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42
그러나 이 산골에서는 매스컴에서 떠는 것과는 별개로 유유자적, 초가을에 심어둔 김장용 배추가 쑥쑥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배추 값이 비싸 봐야 얼마나 오를까”라며 “김장때 되면 다 내려가겠지” 하는 마음들이 대부분이었답니다. 김장 걱정도 별로 없었구요.
그런데, 10월이면 배추 속이 들어야 하는데 여름내 그토록 많이 내리던 비가 가을부터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겁니다. 덕분에 슬슬 가을 가뭄이 들기 시작했고 기온도 예년보다 추운 이상 한파 현상이 계속 되었습니다. 11월이 되니 여기저기서 “배추가 얼었네, 배추가 속이 안 차서 팔수가 없네” 등등 동네 분들의 한숨 섞인 하소연들이 들려왔지요. 설상가상으로, 올 봄부터 제 김장 배추까지 심어 주신다던 이웃의 배추밭도 속이 안 찬 것이 대부분이라는 정말 속상한 소식까지 듣게 됩니다.
▲ 배추를 절이고 씻고 다듬는 일은 정말 고된 노동이어서 김장을 하고나면 며칠 몸살을 앓게 된답니다. 이렇게 도와주시는 분들 덕분에 그래도 한결 수월하기는 하지만요. |
▲ 가을에 유난히 춥고 비가 안 내린 덕분에 올해는 이렇게 배추가 파란 잎이 더 많고 속이 덜 찬 것이 많습니다. |
뒷마당에 묻어둔 김칫독이 그득하게 들어 차 있어야 가난한 산골 살림이 풍요로워지는 법. 장을 보러 나가기 어려운 겨울, 김장 김치만 넉넉하면 김치찌개며 김칫국이며 김치전 등 이것저것 만들어 먹을 수 있지요. 이런 겨울 스페셜 메뉴인 김장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서 이 산골에 내려온 이래 가장 비싼 가격인, 한포기에 1500원을 주고 김장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게 웬걸, 망둥이 뛰면 꼴뚜기 뛴다고 배추 값이 오르니 양념값도 덩달아 올랐습니다. 덕분에 이번 겨울 김장 비용은 예년의 3배 이상은 비싼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산골에서 가장 만만한 반찬인 김장이, 올해는 너무 비싼 배추와 양념값 때문에 해마다 200포기가 넘는 김장을 해서 주변인들에게 보내주던 마음씨 좋은 정선 아낙은 올해는 안녕! 배추 우거지 한 장도 아까워하며 겨우 배추 50포기로 김치를 담그자니 정말 갈수록 사는 게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배추를 다듬으면서도 저절로 한숨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 어릴 때는 저렇게 버무린 양념을 배추 속에 채워 넣는 엄마 옆에서 참 많이도 배추고갱이를 먹었는데…. |
김장을 적게 담그니 섭섭한 일은 먹을거리뿐만이 아니더이다. 그동안은 뒷마당의 김장독에 김치를 묻어 두고 겨울 지나 봄까지 먹었더랬는데 양이 적으니 김장독에 넣을 것도 없이 그냥 김치 냉장고에 보관하면 되는 일이어서 그것 또한 섭섭한 마음이 드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김장을 하고 나면 마음 한켠이 든든해지는 산골 아낙. 적은 양의 김장을 해도 김장은 김장인 것, 김치 냉장고 그득 김치를 채워 놓고 나니 겨울이 두렵지 않습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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