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설원을 누비는 한 마리 야생동물 같은 스키어’
‘은빛 설원을 누비는 한 마리 야생동물 같은 스키어’
  • 글·김경선 기자 | 사진·김광선
  • 승인 2011.06.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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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Mania - 김광선

주5일제가 확산되고 레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대하면서 재미와 만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스키와 스노보드가 연령층을 불문하고 사랑받고 있다. 이런 여파로 사실상의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부터는 강원도로 향하는 영동고속도로의 정체가 이미 상습적이다.

아무리 겨울 스포츠의 꽃이라지만 이렇게 막히는 도로를 뚫을 만큼 강렬한 스키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일 년 365일, 무더위로 헐떡거리는 한 여름을 빼놓고는 눈밭 위에서 스키를 타는 재미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스키 마니아 김광선(48세)씨를 만나 스키의 진짜 매력에 대해 들어봤다.

스키 없인 정말 못살아

▲ 프랑스 샤모니 몽블랑에서 산악스키를 타는 김광선씨.

‘마니아’라는 호칭을 얻는다는 것은 쉬우면서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요즘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한 분야에 조금이라도 열정적면 마니아라는 호칭을 너무 쉽게 붙인다.

그러나 스키 마니아 김광선씨는 마니아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도 아깝지도 않은 진정한 마니아다.

최근에는 전국 스키장을 누비며 일주일에 5일 이상 스키를 탄다는 김광선씨의 본업은 임대업. 본거지는 신사동에 있지만 현재 용평에 오피스텔을 얻어 겨울 내내 용평에서 더 오랜 시간 머물고 있다는 김광선씨는 듣던 대로 스키 없이는 하루를 버티기가 힘들어 보였다.

김광선씨가 처음 스키를 탄 것은 지난 1978년. 당시에는 큰 재미를 못 느끼다가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스키 타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산악부 생활을 하면서 산의 매력에 취해 국내며 해외로 등산을 다녔습니다. 한 번은 해외 원정을 나갔는데 외국 산악인들이 베이스캠프에서 스키를 타는 모습이 얼마나 근사해 보이던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스키를 타기 시작했죠.”

산은 정상에 올랐을 때의 감격이 좋아 오르는 동안 힘들어도 인내심을 가지고 오르지만 스키는 타는 순간의 흥분이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이 짜릿해 생각만 해도 묘한 설렘으로 떨린다고. 남들처럼 초보로 시작한 스키지만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조금 더 잘해보고 싶다는 강한 열정 때문이었다.

꿈을 향한 열정과 도전

▲ 프랑스 국립스키학교 교육과정 동안 함께 한 동료와 강사. 맨 왼쪽이 김광선씨.
김광선씨를 국내 여느 스키어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경력도 한 몫을 한다. 지난 1994년과 2000년에 프랑스 국립스키학교(ENSA) 교육 과정을 밟은 김광선씨.

국내 대학으로 치자면 총 4년 과정으로 1, 2학년 과정을 마치면 티처(Teather)로서의 자격을 얻어 일반인들을 가르칠 수 있다. 김광선씨는 티처 과정을 통과한 뒤 3학년 과정에서 보는 실기 시험 모니터(Monitor)를 준비 중이다.

모니터는 일반인은 물론 선수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시험으로 통과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김광선씨는 이 시험을 위해 매년 9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해발 2,100m 이상의 프랑스 스키장 띠누(Tignes)에서 레이싱 스키를 연습하고 있다.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그가 모니터를 통과하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모니터의 명성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현역 국가대표선수까지 모니터 시험에 응시한다고 하니 그 영향력이 스키어들 사이에서는 거의 절대적임을 짐작할 수 있다.

김광선씨는 내후년쯤 모니터 시험에 응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 현재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모니터를 통과하려면 국내 국가대표 선수들의 최고 기록보다도 5~6초 이상 빨라야 할 만큼 통과 기준이 높아 각고의 노력이 없으면 통과하기 어렵다고.

“일 년에 천명 이상이 모니터 시험을 보고 그 중 150명 정도만 합격합니다. 어느 순간 저의 꿈이 돼 버린 모니터 시험에 꼭 합격해 유럽을 누비며 스키를 가르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김광선씨는 모니터 과정을 통과하면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로 가입국 어느 나라에서도 스키 강사를 할 수 있다며 꿈을 향한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스키는 내 인생의 동반자

김광선씨는 모니터 시험 준비를 위해 프랑스 스키장에서 9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머문 후 국내에서는 12월부터 3월까지 머물며 지인의 자녀들이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스키를 가르친다.

2월에는 3박4일 일정으로 일본에 스키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는 김광선씨. 그의 스키 사랑은 정말 뜨겁다 못해 신기할 정도다.

프랑스 국립스키학교 생활과 모니터 통과를 위한 준비 과정 등으로 유럽에서 소문난 스키장은 거의 다녀봤다는 김광선씨에게 최고의 스키장을 묻자 프랑스의 쓰리 밸리(3 Valley)를 추천한다.

해발 3200m까지 케이블카가 올라오고 총 슬로프 길이가 300km를 넘는 발토랑스(Val Thorens)를 비롯해 메리벨(Meribel), 쿠슈벨 (Courchevel) 등 대규모의 스키장이 서로 연결된 쓰리 밸리는 전 세계에 산재하는 3,300여 개의 스키 지역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전체 슬로프 길이만 600km에 달해 한 달을 누벼도 경험하지 못한 슬로프가 있을 정도로 호호막막한 리조트. 지난 1994년에 방문한 이 스키장을 잊지 못한다는 김광선씨는 기회가 된다면 올 해 다시 한 번 찾을 계획이라 한다.

“제가 스키를 탈 수 있는 한 스키는 저의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나이가 더 들면 그때는 산악 스키를 더 열심히 타려고요.”

김광선씨는 산악스키의 매력에 대해서도 입이 마르게 칭찬한다. 스키를 초급, 중급, 상급으로 나눈다면 산악스키는 그야말로 최상급. 산악스키가 힘든 것은 눈의 상태가 다 다르고 어떤 지형과 위험을 만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술력과 순발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본 스키와 응용 스키를 모두 겸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산악스키는 알파인 스키보다 부츠와 바인딩이 부드러워 스키를 컨트롤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술과 경험이 쌓인 김광선씨에게 부츠와 바인딩이 부드러운 산악 스키는 재미와 함께 편안함을 제공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산악 스키를 즐기고 싶다고.

김광선씨는 10여 년 전 산악스키를 위해 프랑스 샤모니(Chamonix)에서 혼자 두 달 가량 머무르며 스키를 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패기가 아찔하다고.

산악스키는 자칫 잘못하면 크레바스(crevasse, 빙하가 녹으면서 형성된 깊은 균열)에 빠지거나 눈사태를 맞을 확률이 높아 혼자 스키를 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 아직까지는 자신을 포함에 주변 사람들도 큰 사고를 당한 일이 없어 행운이라는 김광선씨는 스키를 탈 때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앞으로 프랑스 국립스키학교의 교육 과정을 모두 마쳐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스키를 가르치고 싶다는 김광선씨. 자세히 보니 그의 눈빛은 새하얀 설원을 누비는 한 마리 야생 동물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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