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기마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에겐 기마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 글·김성중 기자 | 사진·남영호 기자
  • 승인 2011.06.2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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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체험기 - 승마(1)

“아자 아자, 우리 한번 신나게 달려봅시다!”
기자들이 도착한 곳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한 ‘마구간 승마장’. 말 특유의 냄새가 도시 생활에 젖어 있던 우리의 코를 자극했다. 우리는 지난 달 제주도에서 조랑말을 타본 경험이 있어서 왠지 모를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러나 말갈기 휘날리며 초원을 달리려는 기대를 안고 도착한 일행은 조금 실망을 해야만 했다. 기초 훈련장이 지름 6m 밖에 안 되는 작은 크기도 그렇지만, 중·고급 훈련장도 여느 초등학교 운동장보다 작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건방진(?) 생각이었는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상무예의 진수를 목격하다

▲ 전통 마상무예를 익힌 고성규 대장이 활을 들고 마상무예 시범을 보이고 있다. 옛 선조들의 뛰어난 무예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구간 승마장’은 고성규(47), 윤미라(46) 씨 부부가 운영하는 아담한 승마장이다. 고성규 씨는 기마 민족의 혼을 되살리기 위해 마상무예를 9년 동안 연마한 베테랑. 고 대장으로 통하는 그는 이미 승마 분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아내 윤미라 씨는 ‘마구간 승마장’의 전체적인 경영을 맡고 있는 원장이다. 고 대장과 더불어 승마 실력이 국내 수준급인 고수다.

본격적인 승마에 돌입하기 전, 고 대장은 일행에게 마상무예의 시범을 보여줬다.

마상무예는 창술·검술·활쏘기 등을 말 위에서 다루는 무예다. 고 대장은 전통 무예 복장을 입고 무인의 혼이 담긴 활과 검을 차고서 말위에 올라섰다. 마치 내공이 뛰어난 늠름한 무사를 보는 듯 했다.

“저거 진검 맞나요?”
“네 맞아요. 저건 마상무예랍니다. 시연이라 하지만 목숨 걸고 하는 거예요.”

원장은 고 대장을 걱정스레 쳐다보며 말했다.
“으라차차, 워~워~”

초보자가 봐도 그의 말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고삐를 잡아도 중심잡기가 힘든 말 위에서 활시위를 힘차게 당겼다. “쉬익, 데엥~”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정확하게 과녁에 명중됐다. 다리와 상체의 유연성을 이용해 무예를 펼치는 고 대장의 움직임에서 말과 사람이 하나가 된 인마일체(人馬一體)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 승마의 백미인 외승 코스. 봄의 정취를 느끼며 가슴속에 대자연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신다.
고 대장이 살짝 땀을 훔쳤다. 손에 땀을 쥐게 했던 마상무예를 보고 나니 벌써부터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들뜬 기분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윤 원장이 물어본다.
“말을 타본 경험은 있으세요?”

우리는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하하, 당연하죠. 제주도에서 조랑말 좀 타봤어요!”

하지만 원장은 우리를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제주도의 승마 체험은 말들이 반복된 코스로 움직이게 훈련되어 있어서 사실 말을 한번 타봤다는 것뿐이지 실질적인 승마라고 보기 어려워요.”

승마란 살아있는 동물을 이용한, 무엇보다 사람보다 큰 동물을 이용한 레포츠이기 때문에 많은 변수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몇 번의 어설픈 경험을 가지고 그동안 자신감에 찼던 생각을 하니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경험도 있으니 이번에는 신나게 달려볼 수 있겠구나’라는 자만심을 전면 수정해야만 했다.

말은 귀로 대화하는 동물

우리는 원장을 따라 다니며 말에 대한 기초 지식부터 새로 배웠다. 승마란 결코 말에 올라탄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말의 먹이부터 시작해서 친숙해지는 법 등 말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으면 절대 말을 탈 수 없다는 것을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알게 됐다.

▲ 평보 코스를 거쳐 속보 코스에 돌입했다. 윤미라 원장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우리는 말에 대한 재미있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말은 상당히 겁이 많다는 사실이다. 쉽게 놀라기도 하며, 낯선 동물이 다가가면 공격보다는 도망을 간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비둘기 다음으로 귀소 본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말은 귀로 대화하는 동물이에요. 귀의 움직임만 봐도 호기심을 갖는지 경계하는지 알 수 있어요.”

실제로 보니 어떤 말은 귀를 앞뒤로 움직이면서 호기심을 나타내는 반면, 어떤 말은 귀를 한껏 세우든지 뒤로 확 젖혀서 경계하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말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나타낸다. 오히려 사람이 귀여워해주고 쓰다듬어 주면 주위의 다른 말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표현해 달라며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어떤 말은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다른 말을 공격하기도 한다. 그만큼 질투도 많다.

