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과 잡초는 백지 한 장 차이랍니다
나물과 잡초는 백지 한 장 차이랍니다
  • 글,사진 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6.2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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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일기

겨울 지나고 따뜻한 춘삼월이 찾아오면 삭막한 마당에서 솟아나는 풀 한 포기도 새롭고 경이로워 소중한 화초처럼 매일 매일 들여다보며 감사를 드리던 지난 봄.

그러나 춘삼월 지나고 본격적인 여름으로 들어서는 시기인 요즈음에는 “아이, 지겨운 잡초들~!” 하고 마당에 서서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그리곤 이내 잡초와의 전쟁을 벌이지만 뽑아도 뽑아도 머리를 들이미는 잡초 때문에 진저리를 쳐대곤 합니다.

▲ ‘천연 생태 공원(?)’인 집 앞 마당 , 클로버와 질경이 그리고 개벼룩 풀이 지천으로 그 푸르름을 뽐내고 있습니다.

장마가 머지않은 요즈음, 마당의 풀들을 처치하지 않으면 장마 동안 훌쩍 커버려 정말로 큰 일이 되기에 마음이 급합니다. 하지만 일손이 한창 모자라는 시절이라 마냥 마당에 자라나는 풀들을 바라만 볼뿐 어찌 해볼 엄두도 못 내고 있답니다.

잡초 중에 으뜸은 쑥입니다. 초봄에는 귀한 어린 새순을 따서 말려 차로 마시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요.

산골 생활이 점점 바빠지는 계절이 되면 어느덧 잡초로 분류 되면서 눈에 닥치는 대로 뽑아 없애야 할 제1호 적으로 여기고 있으니…. 쯧쯧, 세상사 참 묘합니다.

그 다음에 질경이, 명아주, 그리고 토끼풀, 망초, 방동사니, 소리쟁이, 애기똥풀, 강아지 풀…. 하나하나 열거하기에도 버거울 지경입니다.

▲ 눈 깜짝 할 사이에 생겨 버린 민들레 밭. 쌉쌀한 그 맛에 반해 그래도 민들레는 아직은 귀히 여기는 나물로 분류 되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만 해도 먹을거리가 귀해서 질경이나 명아주, 그리고 소리쟁이 등은 식용 나물로 식탁에 오르곤 하던 기억이 있지만 이 산골에서는 마당을 점령하고 있는 풀일 뿐입니다.

아니게 아니라, 요즈음 이 산골의 밭둑가나 길가를 지나다 보면 여기저기 불에 타버린 풀들이 마치 원자 폭탄을 맞은 꼴로 흉물스럽게 바스러져 가고 있습니다. 제초제 때문입니다.

제 어릴 때만 해도 풀을 소꼴(소먹이)로 베어 요긴하게 썼는데, 요즈음은 대문 안이든 대문 밖이든 제초제들을 하도 뿌려대는 바람에 무공해 청정 지역이라는 이 정선 산골이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잡초와의 전쟁에 지칠 때쯤이면 ‘에이, 그냥 제초제를 뿌려 버려?’ 하고 갈등하기도 하지만 이내 후회하면서 어설픈 손놀림으로 마당 한쪽의 풀들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 작년에 모종을 얻어다 심었던 금송화. 한 해 사이에 개체수가 어찌나 빨리 늘어나던지 저희 마당에서는 잡초로 분류되기 직전입니다.

그러나 혼자 하는 일이 늘 한계에 부딪히게 마련이라 마당 한구석은 그냥 ‘생태 공원’이라고 변명하며 그냥 놔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풀이 무성한 제 뜰을 보고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가시면서 한마디씩 핀잔을 주고 가십니다.

▲ 잡초 투성이 집 뒤편의 마당. 한 달에 두어 번 큰맘 먹고 하루 종일 잡초를 뽑아내고 있는데, 이 뒷마당의 풀을 뽑을 때마다 제초제 생각이 불끈 불끈 솟곤 합니다.
“그냥 풀 약 한 통 치지 그래. 마당에서 뱀 나오겠어, 뱀!”

풀 약이란 제초제를 말합니다.

하지만 제초제를 치면 독한 약품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땅의 기운이 나빠지고 지하수가 오염되기 때문에 선뜻 내키지가 않습니다.

제초제를 뿌리느니 풀이 길길이 자라는 게 낫다고 여기는 제 생각을 노인들께 말씀 드리기엔 너무 죄송합니다.

그분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잡초와 전쟁을 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노인들께 “네~” 하고만 대답하고 말아버립니다.

사실, 저 하나 제초제를 안 뿌린다 해서 병들어 신음하는 이 산하가 더 나아질 거란 믿음은 없지만,

그래도 저라도 제초제를 멀리 하며 맨땅을 맨발로 딛고 서서 이 땅이 선사하는 아주 건강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면 너무 거창한 욕심일까요? 어느덧 정선에도 여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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