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산이 주는 큰 기쁨
작은 산이 주는 큰 기쁨
  • 글 사진·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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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길 | ⑪ 불암산 둘레길

▲ 덕릉고개에서 내려와 만난 작은 전망대. 북한산 연봉이 일필휘지로 펼쳐진다.

정상 오르는 하루길 10㎞, 태릉 일대 나절길 8㎞ 열려

서울을 등지고 앉은 불암산에 둘레길이 뚫렸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던 북한산 둘레길과 달리, 불암산 둘레길은 소리소문없이 열려 풍광 좋고 호젓한 산길을 내놓는다. ‘하루길’은 시종일관 빼어난 산길이 이어지고, ‘나절길’은 서울여대 앞의 버즘나무 군락지와 태릉 등을 지나 볼거리가 많다. 


북한산 둘레길에 이어 불암산 둘레길이 열렸다. 서울의 두 번째 둘레길이다. 불암산(508m)은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로 치솟은 정상의 풍모가 돋보이는 산이다. 이러한 남성적 기품 덕분에 규모가 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불암산은 산세나 규모 면에서 북한산과 비교가 되지 않지만, 둘레길만 놓고 보면 북한산보다 한 수 높다. 

▲ 덕암초등학교 옆으로 이어진 호젓한 둘레길.
불암사 들머리로 둘레길 시작
자연·생태 경관 중심인 하루길(10㎞)은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정상과 산비탈을 타고 돈다. 그만큼 길이 순하고 풍광도 좋다. 공릉동 일대 역사·문화유적 중심의 나절길(8㎞)은 화랑로를 따라 이어져 걷기에는 좋지 않지만, 서울여대와 육군사관학교 일대의 버즘나무 군락과 태릉을 끼고 있어 역사 유적을 둘러보기에 좋다. 불암산 둘레길 두 가지 코스를 검토하다 들머리를 불암사로 잡았다. 초반에 정상에 오르는 것이 좋고, 하루 코스를 끝내고 나절길도 좀 밟아보고 싶어서다. 

불암산 등산로는 서쪽 서울 노원구 방향과 동쪽 남양주시 별내면 불암동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교통은 서울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편하지만 불암동 방향에서 오르는 코스가 가장 불암산다운 풍경은 만날 수 있다. 불암동을 기점으로 하면 조형미 빼어난 불암산 암봉들, 유서깊은 고찰 불암사, 석천암의 인자한 마애불 등을 차례로 감상할 수 있다. 따라서 불암산 최고의 산길이 둘레길이 된 셈이다. 

불암동 버스정류장에서 15분쯤 걸으면 불암사다. 불암사는 조선왕조의 호국안민 기도사찰로 유서깊은 곳이다. 조선 세조는 한양을 중심으로 하는 도성 외곽의 동서남북에 각각 4대 원찰을 세워 호국안민의 뜻을 세웠는데 동불암, 서진관, 남삼막, 북승가가 그것이다. 

‘천보산 불암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면 고풍스러운 건물과 울창한 솔숲이 나온다. 천보산은 불암산의 옛 이름이다. 불암사는 불교 신자들은 물론 수도권 시민의 나들이 장소로 꽤 인기 있는 절집이다. 대웅전 뒤편에는 거대한 암반 위에 세운 7층 석탑이 있다. 이 탑을 중심으로 탑돌이를 할 수 있는데, 이곳의 분위기가 좋다. 

▲ 조선왕조의 호국안민 기도사찰로 유서 깊은 불암사. 

등산로는 대웅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다. 절 뒤편을 돌아 10분 오르면 갈림길이다. 계속 계곡을 따르면 깔딱고개에 이르고, 오른쪽 돌계단을 20분 밟으면 석천암이다. 석천암은 손바닥만 한 암자로 건물 뒤편이 온통 바위 절벽이다. 그 바위 한 칸에 할머니를 닮은 마애불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석천암에서 키우는 진돗개 한 쌍은 사람의 성품을 알아보는 영리한 개다. 석천암을 지키는 할머니에 의하면 이 개들은 나쁜 사람이 오면 거칠게 짖고, 착한 사람에게는 양처럼 온순하다고 한다. 

