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는 씹어야 제 맛? 썰어야 제 맛!
고기는 씹어야 제 맛? 썰어야 제 맛!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2.02.1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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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의 재발견

▲ 태양왕 시절에는 커다란 연장을 써서 개인용 접시에 덜어주면 객들은 손으로 그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지붕, 프랑스 접경의 지역 피에몬테에서 찍은 한 장의 스테이크 사진을 본다. 고기를 써는 큼직한 연장을 보니 글로만 읽은 태양왕 루이14세의 만찬장이 떠오른다. 이 왕은 워낙 교만하고 기세가 등등해 영주와 귀족들을 불러서 화려한 연회를 자주 베풀었다고 한다.

그런데 식탁 위에 차린 음식은 루이14세만을 위한 것이었다고도 한다. 음식은 어마어마한 양을 차렸는데, 송아지와 돼지·염소·양 따위가 통째로 로스팅 되어 올라가고 가금류는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도살되어 진열됐다고 한다.

손님들은 멀뚱히 앉아 왕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계급적 처신(?)을 공고하게 되씹었을 것 같다. 이른바 현대에서도 있는 헤드 테이블은 그렇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왕이 다 먹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아랫사람들에게도 시식의 기회가 주어졌다. 군대 시절 우연히 본 간부 식당이 바로 그런 서양식 전제군주의 식탁을 연상시켰다. 부대장이 먹는 헤드 테이블은 따로 단상 위에 차려져 그 계급의 위세를 떨치고 있었던 것이다. 먹다 남은 음식을 부하들에게 내려주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굽는 둥 마는 둥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
다시 고기 써는 연장 얘기로 돌아가자. 태양왕 시절에는 개인용 포크나 나이프 따위는 없었다. 사진처럼 커다란 연장을 써서 개인용 접시에 덜어주면, 객들은 손으로 그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설마? 사실이다. 서양 식탁에서 냅킨을 꼭 사용하는 습관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고기 좀 먹는다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과연 무서울 때가 있다. 삼겹살이 다 익기도 전에 서너 점을 한꺼번에 쌈장을 바르면서 이렇게 외친다.

“돼지고기도 설익혀 먹으면 맛있다니까.”

이런 배짱에는 경쟁자가 없다. 누가 분홍색 돼지고기에 감히 젓가락을 들이댈 수 있을까. 소고기는 더 하다. 아예 철판이나 석쇠에 겉면을 지지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입으로 들어간다. 그럴 거면 육회를 먹지 구이는 왜 시키나, 이런 투정이 생긴다.

적색육은 과연 인간이 먹어도 되나, 안되나 온갖 논란이 있다. 건강에 좋지 않다. 적당히 먹는 건 괜찮다. 인간이 원래 고기 먹는 종족 아니었나, 그래도 고기 때문에 인류가 망할 것이다…. 이 지면에서 그 왈가왈부의 전말을 쓸 수는 없다. 다만 고기 먹는 쾌감은 일종의 성욕과 같아서 본능에 가깝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린 아기가 언제 고기를 먹어봤다고 날름 어미의 젓가락을 받아먹겠는가. 아마도 유전자에, 염기의 꽈배기에 차곡차곡 새겨져 있던 건 아닐까. 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걸 구도나 고행이라고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한때 고기를 먹지 않은 적이 있었다.

소주는 늘 마셨는데, 고깃집에 가면 처음부터 된장과 밥을 시켜서 말아 안주로 먹었다. 이게 꽤 그럴 듯한 안주가 되어서 술도 잘 안 취하고 속도 편했다. 단, 이런 방법으로 다이어트 하겠다는 분들은 말리고 싶다. 고기보다 살찌는 데는 탄수화물이다.

고기가 맛있다는 우리의 혀와 뇌의 반응은 대부분 감칠맛을 내는 성분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질겅거리고 씹을 때 치아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씹어야 고기라고 하지 않는가.

써는 방법도 예술적인 이탈리아
▲ 허릿살이나 등심은 레스토랑 주인이 나와서 직접 인원에 맞게 잘라 나눠준다.
미국인들이 고기를 먹는 건 과연 물량주의의 본때를 보여준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스테이크를 시켜서 썩썩 썰고 있는 미국인들을 보면, 뭐랄까 미국이란 나라는 고기와 지방 늪에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두껍고 뜨거운 스테이크 접시 위에 2파운드쯤의 스테이크가 붉은 육즙을 줄줄 흘리면서 올라앉은 모습을 보면 당신도 그런 생각이 들게 틀림없다. 칼로 획, 고기의 허리를 자르고 두툼하게 그릴에서 익은 고깃점을 입안에 밀어 넣고 씹는 모습까지 상상해보라.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기를 좋아하지만, 먹는 방법은 자못 예술적이다. 그저 그릴에 구워서 피범벅의 살점을 자르는 짓은 하지 않는다. 부위별로 요리법이 다양한데, 이를테면 다리의 살은 뼈를 발라내고 살점을 두툼하게 말아서 오래 삶아서 먹는다.

보쌈을 떠올리면 되는데, 잘라놓은 모양은 아주 세련됐다. 목살은 오래 삶은 후 다시 양념에 조려서 내놓으며, 엉덩이 살은 슬쩍 삶아 저며서 소스와 함께 낸다.

뱃살은 양념을 채워 넣고 돌돌 말아서 멋을 내고, 갈비는 뼈를 붙인 채 저며서 양념에 재웠다가 굽는다. 절대 손으로 뜯어 먹는 일은 하지 않는다. 오렌지나 사과조차 포크와 나이프로 껍질을 벗겨 먹는 것이 예절이듯이, 일일이 연장으로 그 살을 발라낸다. 어쩌면 고기 그 자체의 맛보다 세밀하고 우아하게 연장을 쓰는 걸 보여주기 위한 메뉴 선택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나마 고기다운 투박한 맛을 살려주는 것이 허릿살이나 등심이다. 사진의 등심은 그저 굽는 것으로 맛을 다 표현했다. 굽기만 해도 맛이 좋은 부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걸 통재로 써는 쾌감은 즐겨볼 수 없다. 얇게 저며서 여럿이 나눈다. 그게 바로 두 번째 사진이다. 레스토랑의 주인이 나와서 직접 인원에 맞게 잘라 나눠준다.

통쾌무비한 스테이크를 생각했다면 섭섭해진다. 그래서 어쩌면 이탈리아라면 이런 스테이크보다는 양껏 먹기 좋은 피자를 고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피자라면 오직 끝장을 보게 양이 많으니까. 물론 미국 피자에 대면 미니어처에 불과하다. 미국의 어떤 피자는 한 조각의 열량이 8천 칼로리에 달하는 것도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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