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리시 알펜은 왜 아름다운가
바이에리시 알펜은 왜 아름다운가
  • 글·박성용 특파원|사진·안희태 특파원
  • 승인 2011.09.2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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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퓌센 테겔베르크~브란데어슈로펜 트레킹

▲ 테겔베르크 전망대를 가다가 바라본 바이에리시 알펜의 풍경. 왼쪽은 노이슈반슈타인 성, 오른쪽은 호엔슈반가우 성이다.

독일 바이에른 주의 작은 도시 퓌센은 낭만과 동화의 나라다. 중남부 도시 뷔르츠부르크에서 시작하는 길이 350km 로맨틱 가도의 종착지이자 남부 독일 여행의 백미로 꼽히는 곳이다. 알프스 산자락과 목가풍의 전원마을, 백조들이 노니는 호수 그리고 디즈니랜드와 만화영화 <신데렐라>에 나오는 성의 모델이 되었던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매년 전 세계 여행자들을 불러 모은다.

루트비히 2세가 남긴 노이슈반슈타인 성

▲ 디즈니랜드 성의 모델이 된 노이슈반슈타인 성.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가 건설을 시작했지만 완공은 보지 못했다. (사진 안종능)

1868년 착공되어 1892년에 완공된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의 슬픈 사연을 안고 있다. 건축물에 대한 집착과 국고 낭비로 왕위에서 쫓겨난 루트비히 2세는 끝내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호수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이 성의 맞은편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호엔슈반가우 성이 있다.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지은 성으로 바이에른 왕가의 여름 별궁이었다. 비운의 왕 루트비히 2세가 열일곱 살 때까지 살았던 성이기도 하다.

퓌센은 바이에리시 알펜(바이에른 알프스) 자락에 위치한 도시다. 바이에른 주의 남서쪽 일대는 알고이 지방으로 불리며 독일 알프스가 시작되는 지역이다. 퓌센에 가까울수록 멀리 산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노이슈반슈타인·호엔슈반가우 성과 테겔베르크(1720m)에 가려면 퓌센에서 얼마 안 떨어진 마을 슈방가우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무주읍에서 리조트로 들어가는 셈이다.

▲ 테겔베르크 전망대로 오르는 트레킹 코스.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오는 등산객들도 많았다.

대다수 여행자들은 슈방가우까지 와서 두 성만 둘러보고 훌쩍 떠난다. 안타깝다. 테겔베르크에 오르면 지상에서 받았던 감동이 한 번 더 가슴을 치기 때문이다. 테겔베르크는 퓌센과 슈방가우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 포인트로 유명하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노이슈반슈타인과 호엔슈반가우 성도 한눈에 들어온다.

슈방가우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해발 830m에 위치한 테겔베르크 케이블카 역이 있다. 역 주변은 한산했다. 관광안내소 직원은 “이곳은 겨울철에 사람들이 많이 온다. 훌륭한 스키 코스가 많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암벽등반, 패러,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온다”고 설명했다. 관광안내지도를 보면 다양한 트레킹 코스 소개와 함께 스키, 스노보드, 눈썰매 등 겨울 스포츠 정보들이 소개돼 있다. 테겔베르크 일대는 2시간, 90분, 60분짜리 암릉 코스들이 있다. 또 등반 난이도가 4급부터 8급까지 골고루 있는 16개의 클라이밍 루트도 있다.

테겔베르크 전망대서 보는 알프스

▲ 사방으로 풍광이 탁 터진 테겔베르크 파노라마 레스토랑. 맥주만 마시고 내려가도 아쉬움이 없는 명소다.
케이블카를 타고 테겔베르크까지 올라가는 시간은 8분 정도. 고도가 올라갈수록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호수와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 풍경은 마치 달력 사진을 보는 것 같다. 간혹 걸어서 올라가는 등산객들도 보였다.

무주 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다본 풍경과 비슷하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자 짙은 구름이 몰려와 발아래 풍경을 집어삼켰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배려일까, 바람은 잠깐씩 구름 사이로 비경을 보여주었다.

테겔베르크 역에 도착하면 테겔베르크 파노라마 레스토랑이 연결된다. 이름 그대로 전망 하나로 먹고 사는 식당이다. 이곳에서 맥주 한 잔만 마시고 하산해도 아쉬움이 없을 것 같다.

넓은 테라스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장엄한 알프스 산줄기가 꿈틀거리고,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풍요로운 푸른 평원이 펼쳐져 있다. 서로 다른 풍경과 분위기는 환상적이다. 루트비히 2세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 한 대목을 보는 것 같다.

바이에리시 알펜은 가장 높은 봉우리가 3000m를 넘지 않아 사람에게 그다지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전망대에 설치된 조망안내도를 따라 독일의 최고봉 추크슈피체(2963m)를 눈으로 좇는다.

눈이 녹은 봉우리들은 마치 여러 색깔의 갑옷을 입고 도열한 장졸들처럼 보였다. 저 황량한 산줄기는 오스트리아·스위스를 거치며 서서히 몸을 일으켜 프랑스 샤모니에서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4807m)과 합세한다.

▲ 테겔베르크 전망대에서 브란데어슈로펜으로 가는 길. 길은 험하지 않은 길이라 가족 단위로도 많이 찾는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브란데어슈로펜(1880m)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테겔베르크에서 브란데어슈로펜까지는 쉬다 놀다 가도 왕복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트레킹 코스는 길이 잘 닦여 있어 가족 단위로도 자주 온다. 그러나 정상 부근의 암릉 지대는 조심해야 한다. 낙석과 자칫 발을 잘못 디뎌 낙상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쉽지만 조심스런 브란데어슈로펜 산길

이날도 바위지대를 내려오던 소년 하나가 발을 헛짚어서 아래로 굴러 머리를 다친 사고가 일어났다. 붕대로 지혈을 하는 부모와 바위에 앉이 차분하게 구조대를 기다리는 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괜찮냐?”고 물었는데, 부모는 침착하게 “큰 문제는 없다.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출발까지 괜찮았던 날씨가 고도를 올리자 사납게 변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계속 몰려와 시야를 가렸다. 전망대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외줄기라 도중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지만 구름 때문에 심란하다.

게다가 처음 가는 길이라 살짝 긴장도 된다. ‘구름만 걷히면 경치가 끝내줄 텐데…’하며 하늘을 원망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망을 포기하자 오솔길에 핀 야생화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몸을 맡긴 야생화들이 구름 속에 박힌 작은 보석처럼 보였다.

▲ 브란데어슈로펜 정상으로 가는 길목. 여기서부터 길은 가팔라지고 낙석을 조심해야 한다.

브란데어슈로펜 정상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나이프 리지에 가깝다. 구름에 가려 고도감은 느낄 수 없지만 한쪽은 천 길 낭떠러지다. 한 걸음 한 걸음 긴장하며 오르자 어느덧 정상. 브란데어슈로펜 정상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박혀 있다. 전망대 레스토랑에서도 멀리 보였던 십자가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기온도 쌀쌀하다 못해 추웠다.

정상에 머물며 하늘이 개이길 기다렸다. 하지만 골짜기 아래선 구름만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그것은 몽환에 가까운 풍광, 귓전을 때리는 바람소리는 신들도 인간도 모두 몰락한 뒤 사랑으로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다는 <니벨룽겐의 반지> 선율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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