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 향기에 봄이 깊어가고 있어요
산나물 향기에 봄이 깊어가고 있어요
  • 글, 사진 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6.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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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일기

어렵사리 채취한 산나물들을 지고 산을 내려가시는 동네 어르신들. 어르신들의 뒷모습에서 세월의 무게가 쉽지 않음이 느껴집니다.

▲ 멀리 조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서 두릅을 채취하는 동네 총각 순원씨.

요즈음 이 산골은 사방이 반짝거리는 연둣빛 세상입니다. 때깔 아름다운 산속에는 산나물이라고 불리는 먹거리들이 자라나기 시작해서 새벽같이 산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늘 경쟁처럼 이어집니다.

새벽에 눈을 뜨는 저도 그 대열에 껴 부지런히 산에 오르고 싶지만 젊디젊은 제가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오르시는 산에 경쟁자처럼 올라가기가 죄스러워서 늘 아침을 먹고 느지막이 야트막한 산에 오르게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제 배낭은 늘 홀쭉하기 일쑤입니다.

▲ 산에서 채취하신 개미취를 들어 보이시는 정선 자개골에서 나고 자라신 동네 어르신
산나물 중에 최고인 두릅이 마악 피어나기 시작하는 요즈음 제가 기대어 사는 가리왕산에는 산불경방기간이라 일반인들의 접근이 금지 되며 모든 임산물 채취를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겨우내 가리왕산에서 산나물 나기만을 기다려온 저로서는 너무나도 반갑지 않은 소식이지요.
 
몰래 감시원들의 눈을 피해 들어 갈 수는 있지만 그러다가 걸리면 벌금이 부과 된다는 말과 함께 임도 곳곳에 CCTV까지 설치되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어 그간 많은 나물을 제공해 주던 가리왕산이 이젠 그림의 떡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뒷집 총각들과 멀리 여량이라는 동네까지 산나물들을 채취하러 떠나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높은 고지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들이 남아 있을 뿐 우리 일행이 채취할 나물들이 이미 없었습니다.

그나마 사람들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곳에 두릅이 남아 있긴 하지만 아주 적은 양입니다.

▲ 대부분 길가에 피거나 따기 편안한 곳에 피어난 두릅은 이미 다른 분들이 다 채취해 가시고 이렇게 암벽등반을 해 가며 올라가면 약간의 두릅이 남아 있지요.
해마다 두릅 철이면 두릅을 따서 서울에 있는 일가친척과 지인들에게 산에서 나는 신선한 선물이라고 늘 잘난 체(?)하며 보내드리던 입장이라 올해도 어김없이 제가 두릅을 보내주기를 기다리는 많은 분들의 기대를 채워 드리기엔 너무나도 적은 양입니다.

암벽등반도 하고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리기도 하며 어렵사리 두릅을 채취하던 일행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산을 내려오다가 산 중턱쯤에서 나물을 채취해 가시는 동네 아주머니들을 만났습니다.

단속도 없고 한창 산에 기대어 사실 때만 해도 산나물 철에만 일해서 한해 살림하실 돈을 버셨다는데 요즈음은 단속이 심해 큰 산에는 가지도 못하고 그저 얕은 산으로만 다니며 살살 용돈이나 만드신다는 아주머니들의 한숨이 어려운 요사이 경제가 이 산골에도 어김없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나물 뜯어서 아이들 핵교도 가르치고 우리도 먹고 살았는데 요즈음은 예전만 못하다니~”

그동안 도시 사람들이 워낙 많이 들어와 대규모 나물 채취들을 해대던 터라 오죽했으면 입산 금지를 시
켰겠냐는 어르신들의 볼멘소리가 도시에서 들어 와 살게 된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도시 나물꾼들은 나무들을 채취하기 위해 참두릅과 개두릅 등 나무에서 나는 나물은 나무를 베어 채취해 가고 곰취, 참나물, 나물취 등 땅에서 나는 나물들은 뿌리채 쑥 뽑아서 고무줄로 묶어 나중에 뿌리부분만 잘라 버린다 하니 그 많던 산나물의 개체수가 줄어들게 된 최고의 요인이 되어 버린 셈이지요,

▲ 어렵사리 채취한 산나물을 지고 산을 내려가시는 동네 어르신들. 어르신들의 뒷모습에서 세월의 무게가 쉽지 않음이 느껴집니다.
이곳 어르신들은 나물을 채취해도 나무를 베어내지 않을뿐더러 땅에서 나는 나물들은 요령 있게 잎사귀만 채취하시는데, 욕심 많은 도시 나물꾼들이 뿌리채 나물들을 채취해 가는 바람에 나라에서 개체수 보호를 위해 ‘임산물 채취 금지 기간’을 만드신 거라 생각됩니다.
 
이 산골에서 자라고 나시고 산에 기대어 사시는 어르신들의 밥줄을 도시나물꾼들이 끊어 버린 셈이지요.

이 산골에 들어 와 산 지 4년. 4년밖에 안된 제가 예전의 산골 봄 풍경을 그리워한다면 참으로 염치없는 일이겠지요? 그때도 몸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산나물들을 실컷 뜯어다가 이런 저런 방법으로 저장해 두었고 일년 내내 풍요로운 밥상을 만들었더랬지요.

오늘 따온 두릅은 양이 많지는 않아도 간장에 절여 장아찌도 만들고요, 삶아 냉동고에 얼려 두었다가 이곳에 오시는 도시분들과 함께 나눠먹을 요량입니다.

이런 저런 일들로 점점 각박해져만 가는 이 산골에서 그래도 행복한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이유는 아직은 싱그런 산나물 향기에 취해 따가운 봄 햇살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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