▲ 마애불과 영리한 진돗개가 사는 석천암.

남성적 풍모가 돋보이는 불암산 정상
물맛 좋기로 소문난 석천암 석수를 한 잔 들이켜고 식수를 준비한다. 석천암을 지나면 ‘불암산 호랑이 은거1굴’이란 간판을 만난다. 6·25전쟁 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유격대로 활동하던 은거지다. 여기서 15분 오르면 동굴매점이 나온다. 이름처럼 동굴 안에 매점을 꾸미고 막걸리·국수 등을 파는데, 맛이 좋아 단골이 많다.  

동굴매점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오른쪽으로 가면 ‘호랑이굴 산장’을 지나 정상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면 ‘불암산 호랑이 은거3굴’을 지나 역시 정상으로 이어진다. 풍경이 빼어난 왼쪽 길을 추천한다. 은거3굴은 비박하기에 좋은 바위굴이다. 이 근처에 ‘102 암장’이란 푯말이 붙어 있다. 암장을 지나 짜릿한 슬랩 지대를 통과하면 정상 직전에 이르고 곧 태극기 휘날리는 정상에 닿는다. 

▲ 화강암으로 치솟은 남성적 풍모가 돋보이는 불암산 정상.

정상 조망은 특급이다. 특히 서쪽으로 노원구 아파트 숲 너머로 도봉산과 북한산의 암봉들이 서울 하늘에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다람쥐광장 푯말이 붙은 석장봉이다. 석장봉 앞의 너른 반석에 올라서면 우람한 수락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10분 능선을 타면 경수사 갈림길이 나온다. 둘레길은 계속 능선을 타고 덕릉고개까지 이어진다. 중간쯤 20m 높이의 암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해 30분쯤 더 가면 수락산과 불암산을 잇는 덕릉고개다. 

덕릉고개부터 본격적인 둘레길이 시작된다. 수락산과 이어진 다리를 건너지 않고, 왼쪽 길을 따른다. 굽이굽이 산길이 타고 돌면 나무데크로 꾸민 작은 전망대를 만난다. 이곳에 오르면 일필휘지로 펼쳐진 북한산 연봉이 장관이다. 이어 낙엽 수북한 길을 따르면 차 소음이 크게 들린다. 수락산과 불암산을 관통해 뻗은 서울외곽순환도로에서 나는 소리다. 

▲ 둘레길이 시작하는 덕릉고개는 수락산과 불암산을 이어주는 고개다. 

둘레길도 차 소리가 싫은지, 불암산 품으로 꺾어지고 곧 화엄사를 만난다. 화엄사 앞에서 길이 좀 헷갈린다. 산속으로 난 길이 아니라 계속 시멘트 길을 따라야한다. 100m쯤 내려오면 아파트가 나오고, 그 앞에 정자가 있다. 정자 앞에서 시야가 넓게 열린다. 수락산 머리에 앉은 바위들이 잘 보이고, 왼쪽 멀리서는 북한산이 다정하게 내려본다. 

▲ 불암약수터 근처의 전망 좋은 의자. 이런 곳에서는 꼭 걸음 멈추고 조망을 즐겨야 한다.
정자를 지나면 불암약수터 공원에 닿는다. 둘레길에서 이곳을 넓은마당이라고 부른다. 넓은마당을 지나면 덕암초등학교 앞부터 학도암 입구의 넓적바위까지 2㎞쯤 ‘불암산 횡단형 건강산책로’가 시작된다. 둘레길은 이 길을 그대로 따른다. 이 길은 불암산 둘레길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걷기 좋고 풍광도 빼어나다. 건강산책로 덕분에 불암산 둘레길은 예산을 줄이고 인공시설물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생성약수터와 불암계곡을 지나면 길은 평지와 다름없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길을 만나고, 위와 아래·양옆 사방에서 사람들이 교차한다. 양지초소 사거리를 지나 500m쯤 가면 만나는 넓적바위는 횡단 산책로의 종점이다. 여기서 학도암이 가깝기에 잠시 들러보는 것도 좋다. 암자 뒤편 13.4m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에 양각 기법으로 새겨진 마애관음보살좌상이 볼만하다. 