기자들은 말들과 친숙해지기 위해 부지런히 먹이도 주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면서 노력을 기울였다. 말은 사람이 목 부위를 쓰다듬어 주고 뺨을 살짝살짝 쳐주면 아주 좋아한다. 말과 친숙해지기 위한 첫 번째 포인트는 말을 겁내지 말고 부지런히 밥도 주고 배설물도 치워주고 갈기에 빗질도 해주는 것이다.

“말의 아이큐는 50~60 정도로 꽤 똑똑한 동물이에요.”
“어라, 나보다 아이큐가 높네!”
일행 중 한 명의 말에 주위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고삐는 생명줄!

▲ 말을 타기 전, 기본자세를 배우고 있다. 안전사고가 뒤따르기 때문에 교육은 항상 엄하게 가르친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승마를 시작할 때가 왔다. 초보자의 기초교육은 보통 8회에서 10회 정도 평보(平步) 코스 위주로 실시된다. 평보란 평평한 땅에서 천천히 걷는 말의 속도에 맞춰 배우는 것이다. 이때 올바른 자세와 이론 교육도 배우게 된다.

“아이고 허리야~”
말 위에 올라서니 땅에서 배운 자세가 안 나오는지 일행들 입에서 연거푸 신음 소리가 난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승마가 위험하긴 해도 안전수칙만 잘 지키면 ‘몸치’도 충분히 잘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좁은 훈련장에서 연습해도 실력이 늘지 의심스러웠지만, 실제 타보니 만만히 볼일이 아니었다. 좁게 보이는 공간이지만 이곳에 보통 말 5마리 정도가 들어가서 훈련을 한다고 한다.

“고삐는 생명줄입니다. 절대 놓치지 마세요!”

“자세 바로 하세요! 허벅지는 말 옆구리에 바짝 붙이고, 고삐는 너무 꽉 잡지 말고….”

윤 원장과 고 대장의 계속되는 조언이 바짝 긴장한 탓인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말은 터벅터벅 걷는 것 같은데, 엉덩이에 전해지는 반동은 마치 달리는 말을 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승마의 기본교육 시간은 45분. 대부분 처음 승마를 배우는 사람들은 너무 적은 시간이 아니냐며 불평하지만, 막상 45분 동안 탈 수 있는 초보자는 열 명 중 한명도 안 된다고 한다.

그만큼 쉽게 익힐 수 있는 레포츠도 아니거니와 꾸준한 운동으로 단련된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 또한 말도 45분 이상 사람을 태우면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말 보호 차원에서 하루에 한번만 사람을 태운다.

▲ 일행은 말의 온순함을 알고부터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말은 뺨 부위나 어깨를 쓰다듬어 주면 좋아한다.
제법 오래 탄 것 같은데 겨우 10분.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히고, 등에는 땀이 흘러내려 축축하다.

말을 힘들지 않게 하고 오래 타려면 말이 움직이는 리듬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의 움직임에 사람도 리듬을 맞춰야 힘이 덜 든다. 그래서 반드시 말과 함께 호흡한다고 생각하고 말을 타야 한다.

몇 번의 반복 훈련을 거치니 일행들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중간 중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월간 아웃도어〉의 이름을 걸고 다시금 힘을 냈다.

조금 더 높은 실력으로, Let’s go!
반복 훈련을 통해 평보 코스에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일행은 좀더 넓은 훈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본적인 평보 코스가 익숙해지면 다음 단계는 속보(速步)와 구보(驅步) 코스다. 속보란 말이 약간 속도를 내어 걷는 것을 말하며, 말이 가장 오래 달릴 수 있는 걸음걸이다.

구보는 평보의 3배 정도 속도를 내어 달리는 것이다. 속보와 구보를 배우는 데 보통 6개월 정도 걸린다.

그동안 좁은 훈련장에 익숙해서인지 넓은 훈련장이 낯설기만 했다. 우리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정도 크기는 되어야 타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얼마간의 기초 훈련을 거치고 나서는 자연스레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 무섭게 질주하는 ‘장군’이와 ‘천운’이. ‘장군’이와 ‘천운’이는 일행의 승마 입문을 도와준 고마운 말이다.
원장이 길을 리드하며 일행을 이끌었다. 속보는 고삐와 발을 이용해서 말의 방향과 속도, 정지까지 완벽하게 익혀야만 원하는 방향으로 말을 조종할 수 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따라가는 사람들이 제각각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 일쑤였다. 일행들의 입에서 ‘승마란 참 힘든 운동이구나’라며 한숨이 나왔다.

평보든지 구보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자세를 익히는 것이다. 그리고 말이 뛴다 생각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뛴다고 생각하며 말을 다루어야 한다. 그만큼 말과의 호흡도 중요하다.

구보가 익숙해지면 초보단계는 지났다고 보면 된다. 그 이후 단계는 훈련장이 아닌 밖으로 나가서 말을 타는 외승(外乘) 코스다.

말을 자유자재로 다룰 정도의 실력을 가져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최소한 구보까지 익혀야 한다. 이때부터 진정한 승마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말을 타는 사람도 외승 코스를 나갈 실력이 되어야 기수(騎手)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승마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근성이 있어야 익힐 수 있는 레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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