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리워 가을 잎사귀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
“당신이 그리워 가을 잎사귀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
  • 김경선 기자
  • 승인 2011.12.1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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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캐시디

가을은 찰나다. 푸릇한 대지가 금빛으로 물들면 땅은 풍요의 산물을 내어 놓고 금세 소멸의 계절로 접어든다. 가을의 끝자락은 쓸쓸하고 처연하다. 사람들은 빛바랜 낙엽이 거리를 나뒹굴 때 거리에서 들려오는 끈적끈적한 재즈 선율에 한없이 침잠한다.

‘Autumn Leaves’는 가을이 되면 가장 많이 들려오는 노래다. 제목도 그러하지만 쓸쓸한 선율이 가을과 꼭 어울린다. 지금은 재즈 스탠더드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노래는 샹송이 원조다. 조셉 코스마가 작곡한 발레곡에 프랑스의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시를 붙여 만든 ‘Autumn Leaves’는 영화 <밤의 문>에서 이브 몽탕이 부르면서 유명해졌다.

‘낙엽이 창문가에서 흔들리네. 붉고 금빛의 가을 낙엽. 나는 너의 입술을 보네, 그 여름의 키스. 햇볕에 탄 손을 잡곤 했었지. 그대가 멀리 떠난 후로 시간이 길어졌네. 그리고 이제 나는 오래된 겨울 노래를 듣네. 하지만 나는 당신이 그리워, 내 사랑. 가을 잎사귀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

떠나간 옛 사랑을 그리워하는 슬픈 가사는 처연한 멜로디와 어우러져 수많은 가수들에게 불려졌다. 이브 몽탕, 에디트 피아프, 파트리샤 카스, 로라 피지, 냇킹 콜, 에릭 크랩튼 등 세계적인 가수들이 ‘Autumn Leaves’를 변주했다. 한결같이 명곡들이지만 기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수는 33살의 나이로 요절한 에바 캐시디다. 살아 있을 때보다 죽고 난 후에야 이름을 알린 불운의 여가수는 죽기 몇 달 전에 발매한 라이브 음반을 유일한 앨범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Autumn Leaves’가 수록된 에바 캐시디의 <songbird>는 2000년에 발매돼 영국에서 1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미처 꽃피우지 못한 그녀의 인생이 노래와 닮아있다. 쓸쓸함이 묻어나는 그녀의 목소리는 특정 장르로 구분하기 힘들다. 재즈 보컬로 알려졌지만 블루스의 향기와 포크의 분위기가 가득하다. 청아하면서도 허스키한 그녀의 목소리는 떠나간 사랑을 가슴에 묻은 여인에 동화된 듯하다.

울긋불긋 산하를 물들였던 단풍이 떨어지고 있다. 가을이 떠나고 있다는 증거다.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듯 떠나는 가을이 벌써부터 그립다. 가을의 풍요로움을 만끽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날 수 없었던 에바 캐시디의 노래가 그래서 더 처연하다. 그녀도 가고 가을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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