둘레길의 핵심 ‘불암산 횡단형 건강산책로’

“이 길 진짜 좋다 야!”

“거 봐, 내가 오자고 했잖아. 호호~”

▲ 학도암 바위에 새겨진 마애관음불은 명성황후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다. 보관을 쓰고 연꽃대좌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부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친구로 보이는 중년 여자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정겹다.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묻자, 길이 편하고 중간중간 약수가 많고, 힘들면 어디서든 하산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넓적바위부터 인적이 뚝 끊긴다. 산책 나온 주민은 사라지고 순수하게 둘레길을 걷는 사람만 남는다. 20분쯤 지나자 아래쪽으로 허름한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 북부에 남은 유일한 달동네인 104마을이다. 

이 마을은 1170여 가구 거의 전부가 단층인 데다 완만한 언덕길에 자리해 내 집, 네 집 없이 햇살을 고르게 받는다고 한다. 1967년 서울 도심 개발에 쫓겨난 사람들이 이곳으로 처음 흘러들어왔을 때 그때 번지수가 산 104였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개발 계획은 이미 세워졌지만, 정든 마을을 떠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부디 재개발이 주민을 위한 방향으로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길에서 만난 별미 

불암동에서는 함흥장터토종순대(031-527-5774)가 맛집으로 산꾼은 물론 주민도 즐겨 찾는다. 아바이순대의 느끼함을 적당히 제거해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개량했고, 순댓국은 24시간 미리 끓여낸 진한 육수가 일품이다. 불암사에서 정상 중간쯤의 동굴매점에서는 담백한 멸치국수로 요기할 수 있다. 상계동에서는 40년 전통의 현가당고개냉면(02-936-6481)이 유명하다. 달짝지근한 동치미 육수에 쫀득한 면발이 잘 어울린다. 

여기서 10분쯤 더 가면 104마을 갈림길. 여기서 하루길과 나절길로 갈린다. 갈림길에서 나절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태릉 철조망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데, 울창한 숲길인 태릉 안으로 걸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30분쯤 지나면 공릉산 백세문앞. 여기서 둘레길은 대로인 화랑로를 따른다. 갑자기 도심으로 내려와 어리둥절하지만, 서울여대 후문을 지나면서 버즘나무 가로수가 펼쳐져 그런대로 분위기가 괜찮다. 이어 태릉 입구. 능 입구에 조선왕릉 전시관이 들어섰는데,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면 좋겠다. 태릉 안으로 들어서자 미끈한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울창하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가을이 떠나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세찬 바람이 낙엽 더미를 헤치고 사라진다. 만추도 이렇게 떠나간다. 

불암산 둘레길 가이드

불암산 둘레길은 노원구와 남양주시가 함께 만들어 2010년 9월에 열었다. 기존의 산길을 하나로 연결했기에 산길의 자연스러운 선이 살아 있다. 길을 만든다고 산을 훼손한 부분이 거의 없어 더욱 좋다. 둘레길은 자연·생태 경관이 중심인 하루길(10㎞)과 공릉동 일대 역사·문화유적 중심의 나절길(8㎞)로 나뉜다. 

하루길은 덕릉고개부터 넓은마당〜넓적바위〜104마을 갈림길〜삼육대 갈림길〜불암사〜불암산 정상〜덕릉고개로 이어지며, 나절길은 104마을 갈림길〜공릉산 백세문〜서울여대 앞~삼육대 정문〜삼육대 갈림길 구간이다. 불암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하루길이 좋고, 나절길은 도로를 따르기에 걷기보다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둘레길은 덕릉고개에서 시작하지만, 불암사를 들머리로 먼저 정상을 오른 후에 느긋하게 둘레길을 걷는 것이 좋다. 

▶ 교통
덕릉고개
: 4호선 당고개역 1번 출구로 나오면 33-1, 17번 버스 등이 덕릉고개를 지난다.
불암사 : 1호선 석계역과 6호선 화랑대역 1번 출구에서 1155번 버스를 타고 불암동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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