리, 스테이크 고기, 돼지고기 등등 온갖 맛있는 것을 한데 넣어 얼큰하게 끓인다.

나 역시 부대찌개라면 밥을 두 공기는 거뜬히 먹어치울 정도로 부대찌개 광이다. 냉장고를 뒤져 남는 재료 모두를 넣어 잡탕찌개처럼 만들고, 꼭 라면 사리를 넣고, 국물을 자작하게 만들어 밥도 볶아 눌려 먹는다. 개인적으로 부대찌개를 김치찌개, 된장찌개와 더불어 찌개류의 삼대천왕으로 꼽는다.

요리는 20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론 시작했지만 곰곰이 나의 요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등학교 때 부대찌개를 요리했던 기억이 난다. 바야흐로 때는 고등학교 2학년. 학교에서 전체 수련회로 1박2일간 캠핑장을 방문했다. 시커먼 남고생들이기에 다들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었다. 그저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삼겹살만 신나게 구워 먹으며 고기 삼매경에 빠졌다.

야외에서 먹는 고기의 맛은 그야 말로 꿀맛. 돼지고기건만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불판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삼겹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고기의 여운으로 입맛을 다시는데, 금세 출출해져 오는 것이 아닌가. 먹고 돌아서면 배고플 나이라고 하는데 그 말처럼 그땐 돌도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였던 것 같다.

뭔가 더 먹고 싶지만 고기는 이미 다 먹고 아쉬움만 가득했다. 친구들끼리 남아 있는 식재료를 모아 보니 라면과 통조림 콘, 김치 그리고 소시지 몇 개가 나왔다. 요리는 못했지만 어디서 본 기억은 있었던 지라 부대찌개를 한다며 냄비에 모두 모아 끓이기 시작했다. 사실 라면에 남은 식재료를 모두 넣어 끓인 셈이지만.

곧이어 군침이 돌만큼 냄새도 얼큰한 김치부대찌개가 완성됐다. 옆 조에 찌개를 조금 나눠준 대신 고기를 조금 얻어 다시 찌개에 넣고, 또 다른 조에는 찌개를 주고 삼층밥도 아닌 무려 오층밥을 얻었다. 어떤 부분은 설익고 어떤 부분은 탄내가 나는 밥 위에 올려 먹는 부대찌개의 맛은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이 난다. 머릿속에 각인된 맛이라고나 할까. 좀 전에 먹었던 삼겹살의 맛을 잊을 정도로 몰입해서 먹게 만드는 맛이었다.

냄비 하나를 둘러 앉아 대여섯 명의 남자 아이들이 머리를 박고 서로서로 많이 먹으려 경쟁하던 그때. 하나라도 많이 먹으려고 입안이 데여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우선 입 속에 밀어 넣었다가 뜨거워서 밥 위로 도로 뱉기도 했었던. 지금 생각하면 약간은 더럽기도 한 추억인데 그때의 부대찌개 맛이 그리워 지금도 자주 끓이지만 당시의 맛은 흉내 낼 수 없다. 다시 한 번 그때의 아이들과 모여 캠핑장에서 어설프게 부대찌개 라면을 끓인다면 그 맛이 날까? 물론 오층밥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번에 소개 할 부대찌개는 돼지고기와 소시지와 신 김치를 듬뿍 넣어 그때의 부대찌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재료가 푸짐해 화려한 부대찌개다. 멈출 수 없는 숟가락질에 찌개 국물이 줄어드는 게 아쉬울 정도의 부대찌개라고 할까? 무엇보다 캠핑장에서 만들기도 쉽다.

Tip.
캠핑장에선?
육수와 양념장은 미리 준비해 가고 모든 재료를 한 번에 다 넣어 10분가량 끓이면 완성! 육수 내기가 귀찮다면 그냥 물로 끓여 주세요. 구워 먹고 남은 고기나, 생고기나 준비해간 여러 재료도 함께 넣어 주면 김치 양념 아래 모든 재료가 조화를 이룬다.

※ 김치찌개를 끓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깔끔 담백 버전으로 끓이고 싶다면 김치와 돼지고기를 볶다 육수나 물을 붓고 끓이면 된다. 진하고 구수한 버전으로 끓이고 싶다면 육수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바로 넣고 끓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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